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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중위의 여자 - 상 ㅣ 열린책들 세계문학 32
존 파울즈 지음, 김석희 옮김 / 열린책들 / 2009년 12월
평점 :
드디어 오늘 책장을 덮었다. 뿌듯하다.
읽지 않은 고전을 대하면 미뤄놓은 숙제같기 때문이다.
20세기 작가가 쓴, 19세기 빅토리아 시대를 배경으로 한 소설이니
딱히 고전이라 분류하기가 모호하긴 하지만...
전지적 작가 시점(작가가 심리까지 다 설명한다.)과
작가가 소설 속에 불쑥 등장하는 것은 전혀 맘에 들지 않는다.
하여 전체적으로 후한 평을 주기가 어렵다.
(지극히 주관적으로...)
한 소설에 너무 많은 것을 집어 넣으려한 욕심이
미적 요소를 해친 것 같다는 생각...
시대에 대한 역사적 통찰과 계급이론, 심리 분석, 소설 담론까지...
엄청난 양의 어휘와 각주, 인용에는 휘둥그레지고 존경스럽기까지 하다.
그렇지만 첫만남에서 이별에까지 이르는
'사랑의 단계'들을 따라가는 과정은
결코 무의미하지 않았다.
초반엔 책장이 넘어가지 않지만
찰스가 사라에 대한 감정을 스스로 확인하고부터는
마법처럼 책장이 넘어간다.
(현실은 잊고 소설 속으로 푹 빠져 들게 된다.
현실을 잊는다는 건 집안일과 아이들에게 좀 더 소홀했다는 뜻이다. ㅋㅋ)
'이건 사랑이 아니야'라고 부정하면서도 끌리는 두 사람.
여러 핑계거리를 찾아, 또는 우연을 가장해 만나려고 본능적으로 노력하는 것...
사랑을 확인하는 풋풋하고 싱그러운 장면...
어김없이 배경도 이쁘게 묘사된다.
"주변 땅은 황금빛과 노란빛의 미나리아재비와 앵초로 수놓아져 있고,
흐드러지게 피어있는 모과꽃이 신부처럼 새하얀 빛깔로 눈앞을 가리고 있었다."
'전망좋은방'에서의 제비꽃 키스 장면이 생각나기도...
그렇지만 그 소설과 같은 평탄한 사랑이 아니므로
'폭풍의 언덕'의 히스 황야가 떠오르기도...
어두운 과거를 찰스에게 모두 고백하는 사라.
(왜 그랬을까. 왜 하필 잘 알지도 못하는 사람에게...,
그리고 그건 '치유'의 적당한 방법일까. 유효적절했을까.)
명예와 약속을 모두 잃게되는 선택을 하고야 마는 찰스의 격정을 대할 때
내 마음도 격랑처럼 함께 움직이며 떠들썩했다.
찰스의 과감한 선택은 어떤 의미에서는 보답받지 못한다.
더 큰 외로움과 고독이 그를 기다리고 있다.
그게 한 인간의 성장의 댓가인 것인가?
그렇다면 나는 '성장하고 싶지 않다'는 철없는 생각을 해본다.
그런 외로움은 견딜 자신이 없다고...
더더군다나 자기가 가진 소중한 모든것을 던진 뒤가 아닌가.
사랑은 결국 '회한'으로 남는 것인가.
로맨틱한 결말이 아니어서 현실적인 것인가.
그는 이 예기치 않은 만남에 넋을 잃고, 야릇한 - 관능적인 것과는 거리가 먼, 어쩌면 오빠나 아버지가 된 듯한 - 감정에 휩싸인 채 가만히 서 있었다. 그녀를 바라보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 그녀가 결백한데도 세상으로부터 부당하게 배척을 받았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리고 이런 감정과 생각은 그가 그녀의 지독한 고독을 직관적으로 이해할 수 있었던 요소였다. 여성들은 반쯤 집안에 갇혀 있으면서, 늘 수줍고 조심스럽게 처신해야 하고, 또 육체활동도 함부로 할 수 없었던 시대에, 그녀를 이 황량한 곳까지 데려올 수 있었던 것은 무엇일까. 그는 그것이 절망감일 거라고 짐작했다.
좀 더 긴 침묵이 흘렀다. 음악에서 가락이 바뀌는 것과 같은 순간들이 인간관계에서도 생기는 법이다. 이때까지만 해도 객관적인 상황있었던 것, 문학용어를 쓰자면 심상 그 자체에의해 묘사되었던 것, 일반적인 분류만으로 충분했던 것이 주관적인 것으로 바뀌고, 유별난 것으로 바뀌고, 감정 이입을 통해 관찰 대상이라기보다는 감정과 생각을 즉각적으로 공유하는 대상으로 바뀐다.
한순간, 그 조용한 밤에, 이성과 과학이 녹아 버렸다. 인생은 난해한 기계, 불길한 점성술, 태어났을 때 내려져 항소조차 할 수 없는 판결, 모든 것을 압도하는 無였다.
그대를 볼 때마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고,
내 혀는 비틑거리고,
가느다란 불길이 내 팔다리에 스며들고,
내면의 천둥 소리가 내 귀를 멀게 하고,
내면의 어둠이 내 눈을 멀게 한다.
신비로운 법칙과 신비로운 선택으로 이루어진 인생의 강물은 황량한 강둑을 지나 흘러간다. 그리고 또 다른 황량한 강둑을 따라서 찰스는 자신의 시체가 실린, 눈에 보이지 않는 상여를 뒤따라 가는 사람처럼 걷기 시작한다. 그는 임박한, 그리고 스스로 선택한 죽음을 향해 걸어가고 있는 것일까?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드디어 자신에 대한 믿음 한 조각, 그 위에 자기 존재를 세울 수 있는 진정한 고유성을 찾아냈기 때문이다. 그는 아직도 비통하게 그것을 부인하려 하지만, 그리고 그의 눈에는 그 부인을 지지하는 눈물까지 고여 있지만, 그리고 사라가 어떤 면에서는 스핑크스 역할을 맡기에 유리한 점을 많이 갖고 있는듯이 보이지만, 인생이란 결코 하나의 상징이 아니며, 수수께끼 놀이에서 한 번 틀렸다고 해서 끝장이 나는 것도 아니고, 인생은 하나의 얼굴로만 사는 것도 아니며, 주사위를 한 번 던져서 원하는 눈이 나오지 않았다 해도 체념할 필요는 없다는 것을 그는 이미 깨닫기 시작했다. 도시의 냉혹한 심장으로 끌려 들어간 인생이 아무리 불충분하고 덧없고 절망적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그 인생을 견뎌내야 한다. 그리고 인생의 강물은 흘러간다. 다시 바다로, 사람들을 떼어놓는 바다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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