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나의 레몬에서 시작되었다
황경신 지음 / (주)태일소담출판사 / 2002년 7월
평점 :
품절


책을 집어들었을 때는 누가 쓴 책인지 관심도 없었다. 그저 레몬이 표지라는 것 만으로도 난 기뻤으니까. 말도 못하게 상큼하면서도 어딘가 뾰루퉁하며 단단히 토라진 듯 보이는 레몬이, 나는 그렇게 좋을 수가 없다. 오죽하면 여기저기에 레몬이 들어가는 아이디와 닉으로 도배를 했을까. 레몬에 관한 책이라 기뻐하며 읽어나가는 도중, 시원스럽고 간결한 문체이지만 뭔가 나와는 잘 맞지 않는 듯한 느낌이 불현듯 들었다. 저자 확인을 위해 앞표지를 자세히 살피니 아니나다를까, 황경신. 나는 페이퍼 시절부터 황경신식 글쓰기가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의 문체는 단정(?)하고 깔끔한 문체이며 언제나 직선적, 단정적이다. 직선적이고 단정적인 문체의 경우, 그렇게 말하게 된 확고한 결의나 사유가 있어야만 타인의 마음을 뒤흔들 수 있다.

그러나 황경신은 그저 말을 정갈하게 꾸미는 재주만 있고 그 안의 중요한 치열한 무언가가 없다는 느낌이 든다. 그렇기에 나는 그의 글을 읽고 나서도 가슴으로 느끼는 무언가 들끓는 감상이 아닌 '감각적인 글을 한 편 봤구나-' 라는 다분히 문체적 감상밖에는 낼 수 없는 것이다. 그래, 그녀의 글은 딱 레몬같다. 겉으로는 아름답고 향기롭지만 정작 맛은 시다못해 떫기만 하고 먹잘 것도 없어 뱃속을 가득 채우지 못하는 레몬. 그러나 내가 즐기고 좋아하지 않더라고 해도 레몬도 레몬 나름의 커다란 의미가 있다.

이 책에서 많은 것을 바라지 않거나 페이퍼의 팬이라면 공감각적인 기쁨을 느끼며 상큼하고 편안하게 읽을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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