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건축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벽돌을 쌓아 집을 짓고, 도로를 깔고, 지붕을 만들고, 창문을 만드는 일들을 상상한다. 과연 이러한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 내는 행위들이 건축의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로 잠시만 살펴본다면 앞서 말한 건축 행위들은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삶을 디자인하기 위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연극을 할 때 우리는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무대 디자이너는 그 스토리에맞추어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최소한의 공간과 재료로 최적의 무대 세트를 디자인한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가는 먼저 사람의 행위를 디자인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작가가 시나리오를 먼저 쓰는 것과도같다. 연극 시나리오 없이 무대 세트가 디자인될 수 없듯이, 건축가는사회와 삶의 모습을 그리는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에는 건축물을 디자인해서는 안 된다. 건축은 언제나 인간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성전조차도 결국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한 장소이지, 하나님이 집이 없는 분이라서 지은 것은 아니다. 절이나 다른 종교 건축물들 역시 인간의 행위를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건물이다. 인간이 어떠한 행위를 할 때, 그 행위에 걸맞는 환경을 연출해 주기 위해서 건축이무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연극의 스토리는 빈약한데 무대 장치만 블록버스터급으로 해 놓으면 안 되듯, 너무 부족해도 안 되지만 너무 과해도안 되는 것이 건축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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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번 상상해 보자. 예를 들어서 로마 바티칸의 성 베드로 성당 1층의 면적이 5천 평이라고 하자. 그리고 같은 5천 평 정도 면적에 천장 높이가 3미터인 사무실이 있다고 하자. 이 둘이 같은 공간이라고 생각이 되는가? 당연히 아니다. 성베드로 성당의 천장 높이는 높은 곳은 130미터이다. 정확한 측정은 어렵지만 체적으로 계산을 하면같은 바닥 면적을 가진 사무실의 20배는 더 되는 체적을 가질 것이다.
그 어마어마한 석재와 예술품의 가치를 차치하고 단순히 체적만으로계산해도 이 두 공간은 다르다. 성 베드로 성당에 들어서면 공간의 체적에서 주는 그 공간 소유주의 권력을 느끼게 해 준다. 자신이 소유한 공간은 자신의 영향력이 미치는 영역이다. 더 큰 체적의 공간을 소유한다는 것은 자신의 영향력이 더 크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자본주의적인 해석을 한다면 더 큰 공간을 소비한다고 말할 수도 있다.

우리는 흔히 얼마나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사람인가로 그 사람의 권력을 측정한다. 회사 내에서 회장님이 혼자서도 가장 넓은 면적을 차지하는 이유가 그것이고, 같은 아파트 단지에서도 큰 평형대에 사는 부분들이 더 권력을 가진 사람처럼 느껴지는 이유이다. 하지만 엄밀하게 말하자면 면적이 아니라 체적으로 그 차이를 구분해야 한다. 한 집이 천장높이 2.5미터에 30평대 아파트에 살고, 다른 사람이 천장 높이 4미터에20평대 주택에 산다고 생각해 보자. 면적으로만 따지면 30평 아파트가더 큰 집이지만, 체적으로 따지면 20평에 4미터 천장 높이 주택이 더 큰집이다. 필자는 주택을 디자인할 때 건축주에게 항상 경사진 천장과 복층 공간을 넣으라고 권한다. 이런 공간은 단순 면적 방식으로는 계산이되지 않는 공간이다. 그래서 면적만으로 계산하는 평당 공사비는 항상높아진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를 권하는 것은 분명히 더 좋은 공간이라고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최근에 만난 건축주는 이를 알고, 진행하는 오피스텔을 실내 평면 면적보다는 체적과 외부 공간으로 차별화를주려고 하는 분이었다. 이미 시장 경제에서 공간의 질적인 면이 반영되기 시작했다는 면에서 좋은 분위기라고 생각한다. 자본주의 사회에서확하게 우리가 소비하는 공간을 평가하려면 우리가 사는 집들도이제 체적으로 계산해서 팔아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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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타나게 된다. 상점의 입구를 지나게 될 때 보행자는 가게에 들어가거나 혹은 계속해서 길을 걷거나 둘 중 하나를 선택하게 된다. 이러한 의사 결정의 순간이 한 번 나올 경우 보행자는 가게에 들어갈 경우와 들어가지 않을 경우의 두 가지 경우가 생겨나게 됨으로 이벤트 경우의 수는두 번이 된다. 만약에 출입구가 두 개 나와서 결과적으로 선택의 경우 가 두 번 나오게 되면, 둘 다 안 들어가고 지나치는 경우, 앞의 가게만 들 어가는 경우, 뒤의 가게만 들어가는 경우, 두 가게 모두 들어가는 경우,
총 네 번의 이벤트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따라서 상점의 수가 n‘이라 면 보행자가 겪을 수 있는 이벤트 경우의 수는 ‘2n‘이 된다. 다양한 경우 가 있다는 말은 보행자가 다른 날 다시 같은 거리를 걷더라도 다른 거리 를 체험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많다는 점을 뜻함과 동시에 하루를 걷더라도 다양한 이벤트를 만날 경우의 수가 많아진다는 것을 의미한다. 따라 서 단위거리당 출입구의 수는 거리 체험과 밀접한 관련을 가질 수 있다.
이처럼 단위거리당 출입구 숫자가 많아서 선택의 경우의 수가 많은 경 우를 ‘이벤트 밀도가 높다‘라고 표현해 보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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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지 능력자 ‘도나‘와 ‘마이크의 자료 테이프는 별도로 보관되어 있 었다. 그는 ‘도나의 분석을 담당하는 기계를 선택한 다음 보호 장비를열고 내용물을 꺼냈다. 예전과 마찬가지로 코드를 살펴보고 관계가 있 는 테이프를 찾아냈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계에 넣고 돌려볼 수 있었다. 테이프의 내용은 그의 추측과 거의 일치했다. ‘제리‘는 바로 이 보고를 자신의 예지, 덮어씌운 시간 흐름의 근거로 사용했다. 도나의 테이프에서, 캐플런의 군 정보국 요원들은 앤더튼이 귀가하는 동안 그를 납치했다. 앤더튼은 그대로 국제 퇴역 군인 협회의 사령부인 캐플런의 제택으로 끌려가 최종 선고를 받는다. 자발적으로 프리크라임 조직을 해산하든가, 아니면 군대와 전면적인 적대 관계를 시작하든가.
이 폐기된 시간 흐름에서, 앤더튼은 경찰국장으로서 의회의 도움을요청한다. 하지만 어떤 도움도 없었다. 의회는 내전을 피하기 위해 경찰시스템의 해체를 승인했고, ‘위기에 대처하기 위해 군정 복귀를 선언했다. 앤더튼은 충성스런 경찰 부대를 이끌고 캐플런의 위치를 찾아 그와『 되역 군인 협회의 회원들을 공격했다. 사망자는 캐플런뿐이었다. 다른 이들은 치료를 받았다. 크데타는 성공했다.
그는 테이프를 되감고 ‘마이크’의 자료로 넘어갔다. 이번 자료도 동일한 내용일 게 분명했다. 두 명의 예지 능력자가 도출한 내용이 하나로 모여 같은 그림을 그려낸 것이기 때문이다. ‘마이크’의 보고서 역시 ‘도나’와 도입부는 같았다. 그러나 뭔가 잘못되어 있었다. 앤더튼은 의문을 느끼고 테이프를 처음으로 돌려봤다. 두 내용은 묘하게도 일치하지 않았다. 그는 다시 테이프를 돌렸고, 귀를 기울여 자세히 내용을 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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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노인, 그렇다면 당신은 무엇을 믿소?" 나룻배 한구석짐마차 옆에 서 있던 중년 남자가 물었다.
"난 아무것도 믿지 않소. 단지 나만을 믿을 뿐이오." 노 -인은 분명한 말투로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자신만을 믿을 수 있지요?" 네흘류도프도 그들의 대화를 듣다가 물었다. "잘못을 저지를 수도 있을 텐데말입니다."
"아니, 결코 안 그래요." 노인은 고개를 저으며 한마디로 답했다.
"그렇다면 여러 가지 종교가 있을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노인의 말에 네흘류도프가 물었다.
"여러 가지 신앙이 있는 건 자기를 믿을 줄 모르고 남만을 믿으려 하기 때문이지. 나도 예전에 타인을 믿고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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