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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갈리아의 딸들
게르드 브란튼베르그 지음, 히스테리아 옮김 / 황금가지 / 1996년 7월
평점 :
황금가지 출판사에서 1996년에 1판 1쇄를 펴내고 64쇄까지 찍은 후 개정판 2쇄까지 나온 책. 노르웨이의 작가가 쓴 페미니즘 소설이다. 소설은 크게 1부와 2부로 나뉜다. 1부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단순 미러링이 아닐까 생각을 하게 된다. 이갈리아라는 나라에서는 남녀의 성역할이 바뀐 제도 하에서 그것을 상식으로 여기며 살아가기 때문이다. 1부에서 소설적 흐름이 끊긴다고 느낄 때도 있다. 주인공격인 페트로니우스가 3명의 움에게 강간을 당한 후의 장면이 비현실적이기 때문이다. 여성의 삶이 소설보다 훨씬 비참하고 통탄스러운데 가볍게 묘사되고 있다는 생각마저 든다. 1부를 읽을 때까지만 해도 이 책을 소장할 가치가 있는가 갸웃하게 된다. 작가가 1975년에 쓴 책이라고 하는데, 43년 후의 대한민국에서는 이보다 못한 여성의 삶이 목격되고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2부로 접어들게 되면 독자로써 본격적인 갈등을 하게 된다. 이갈리아에서 핍박받아 온 맨움(남성)들이 맨움해방운동을 조직하고 이를 실현하기 위해 노력한다. 그런데 1부를 읽고 이갈리아 체제의 관찰자적 옹호자가 된 나는, 이들의 체제 전복적인(?) 행동에 불안을 느꼈다. 인간이 어떻게 보수화 되고, 여성운동이 어떤 난관에 봉착하게 되는지를 체험하는 시간이었다. 이런 나를 발견하는 것에 당혹스러움을 느끼면서 책을 끝까지 읽게 된다. 2부는 보다 이론적이고 사회적인 배경에 대해 직접적인 발언이 이어진다. 소설의 끝 무렵에 페트로니우스는 <민주주의의 아들>이라는 소설을 쓰는데, <이갈리아의 딸들>의 첫 장면을 성별만 바꾸어 쓴 것으로 설정된다. 즉, 현실의 여성과 남성의 성역할과 처지로 돌아온 것이다. 책의 말미에서 다시 현실로 돌아오는 순간 절망과 암담함을 느끼고 말았다.
다수에 의해 폄훼되고 곡해되는 여성운동이 원하는 것은 계급, 인종, 성별, 성적 취향 등으로 차별받지 않는 세상을 원하는 것이다. 그리고 그 안에는 인본주의가 핵심으로 자리한다는 것을 작가는 끝까지 놓지 않으며, 그것이 곧 모든 생명이 공존할 수 있는 길일 것이라 맺음 한다.
사 놓고 2년여 동안 읽지 않다가 쌓인 책 읽기 프로젝트로 읽었는데 찬찬히 살펴보며 읽을 만한 책이었다. 작가가 마련한 역지사지의 장치. 나도 모르게 몰입하게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