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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팽이 식당
오가와 이토 지음, 권남희 옮김 / 알에이치코리아(RHK) / 2022년 11월
평점 :
시련, 힐링, 가족, 음식, 위로, 편견 등 여러가지를 담아내고 있는 소설이라 생각합니다. '링고'가 모든것이 사라진 자신의 보금자리에 들어서면서 곧바로 시작되는 시련은 생각보다 강합니다. 링고가 그동안 모아왔던 꿈, 희망, 사랑, 노력, 희생 그 모든것을 한순간에 무너뜨린 순간이었습니다. 자신에게 단 하나 남은 할머니의 겨된장(살겨로 만든 된장, 과일야채등을 묻어서 누카즈케를 만드는데 쓴다) 항아리를 품에 안고서 결코 돌아가고 싶지 않았던 엄마가 있는 곳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그때, 나는 과거의 나와 눈이 마주쳤다. 그런 기분이 들었다.
찰나였지만, 코끝을 창에 묻고 도시의 불빛을 꿈꾸던 십 년 전의 어린 내가 반대 방향으로 달려가는 고속버스에 앉아 있는 것 같았다. 황급히 돌아보면서 스쳐 지나간 버스를 눈으로 좇았다. 하지만 버스 두 대는 맹렬한 속도로 각기 '과거'와 '미래'를 향해 멀어질 뿐이었고, 창에는 다시 물방울이 가득 찼다.
p19, '링고'의 현 상황과 앞으로의 상황이 달라짐을 암시하는 하나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책의 장점이자 특징이기도 한 점은, 자연환경과 음식 그리고 내면적인 감정들에 대한 표현이 두드러진다는 것입니다. 표현에 있어서 자유로우면서도 음식과 연계시키는 독창성이 느껴지기도 하고 또한 섬세한 표현들에 책을 읽으면서 그 장면을 연상해보는 재미가 있었던 책입니다.
갓 낳은 계란 노른자처럼 매끈하고 짙은 오렌지색 해.
대도시의 빌딩과 빌딩 사이로 아련하게 가라앉는 해도 멋있지만, 이 석양은 마치 대자연이 알통을 만들어 보이는 것 같았다. 이런 장엄한 석양을 만나면 사람은 자신의 힘으로 자연을 멋대로 주무르겠다는 생각 같은 것은 하지 못한다. 보잘것없는 내 몸에서 막대기처럼 긴 그림자가 생겼다.
p58
밤에 요구르트를 천에 싸서 싱크대 위에 매달아 두면 다음 날 아침 요구르트는 확 줄어들고 천에는 진한 크림만 남는다. 생크림은 너무 진하고 요구르트 크림은 너무 담백하지만 둘을 섞으면 적당한 감칠맛과 산뜻함이 생겨서 과일에서 흐르는 즙을 제대로 방어해 준다. 이거라면 빵에 발라도 수분으로 눅눅해질 염려가 없다.
p133
빵에 물기가 스며드는 것을 막고 맛에 깊이를 더하기 위해 빵 표면에 수증기를 쒼 밀크초콜릿을 얇게 발랐다. 쌉쌀한 다크초코릿보다 밀크초콜릿 쪽이 크림과 과일과의 궁합이 좋다. 한입 물면 폭신폭신한 빵 사이에서 과일즙이 자르륵 넘치고, 씹는 동안 은은하게 초콜릿 맛이 입안에 퍼진다.
p134

팽이식당과 링고는 하나의 모습이 되어서 차츰차츰 느리지만 조금씩 나아가기 시작합니다. 처음에는 기적을 부르는 식당으로 그리고 그 후에는 링고의 음식에 대한 인정으로 변화하며 나아갑니다.
그 작은 공간을 책가방처럼 등에 메고, 나는 지금부터 천천히 앞으로 나아갈 것이다.
나와 식당은 일심동체.
일단 껍데기 속에 들어가 버리면 그곳은 내게 '안주(安主)의 땅'이다.
p76, '링고'의 현 상황과 앞으로의 상황이 달라짐을 암시하는 하나의 표현이 아닐까 생각한다.

링고는 불안감과 행복감 사이를 오갑니다. 그 속에서 중간중간 자신이 요리할 수 있음에 대해서 감사하며 행복을 느낍니다. 링고의 '행복했다'라는 네 글자는 너무 강렬했습니다.
행복했다.
너무 행복해서 가슴이 메어 왔다. 금방이라도 호홉 곤란으로 죽어 버릴 것 같을 만큼 행복했다.
p110
싫어하는 감정은 반드시 맛에 반영되니까, 마음도 머리도 비우기로 했다.
"초조해하거나 슬픈 마음으로 만든 요리는 꼭 맛과 모양에 나타난단다. 음식을 만들 때는 항상 좋은 생각만 하면서, 밝고 평온한 마음으로 부엌에 서야 해."
할머니가 곧잘 해 주시던 말씀이다.
p205

극 후반부로 갈수록, 링고와 엄마사이의 관계도 큰 변화점을 맞습니다. 힐링소설이지만 반전과 아픔도 같이 간직하고 있기에 좀 더 인상적으로 다가온 소설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링고의 상상으로만 만들어진 추측으로 인해서 정말 소중하게 보냈어야 할 시기를 놓쳐버린 후회를 보게됩니다. 링고와 달팽이식당의 완연한 미래는 어떻게 될지. 희망에 한표를 내어봅니다.
<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받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