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시 정부의 외교특파원 서영해]역사 속 수많은 독립운동가들 중 일제강점기에 삼일 운동을 하다가 일본 경찰에 쫓기는 신세가 되어 상해로 망명한 ‘서영해’ 라는 이름을 들어본 적은 별로 없다 서영해의 본명은 서희수로 1902년 부산에서 태어나 1919년 17세에 3·1운동에 참여했다가 일본 경찰을 피해 중국 상하이로 망명하여 임시정부 외무총장을 맡고 있던 김규식을 만났다 애초 미국유학을 바랬었던 서영해에게 김규식은 그 무렵 세계 외교 무대의 중심을 이루고 있던 프랑스로 갈 것을 권했다서영해는 김규식의 권고를 받아들여 프랑스로 가는 여권을 얻기 위한 방법으로 중국인 양자가 돼서 국적을 바꾼 다음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에 정착했다 서영해는 프랑스에서 초등학교부터 고교까지 10년 과정을 6년 만에 졸업했고 이후 고려통신사라는 이름으로 한국 관련 저술들을 출간하고 동시에 대한민국임시정부의 외교특파원으로 활동했다그리고 서영해는 통신사 프리랜서로 중동은 물론아프리카까지 오가며 취재한 기사를 프랑스 언론에 기고했다 저널리스트가 돼 보겠다는 꿈을 이룩하기 위해서 고학한 끝에 드디어 파리에 있는 어느 일간 신문 기자 채용 시험을 치러 합격했다 1928년부터는 파리의 자택에 ‘한국연락처’라는 기구를 두고 한국에 관해 소개하며 유럽에서의 임시정부 수립을 위해 노력하였다 1936년 3월 8일에는 임시정부 국무회의로부터‘주법특파위원’으로 임명되었고, 이러한 통보를 받은 서영해는 자신에게 주어진 책무에 대하여 충성을 다할 것을 다짐하며, 적극적인 활동을 펼쳐 나가겠다고 했다해방 후 임시정부 요인과 함께 귀국한 그는 김구, 조소앙, 장건상 등과 고국에서 해야 할 일을 도모했지만 여의치 않았다 김구, 김규식이 추진한 남북협상에 기자 자격으로 방북했다 이런 가운데 1947년 연희전문과 경성여의전, 이화여전 등에서 틈틈이 불어를 가르쳤다 그는 당시 일본인이 만든 불어 교재를 모두 버리고 자신이 직접 타자기로 ‘초급 불어’라는 교재를 만들어 가르쳤다그는 1948년 부산에서 당시 26세의 경남여중 교사 황순조와 결혼했다 두 사람은 서울에서 신혼살림을 차렸으나, 이승만의 남한만의 단독정부 수립에 회의를 느껴 다시 프랑스로 돌아가는 작업을 추진했고서영해 부부는 1948년 10월 서울을 떠나 프랑스로 가기 위해 중국 상하이에 도착했다 한국인은 모두 억류 상태가 되었고 1949년 11월 정부차원의 막후 협상 끝에 한국행 수송선이 왔다 그러나 당시 중국 국적의 여권을 가진 서영해는 중국인으로 여겨져 귀국하는 배에 타지 못하고 이후 소식이 끊어졌다총칼보다 강하고 날카로웠던 서영해의 펜! 소년 독립운동가에서 임시 정부 유럽 외교관으로 27년간 파리에서 유럽 무대를 홀로 누비며 외교로 독립운동을 한 서영해의 삶을 들여다 보며 일제 강점기에 나라 잃은 암울했던 시기에도 포기하지 않고 꿈을 찾아 나라에 큰 쓰임이 되려고 했던 서영해의 마음을 조금이나마 알게 되었다 이 책을 읽으며 우린 잊혀진 독립운동가 서영해를 기억하고백 년 전 프랑스인들 앞에서 당당히 한국의 역사를 알려 나가던 서영해의 용기와 역사의식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몰랐던 인물의 이야기를 알게 되어 유익한 시간이었다 좋은 책 보내주셔서 감사합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읽은 후 솔직하게 작성된 후기입니다 ..#도서협찬 #서평후기 #마음이음 #임시정부 #외교특파원 #고려통신사 #독립운동 #근대인물#초등도서#임시정부의외교특파원서영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