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등장인물 연구 일지
조나탕 베르베르 지음, 이상해 옮김 / 열린책들 / 2025년 10월
평점 :
책 제목이 참 특이하다는 생각이 들었는데요. 소설인데 등장인물을 연구한다니 소설 속 등장인물은 독자가 연구해야지 소설의 주인공이 연구라 독특한 시각의 소설일 것 같아서 기대하며 읽었습니다. 이 소설의 주인공은 개발자 토마인데요. '세계 최고의 추리 소설'을 써야 하는 AI에게 데이터를 주입하고 훈련시키면서 벌어지는 일들을 다루고 있더라고요. AI가 만들어내는 소설이 현실에 영향을 미치거나 혹은 현실이 AI의 창작을 모방하는 듯한 기묘한 순환 구조 속에서 긴장감있게 표현되 흥미진진하더라고요. 이 과정에서 작가는 "창작"이란 무엇이며, AI가 만들어낸 결과물에 '영혼'이 담길 수 있는가라는 근원적인 질문을 던지는 것 같았습니다.

나바시 원장과 단이라는 인물 간의 대화는 시스템이 인간의 감정과 자유를 어떻게 통제하고 관리하는지 적나라하게 드러내고 있더라고요. 원장의 말처럼, 이 세계에서 환자는 시스템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존재로 규정되며, '적당한 용량의 약물'이라는 명분하에 철저히 무력화되더라고요. '소프트 구역을 확장해 폐쇄 구역을 축소한 아주 훌륭한 아이디어'라는 원장의 독백은, 겉으로는 인도적인 조치처럼 포장되지만, 실상은 효율성과 통제를 극대화하려는 기계적 사고방식의 산물이더라고요. 환자를 '다루기 어려운' 존재로 보며, 직원들을 더 열심히 일하게 하여 '모든 게 순조롭게 돌아가게' 하려는 원장의 태도에서는 인간적인 배려나 연민 대신, 오직 시스템 운영의 논리만이 느껴졌습니다.

나아가 "나는 당연히 하는데, 이 회사는 관리 원숭이들한테 맡기고 있어요. 이것들이 일자리를 얻는 유일한 조건은 눈, 귀, 입을 동시에 틀어막을 줄 아는 거라니까!"라고 비아냥거리는 부비에의 격앙된 이야기는, 고위 임원들이 침묵과 복종을 미덕으로 삼는 조직 문화, 즉 인간성을 거세한 듯한 관료제의 부패와 비효율성을 고발하는 것으로 느껴졌습니다. 이밖에도 날카로운 풍자와 몰입감 있는 서사로 흥미진지하게 읽히는 소설인데요. 복잡하고 흥미로운 주제를 다루면서도 뛰어난 가독성과 반전의 매력을 놓치지 않아, 지적 만족감과 엔터테인먼트적 재미를 동시에 선사하는 작품으로 강력하게 추천할 만하다고 생각되었습니다.

[이 글은 컬처블룸으로부터 도서 협찬받아 주관적인 견해에 의해 작성했습니다.]
#컬처블룸리뷰단 #컬처블룸 #컬처블룸서평단 #등장인물연구일지 #열린책들 #조나탕베르베르장편소설 #조나탕베르베르 #이상해옮김 #세계최고의추리소설 #소설읽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