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챗GPT와 웹소설 쓰기 - 집필 한 달 만에 출판사 계약 성공!
이청분 지음 / 멀리깊이 / 2023년 8월
평점 :
일시품절
한때 작가들 사이에 AI로 쓴 웹소설이 공모전에서 수상했다며 화제가 된 적이 있다. AI 일러스트 표지로 큰 논란이 일었던 적이 있는 만큼, 작가들에게 AI와 저작권은 꽤 민감한 이슈다. 그래서 그 소설이 수상해도 괜찮은지 말이 많이 나오기도 했다.
이 책의 저자 또한 챗GPT로 웹소설을 쓰는 방법을 제시한다고 하여 관심이 갔다. 저자가 그 공모전 수상 당사자와 동일인인지는 확실치 않다. 그러나 나는 정말 작가들 사이에 알려져 있던 대로 '직접 글을 쓰지 않고 챗GPT에만 의존해서 완결 집필을 한 것인가'가 맞는지 궁금했다. 그 가설이 맞는다면 작가로서 심히 큰일인데, 걱정이 되기도 하고 된다면 어디까지 가능한 지 알고 싶었다. 동시에 말이 안 된다는 나름의 확신도 있었다.
그럼 잘 모르고 판단, 비판, 평가를 하기 보단 조금이라도 알아야 한다고 봐서 이 책을 읽게 되었다. 결론은 챗GPT'만으로' 글을 쓰는 건 불가능하다. 또한 이 저자는 챗GPT로 여러 과정을 생략하는 데 도움을 받았을 뿐, 챗GPT가 글을 대신 쓰지는 않았다. 어째서 그런지, 또 도움을 받을 수 있는 부분은 무엇인지 파헤쳐보았다.
웹소설을 쓰기에 앞서 시놉시스 기승전결 구성, 캐틱터 설정, 클리셰 활용하기 등 다양한 요소를 고려해야 작품 집필을 시작하고 마칠 수 있다. 이게 가능하려면 데이터 분석이 필요하다. 쓰고자 하는 장르에서 어떤 게 메이저/마이너인지 구별할 줄 알아야 하고, 장르에서 유효한 클리셰를 쓸 줄 알아야 하고, 클리셰를 그냥 베껴다 쓰는 게 아니라 비틀 줄 알아야 한다.
주제, 소재, 스토리가 결정되었다면 어떤 인물이 나오는지 알아야 한다. 그 인물이 작품과 어울리는지도 판단할 수 있어야 한다.
예를 들어 신데릴라 이야기를 쓸 건데 신데렐라가 엄청 치밀하고 계획적인 데다 꼼꼼한 인물이라면? 그렇게 쓰는 게 불가능하지 않고 해선 안 되는 것도 아니다. 하지만 원작에서처럼 계모가 무도회에 가지 말란다고 안 가고 집에서 혼자 울지도 않을 테고, 혼자 계략을 잘 짜서 무도회에 갔을 테니 요정 대모에게 의지할 필요가 없어진다. 무도회에 가서도 칠칠맞게 유리구두를 한짝 벗어놓고 가지 않을 테고, 왕자가 그 구두를 가지고 자기를 찾으러 다닐 지 아닐 지도 불확실한데 더 효과적인 계책을 찾았을 가능성이 높다.
그럼 이야기는 개연성이 부족해지거나, 아니면 아예 다른 스토리를 구상해내거나, 신데렐라의 캐릭터 성격을 바꾸는 등의 방법을 쓰게 된다.
이런 오류 없이 스토리와 캐릭터 성격, 개연성의 구멍 없이 계획을 짜는 과정에서 챗GPT가 조언자가 되어줄 수 있다. 경험이 많은 작가라면 굳이 챗GPT의 도움을 받을 이유가 없기 때문에, 3질 이상의 중장편을 출간해본 작가에게는 이 책이 필요하지 않을 수도 있다.
무료연재라도 해봤거나, 초단편 정도는 출간해봤지만 스토리를 짜임새 있게 구성하기가 어려운 작가에게 가장 도움이 되지 않을까 싶다.
챗GPT는 조언자의 역할을 할 뿐, 집필을 절대 대신해줄 수 없다. 적어도 현재의 기술적 한계로는 그렇다. 그래서 책소개에 있는 것처럼 '웹소설 작가, 한달이면 누구나 가능하다. 웹소설 작가 누구나 될 수 있고 쉽다'는 말을 맹신해선 안 된다. 초보 작가에게 이 책을 추천하기는 어려운 이유이다. 잠도 안 자고 짜증도 안 내고 새벽에도 언제나 데이터를 기반으로 한 조언이 가능한 AI 조언자 정도로 생각해야 한다. 그런데 조언을 듣더라도 뭘 알아야 이해하지 않겠는가? AI가 대신 써주고 작품을 뚝딱 만들어 인세를 딱딱 내어줄 것으로 생각해선 안 된다.
안타깝게도 코시국이 끝나고 플랫폼들이 축소 개편을 시작하면서, 웹소설 시장은 더 이상 신인이 쉽게 돈을 벌 수 있는 구조가 아니게 되었다. 기성도 수익이 토막나는 형국이라, 이런 사정을 감수하고도 쓸 진지함과 뚝심이 있어야 하고, 시장에 대한 어느 정도의 이해는 갖춘 사람이 이 책을 읽으면 도움이 될 듯하다.
그런데 아이러니하게도, 책 앞부분은 웹소설을 한두 편 정도 읽은 초보에게 도움이 될만한 내용이다. 뻔한 내용이라 '대상 독자가 초보구나'하는 생각을 갖게 만든다. 그러면서 챗GPT에게 도움 받는 방법을 소개한 후반부는 '좀 알아야 써먹을 수 있는' 부분이라 대상 독자가 불명확하다는 생각이 든다. 200페이지 분량의 책인데 절반씩 유용한 희한한 책이다.
내 개인적으로는 n질 출간 경험이 있기에 이미 써놓은 시놉시스를 다듬을 때 참고하는 정도로 책을 활용했다. 어색한 부분이나 전체 맥락에서 다소 벗어난 인물 서사, 부족한 곳을 체킹할 때 챗GPT한테 최종 컨펌을 받고 한번 더 '스스로' 고민해볼 때 어떤 프롬프트를 써서 질문하면 되는가? 이 물음표를 해결하는 게 이 책의 용도이다. 엄청난 비밀이 숨어있는 건 아니지만, 챗GPT가 뚝딱거리지 않고 설정을 한번 더 점검해볼 수 있게 질문 잘 하는 법을 조금 가이드해준다.
그러니 AI가 창작 영역을 침범할까 봐 우려했던 작가들은 걱정하지 않아도 될 것 같다. AI가 글을 대신 써줄 줄 기대했던 분들은 작가와 편집자의 영역이 다르고, 편집자가 대신 글을 써주진 않으니 기대를 접으시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