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자를 위해 대신 생각해줄 필요는 없다 - ‘정상’ 권력을 부수는 글쓰기에 대하여
이라영 지음 / 문예출판사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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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면서도 단호하게 분노를 느낄 수 있게 하는 글입니다. 그동안 감정섞인 글들은 종종 접했지만, 이렇게 문학적으로 다가가고 그러면서도 제대로 분노하는 글은 처음인 것 같습니다. 작가의 깊이가 느껴지는 책이었습니다.

 

 

 

많은 생각도 들게 하는 책이었습니다. 세계 오랜 역사 그리고 지금 사는 시대 그 속에서 여전히 차별이 존재하고 차별속에 또 차별이 존재한다는 생각이 듭니다. 그리고 생각보다 그 뿌리는 정말 깊다는 생각도 듭니다. 어쩌면 나는 그 차별들이 너무 익숙해서 그냥 그렇게 흘러보내고 있었던 것은 아닌지 생각도 해보게 되었습니다.

 

 

 

침묵하지말고 끊임없이 떠들어야 한다는 것

 

 

 

이 책은 독서에세이지만, 그 속에 분노를 담고 차별을 가하는 그들에게 부끄러움을 던질 수 있을만큼 깊습니다. 그냥 단순히 분노하고 울분을 토해내는 일반적인 글들과는 확실히 차이가 있습니다.

 

 

 

정세랑, 이다혜, 최은영 이분들이 왜 추천을 했는지 알 것 같았습니다.

 

 

 

이 책을 읽을지도 모르는 남자들에게 부끄러움을 그리고 이 책을 읽는 여자들에게는 어디에 분노해야하고 어떻게 분노해야 하는지 그리고 여성들이 나아갈 방향이 무엇인지 왜 끊임없이 읽고, 보고, 써야하는지 제시해주고 있습니다.

 

나는 분노한다.

 

분노에 잠식당하지 않으려고

 

읽고, 보고, 쓴다.

 

 


나의 요지는 글쓰기가 사랑에서 나와야 한다는 것이다. 우리는 자기방어나 중오심에서 나온 글, 남을 공격하거나 남에게 사과하기 위한 글이 아니라 살아에서 나온 글을 써야 한다. 부정적인 감정을 떨쳐 내기 위한 글 역시 곤란하다. 독자가 그 부정적인 감정을 고스란히 떠안게 되기 때문이다. 내 말은 세상을 너그럽게 바라보자는 것이 아니다. 솔직한 분노가 담긴 글도 얼마든지 사랑에서 나올 수 있다. 중요한 것은 어떤 감정을 원천으로 세상을 바라보느냐다.

 

<유도라 웰티의 소설작법>



나는 분노한다. 분노에 잠식당하지 않으려고 읽고, 보고, 쓴다. 수시로 우울하다. 우울함과 잘 살아가기 위해 읽고, 보고, 쓴다. 분노와 우울을 오가는 와중에도 오만이 싹튼다. 내 오만을 다스려 무지를 발굴하기 위해 읽고, 보고, 쓴다.


 

돌이켜보면, 2020년이 그런 한 해가 아니었나 싶은 생각이 듭니다. 슬픔에 우울에 분노에 오만에 그런 감정들에 잠식당하지 않으려고 많은 이들이 읽고 보고 쓰고 하지 않았나 싶습니다. 저 역시도 그런 감정에 잠식당하지 않기 위해서 읽고 보고 쓰지 않았나 싶습니다.

 

 

 

 

 

 


내가 가장 후회하는 부분이 바로 내가 침묵했던 순간들이었다는 점을 깨달았습니다.

 

<시스터 아웃사이더>


약자여서 소수자여서 심지어 환자여서 침묵하는 경우를 우리는 사회에서 쉽게 볼 수 있습니다. 또한 그들이 침묵을 깨기위해서 많은것을 거는것도 보았습니다. 그들은 침묵을 깨기위해서 모든것을 걸지만 오히려 대중들에게 가해를 당하는 쪽이 그들인 경우도 보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침묵하지 않았기때문에 우리사회는 나아질 수 있었습니다. 하지만 여전히 침묵이 금이라는 듯이 침묵하는 법을 당연시하는 이 사회에서 어디를 향해 가야할까요. 생각이 많아집니다.

 

 

 

여성의 성폭력 생존기도 일종의 트라우마 회고록이며 이는 궁극적으로 저항서사다. 질병이 흔적을 남기듯, 폭력도 사람의 몸과 마음에 흔적을 남긴다. 성폭력 피해자를 '피해자'라고만 하지 않고 '피해 생존자' 혹은 '고발자'라고 하는 이유는 그의 삶을 '피해'안에 가두는 오류를 범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성폭력 피해는 극복과 치유의 대상으로 머무르기보다 적극적으로 공유되어야 하는 이야기다. 말하지 않는 피해자가 진정한 피해자가 되는 문화를 휘청거리게 하기 위해서는 기를 쓰고 말해야 한다. 그것이 침묵을 언어와 행동으로 바꾸는 방식이다.



누군가에게는 집단적 트라우마가 남긴 '강남역'과 '버닝썬'이라는 이름을 유희의 대상으로 소비하는 이들과 '우리'는 같은 언어를 사용한다. 그러나 결코 같은 언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다른 언어 사용자다. '압제자의 언어'를 분쇄하려는 리치는 '공통 언어에 대한 소망'을 품는다. 듣지 않는 이들과 과연 '공통 언어'를 사용할 수 있을까?

 

...

 

알파벳으로 만든 화염병에 불을 붙이자. 언어를 만들어라. 힘차게 던진다. 압제자의 언어를 부숴버려라. 다시 생존자의 언어를 만들어라.


이 책을 읽으면서 솔직히 여성으로서 부끄러웠다. 나는 왜 제대로 분노하지 못했을까. 나도 모르게 그 속에서 익숙해져가는 그런 삶을 살아버렸다는 사실에 그리고 분노의 방향을 제대로 잡지 못했다는 사실에 슬프기도하고 부끄럽기도 했다.

 

 

 

제대로 분노하기 위해 내가 어디를 향해야 할지 생각이 자꾸 깊어진다.

 

 

 


<출판사로부터 제공받은 서적을 읽고 작성된 글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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