햇빛 어른거리는 길 위의 코끼리 알마 인코그니타
우밍이 지음, 허유영 옮김 / 알마 / 2018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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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금은 철거된 타이베이의 중화상창. 그곳에 살았던 아이들의 삶을 단편소설로 엮은 책. 아날로그 감성과 과거에 대한 향수를 몽환적으로 그려낸 이 소설집에는 육교 위의 마술사가 중요하게 등장한다. 가난하고 북적대고 아직 모진 세상을 만나지 않은 순수한 아이들에게 마술사는 마술을 보여주며 신비한 세계를 꿈꾸게 하고, 아이들이 스스로를 믿을 수 있게 하는 인물이다.

중반부까지의 단편들은 주인공으로 등장하는 인물들이 대부분 죽음을 맞이하고, 후반부까지는 중요하게 등장한 동물들이 죽는다. 과거에는 살아남았더라도 현재에 와 죽음을 맞은 이, 과거로부터 몇 년의 삶을 유예 받았으나 뒤에 죽은 이, 다시 만났으나 헤어지게 되는 이, 키우던 동물을 다시 살려내기 위해 마술사를 흉내 내지만 변수가 들어가 실패한 이, 몰래 들어온 길냥이가 사라져 죽음을 맞는 이 등. 중화상창에는 소박하게 그리고 끈적임이 느껴지게 사는 사람들이 등장한다. 지금의 한국 콘텐츠에서는 보기 어려운 정서라 생각한다.

과거의 건물을 잘 부수지 않는 대만임에도 중화상창은 철거했다고 한다. 타지에서 타이베이에 올라온 이들이 처음 맞닥뜨린 랜드마크, 과거 타이베이의 영광을 상징했던 건물. 이 건물은 철거되고 타이베이101 등 새로운 대만이 등장했을 것이다.

우리는 부순 것, 사라진 것들을 그리워한다. 그 때 사라진 것이 물질 뿐만은 아니기에. 잊었던 정서, 그리운 것들, 버려두고 가야하는 것들을 소설 속에 그려내고 있다. 아름답게 안녕이라고 할 수 있기를, 냉정하게 이별할 수 있기를, 그 성장통을 거쳐 조금 더 나은 인간이 되어 있기를 소망하게 되는 촉촉한 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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