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밥벌이의 지겨움 - 김훈 世設, 두 번째
김훈 지음 / 생각의나무 / 2007년 6월
평점 :
절판
by 김훈, 생각의나무, 2003년 초판
좋은 소금은 폭양 속에서 고요히 온다
'밥벌이의 지겨움'... 얼마나 위로가 되는 제목인가... 실로 얼마나 지겨운가...
사무실 책꽂이에 꽂아 놓으니 저마다 지나가며 한마디씩 한다.
'지겨우면 안 되는데'...
'맞벌이의 지겨움'이라고도 나는 혼자 생각해 본다.
작가는 노는 게 좋다고, 일하는 건 싫다고 말한다.
일을 하면 본래의 자기와 점점 멀어지고 왜곡되어 간다고... 동감...
논어를 이해하지 못하는 건 부끄럽지 않지만, 벽에 박으려던 못이 휘어지는 건 부끄럽다고... 동감...
손수 집을 짓는 목수들의 건강한 몸에 대한 경탄... 동감...
자동차보다 자전거가 좋다... 동감...
시간의 흐름과 사라져가는 것들에 대한 애틋함... 동감...
2003년에 쓰여진 에세이라 조금은 지나간 듯한 느낌이 있지만
김훈의 칼 같은 문장은 여전히 갓 벼린 것처럼 생생하고 푸르다.
그의 작품 모두도 나의 전작 리스트에 올려야지.
군더더기 없는 사유, 치장이 없는 문장은 단연 압도적이다.
자신의 문장을 '내면에서 올라오는 필연성'이라고 과감히 선언할 수 있음이여.
질투하기도 어려울 만큼 완벽하다.
in book
내 문장은 내면에서 올라오는 필연성이다
늙으니까 두 가지 운명이 확실히 보인다.
세상의 아름다움이 벼락치듯 눈에 들어오고, 봄이 가고 또 밤이 오듯이 자연현상으로 다가오는 죽음이 보인다.
그리고 그 두 운명 사이에는 사소한 상호관련도 없다는 또 다른 운명이 보인다.
그래서 음악은, 그리고 모든 아름다운 것들은 인간의 내면에 도사리고 있는 결핍의 소산인 것만 같다.
스스로의 결핍의 힘이 아니라면 인간은 지금까지 없었던 세계를 시간 위에 펼쳐 보일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모든 상상력은 스스로의 결핍에 대한 자기 확인일 뿐이다.
깎아지른 벼랑 끝에 앉아 있는 독수리 한 마리는 저 혼자서 이 세상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다.
이 한 마리는 외롭고 또 위태로워 보이지만, 이 외로움은 완벽한 존재의 모습을 갖춘 것이어서
살아 있는 모든 것들은 본래 혼자일 뿐이라는 운명을 일깨운다.
오히려 헛된 희망이 인간을 타락시킨다.
...결정적으로 인간이 무지몽매해지는 것은 어설픈 희망 때문이다
나는 내 당대의 사람들이 친일과 반민족의 고통을 말할 때, ‘늙음’의 바탕 위에서 말해주기 바란다.
내 말은 그 ‘늙음’의 마음으로 친일과 반민족의 치욕을 뭉개버리자는 말이 아니다.
치욕을 긍정하는 또다른 치욕이 아무리 고통스럽다 하더라도, 그 또한 감당되어야 할 치욕인 것이다.
대학 현수막의 이념은 작동되지 않는, 아름다운 이념이다.
‘색깔론’의 이념은 구체적으로 작동되는, 더럽고 강력한 이념이다.
좋은 소금은 폭양 속에서 고요히 온다.
인간이 가장 고통스러운 날에, 가장 향기로운 소금은 인간에게로 온다.
공간 속으로 저무는 것들이 시간 속으로 저문다. 저무는 것들은 애잔하고도 강력하다.
저무는 것들은 그 느슨한 헐거움으로 삶의 모든 궤적들을 지워버리고, 경험되지 않은 신생의 시간과 공간을 펼쳐 놓는다.
"연어들은 자신의 몸과 자신의 몸을 준 몸을 서로 마주보지 못한다.
이 끝없는 생명의 반복인 무명과 보시는 인연이고, 그 인연은 세상의 찬란한 허상이다"- 고형렬
나는 노동을 싫어한다. 불가피해서 한다. 노는 게 신성하다.
노동엔 인간을 파괴하는 요소가 있다. 그러나 이 사회는 노동에 의해 구성돼 있다.
나도 평생 노동을 했다. 노동을 하면 인간이 깨진다는 거 놀아보면 안다.
나는 일할 때도 있었고 놀 때도 있었지만 놀 때 인간이 온전해지고 깊어지는 걸 느꼈다.
기자를 보면 기자같고 형사를 보면 형사같고 검사를 보면 검사같이 보이는 자들은 노동 때문에 망가진거다.
뭘 해먹고 사는지 감이 안 와야 그 인간이 온전한 인간이다.
그런데 노는거.
그게 말이 쉽지 해보면 어렵다.
놀면서 돈 쓰고 돌아다니는 거는 노는 게 아니라 노동의 연장이다.
돈에 의지하지 않으면 못 노는 거는 돈 버는 노동세계와 연결돼 있어서 노는 게 아니다.
노는 거는 그 자리에 있는 세상하고 단둘이 노는 거다.- 남재일과의 인터뷰 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