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의 끝
폴 서루 지음, 이미애 옮김 / 책읽는수요일 / 2017년 7월
평점 :
절판


무라카미 하루키가 반해서 일본어로 번역하고, 여행작가의 책이라는 점에 끌려 읽기 시작했다. 세상의 끝이라 했기에 사실 여행에세이 정도로 생각하고 읽었는데, 이것이 수려한 단편소설집인 줄은 몰랐다. 이 책에 수록된 소설은 기쁘게 읽을 수 있는 내용들은 아니다. 읽을수록 씁쓸해지고, 책장을 넘길수록 나는 이들과 다른가 반문하게 된다.

13편의 단편과 1편의 중편소설이 수록된 소설집. 각기 다른 작품에 등장하는 인물들은 제각기 자기만의 편견과 오만에 빠져있다. 때로는 화자가 되어 때로는 관찰자가 되어 이들 인물 군상을 보여주는데 종국에는 어리석은 인간, 자의적 해석에 빠져 자기만의 우물에서 나오지 않는 인간에 대해 발견하게 된다. 각기 다른 상황과 도시, 관계에 처한 인물들이 이토록 한결같이 자기만의 세계에 빠져 살아가는 모습을 그릴 수 있다는 것이 놀랍기도 하다.

여행소설을 기대했다면 각 도시를 예찬하듯 혹은 경험하듯 서술하는 책이 아니라서 더 기뻤는지 모르겠다. 각기 다른 도시에 사는 인물을 창조해 낸 작가는, 도시의 분위기도 전달하지만 각각이 마주한 ‘세상의 끝’을 살아내는 인간을 말하기에 더 울림 있게 다가오는 책이다. 레이먼드 카버의 단편을 읽었을 때는 당혹스러움을 느꼈다. 왜 그런 소설을 썼는지, 내가 그 속에서 무엇을 읽어내야 하는지 당황스러웠다면 폴 서루는 그에 비해 훨씬 친절하다. 정서와 인간 군상이 고스란히 읽힌다. 사변적이지 않은 소설의 모범을 본 기분이기도 하다.

개인적으로는 책의 첫 번째 단편 ‘세상의 끝’이 가장 재미있었는데, ‘가장 푸른 섬’은 마지막에 책장을 자꾸 접게 만드는 매력이 있었다. 서늘한 자의식의 공포를 느끼게도 했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