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가 흔히 건축이라고 말하면 사람들은 벽돌을 쌓아 집을 짓고, 도로를 깔고, 지붕을 만들고, 창문을 만드는 일들을 상상한다. 과연 이러한 눈에 보이는 것을 만들어 내는 행위들이 건축의 전부일까? 그렇지 않다. 눈에 보이는 현상 너머로 잠시만 살펴본다면 앞서 말한 건축 행위들은 궁극적으로는 사람의 삶을 디자인하기 위한 것들임을 알 수 있다. 연극을 할 때 우리는 시나리오를 작성하고 무대 디자이너는 그 스토리에맞추어서 이야기를 전달하기 위해 최소한의 공간과 재료로 최적의 무대 세트를 디자인한다. 건축도 마찬가지다. 건축가는 먼저 사람의 행위를 디자인해야 한다. 이것은 마치 작가가 시나리오를 먼저 쓰는 것과도같다. 연극 시나리오 없이 무대 세트가 디자인될 수 없듯이, 건축가는사회와 삶의 모습을 그리는 시나리오가 나오기 전에는 건축물을 디자인해서는 안 된다. 건축은 언제나 인간을 위한 것이었다. 하나님의 집이라는 성전조차도 결국에는 인간이 하나님을 경배하기 위한 장소이지, 하나님이 집이 없는 분이라서 지은 것은 아니다. 절이나 다른 종교 건축물들 역시 인간의 행위를 위한 장소를 제공하는 건물이다. 인간이 어떠한 행위를 할 때, 그 행위에 걸맞는 환경을 연출해 주기 위해서 건축이무대를 제공하는 것이다. 연극의 스토리는 빈약한데 무대 장치만 블록버스터급으로 해 놓으면 안 되듯, 너무 부족해도 안 되지만 너무 과해도안 되는 것이 건축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