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약 자손으로 양육하라 - 조엘 비키의 신앙교육 가이드
조엘 비키 지음, 김진선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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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을 읽으면서 13년 전 부모가 되어 백일이 된 아이를 안고 교회에서 유아세례를 받았던 기억이 났다. 유아세례를 받으면서 이제 아이를 하나님의 자녀로 잘 양육하리라 다짐했지만 세월이 흘러 이제 아이가 중학교 1학년이 된 지금 내가 과연 아이에게 복음을 제대로 가르쳤는지 아이가 본받을 만한 모범적인 삶을 살아왔는지에 대해 반성해 보았다. 본서는 복음에 대한 사상서가 아니라 교육지침서이다. 따라서 구체적으로 성경의 어느 부분을 복음의 제시로 활용할 것인지, 또 복음을 전하는 방법과 대화하는 방법에 대해서도 자세히 설명해 주고 있어서 부모가 독서 후 바로 활용할 수 있는 책이다. 복음의 내용에 있어 하나님의 성품은 묵상을 통해서 아이들이 많이 생각해 본 것이지만 죄의 심각성이나 도덕법의 용도에 대해 설명 해야 하는 부분은 많은 도전이 되었다.  


자녀가 점점 자라면서 학교 성적과 대학 입시라는 과제가 점점 커지면서 초등학교 때 읽어주던 그림 성경책이나 동화는 어느덧 국어 영어 수학 참고서로 바뀌어 간다. 주일 학교에 참여하는 것도 학교의 행사나 시험 일정에 언제나 우선순위가 밀리고, 선행학습이 일반화 되었지만 설교 말씀의 내용을 미리 읽어보는 “예습”을 하고 예배에 참석하는 학생은 전무한 것이 현실이다. 신앙이 중요하다고 하지만 신앙 교육을 위해 스스로 준비하는 부모는 흔치 않을 것이고, 더 가르치기 위해 과외 선생님을 찾아보는 사람은 본 적이 없다. 성서유니온에서 출판되는 매일 성경을 초등학교 저학년부터 해 왔지만 아이들의 신앙은 오히려 사춘기, 청소년기를 거치면서 더 무디어지는 것 같다. 왜 이런 것일까? 그 근본 원인이 무엇일까 생각해 보면 우리 자녀들이 복음을 학교 중간고사 기말고사보다도 덜 중요하게 생각하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부모의 태도와 삶의 방식에서 그대로 배운 것 들이다. 자녀를 가르치기 위해서 선행될 조건은 부모가 먼저 신앙의 모범적 삶을 사는 것이다. 내가 신앙으로 사는 나의 삶의 완성도에 따라 부모로서 양육의 깊이도 달라진다. 나의 삶과 양육은 동전의 양면처럼 붙어있다. 복음을 전하는 방법에 있어 가정예배를 드리거나 교리문답을 하라고 제시되어 있는데 이 조건 자체가 그리스도 안에서 살아가는 전제를 요구하기 때문이다.  


책을 정독하고 아이와 함께 제시된 성경의 메시지를 전달하고 토의를 거쳐 이해가 완벽하다 해도 남는 숙제가 있다. 아이들에게 복음의 내용을 전하고 복음의 조명 하에 살아가는 구체적인 방법을 얘기할 때, 여러 세상적인 가치관을 거슬러야 하는 점을 발견하다. 소위 범생이 (모범생)이란 소리를 들어야 하고 적당히 타협하고 어울리지 못하는 편협한 아이라는 말을 들을 용기가 있는가 자문한다. 바르게 사는 것이 왕따가 되는 길일 수 도 있는데 나는 예외적인 삶을 선택할 수 있는가는 복음의 능력이 아닌가 한다. 돈과 하나님을 동시에 섬길 수 없듯, 세상 문화를 즐기며 신앙을 지킬 수 없다는 것을 어린 시절부터 깨닫는다면 오히려 성인이 되었을 때 이러한 갈등 상황을 헤쳐나갈 수 있을 거라고 기대해 본다. 그래서 하나님의 자녀로 자란 아이들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이 세상을 살아가리라는 믿음이 생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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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령의 조명을 받는 설교 - 설교자의 준비에서 회중의 들음까지
제프리 크로츠 지음, 이승진 옮김 / 성서유니온선교회 / 2011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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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자가 결론에서 밝혔듯이 설교자들은 성경적인 기준으로 설교 사역을 평가하는 방법에 대해 관심이 없고 출석 교인 수나 헌금 같은 성경 밖의 기준으로 설교의 성공을 평가하는 문제에서 출발하여, 저자는 성령의 조명을 받은 설교가 어떤 것인지를 구약과 신약을 통해 우리에게 상세히 설명해 주고 있다. 우리가 기도할 때, 묵상을 할 때, 교제를 할 때 항상 성령의 인도하심을 구하고 특별히 예배 시간에 설교자가 설교 하기 전 대표기도를 하는 분은 늘 성령의 도우심으로 성도들이 설교를 잘 이해하고 배우기를 기도한다. 그러나 그 성령의 비추심과 도우심이 구체적으로 어떤 것인가를 사도 바울의 예로 충분히 설명한 <성령의 조명을 받은 설교>를 통해 확실히 알 수 있어서 큰 은혜가 되었다. 성령의 조명은 설교자가 설교를 준비할 때 뿐 아니라 일반 성도가 묵상을 하거나 기도문을 준비하거나 개인 성경공부를 할 때 모두 적용되는 교훈임도 깨달았다.
또한 설교자가 단지 탁월한 학문적 연구나 소통 능력만을 가지고 설교하면 안 된다는 점과 특별히 성령의 조명을 경시하는 더그 패짓 등의 학자들에 대한 소개는 포스트 모던 세대의 기독교 지도자들이 가질 수 있는 약점을 잘 인식하게 해 주었다. 설교나 강의를 듣기만 하는 것 보다는 서로 토론하고 소통하는 과정이 있어야 한다는 주장을 하는 사람들을 만날 때 나의 의견을 정리하기 힘들었는데 사람들의 경험을 절대 진리보다 높이 올려 놓는 문제점이 있다는 것을 인식하게 되었다.  


한편 성경은 연구의 대상일 뿐 아니라 학자를 변화의 자리로 이끌어가는 주체라는 (p.102) 관점을 목회자 뿐 아니라 설교를 듣는 회중에게 공히 적용되어야 한다고 느꼈다. 들어서 인지하고 마음으로 느끼고 그것을 행동으로 옮기는 일련의 믿음에서 행동까지의 과정이 내 자신의 힘이 아닌 성령의 조명해 주심임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 로고스 logos 에서 파토스 pathos로 파토스에서 에토스 ethos 의 이행은 성령의 힘에 의해서만 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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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만 보는 바보 진경문고 6
안소영 지음 / 보림 / 2005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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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초정리 편지> <바르톨로메는 개가 아니다>와 이 책까지 3권의 책의 공통점이 있다. 주인공의 배움에 대한 열정이다. 배움이 넘쳐 흘러 식상해 버리다 못해 짐짝이 되어 버린 이 시대에 이런 가르침이 통하기라도 할까 잠깐 회의가 들다가도 진짜 배움이 뭔지 모르고 헤매고 있는 아이들이 아하 진짜 배움은 이런 즐거움을 주는구나 하고 깨닫게 해주는 책이다. 요즘 <나는 가수다> 라는 프로가 폭발적 인기를 끄는 이유 비슷할까. 매체가 너무나 많아지고 아무나 음반을 만들고 아무나 연주하고 노래해서 인터넷에 띄우는가 하면, 다른 한편에서는 철저히 상업적인 음악으로서 아이돌 그룹이 하루가 멀다 하고 쏟아져 나오는 가운데, 진짜 가수들이 나와 혼신의 힘을 다해 부르는 진정성을 보는 프로를 보며 가수는 이런 거야 하고 깨닫는 청중들은 진짜 가수를 느끼고 있다. 진짜를 느끼는 즐거움은 진짜 크다 


책만 보는 바보라는 뜻의 간서치 看書痴 라는 말은 인천 송도의 한 여자 고등학교의 도서관 이름으로 정해졌다. 책만 보는 바보란 그냥 책만 보고 빈둥거리는 사람이 아니다. 언뜻 그렇게 들리기 하지만 간서치는 진정으로 배우고 배움을 몸소 실천하는 즉 앎과 삶이 일치하는 사람이다. 이 책에서는 책만 보는 바보라 불리는 조선 후기의 인물 이 덕무를 둘러싼 친구들와 스승이 소설적으로 묘사되고 이 친구와 벗을 통해 배움의 과정도 진솔하게 서술된다. 이 배움을 실천한 이 덕무가 왕궁의 규장각에 들어가고 그 후 마을 관리가 되어 치리하는 과정은 삶과 앎의 일치를 보여준다.  

이 덕무는 서자로 태어났다. 간서치 할 때 치는 바보란 뜻인데 아마도 벼슬길에 나갈 길이 없는 서자가 책만 보고 있으니 바보로 보일 수 밖에 없다. 이 덕무는 농사나 다른 일을 해서 살 궁리를 하지 않고 오로지 책을 읽고 배운다. 그를 괴롭히는 가난, 추위, 근심, 기침 이 네 가지 고통을 해결하기 위해 그가 하는 일은 진짜로 책을 읽으며 공부하는 것이었다. 당시 서자는 양반 계급의 특권층 남성이 성의 노리개로서의 여성과 정욕을 만족시킨 후 만들어진 결과물에 불과하다. 그러니 인정받지 못하고 벼슬도 할 수 없는 현실의 답답함 속에서도 묵묵히 책을 보았다는 사실에서 크리스쳔의 생활을 생각해 보았다 하나님께서 채워주실 것을 믿고 그의 의를 구하는 구도자의 모습과 비슷하다. 하나님을 믿는 자녀는 삶에 대해 이런 저런 궁리로 머리를 채우지 않는다. 이 덕무처럼 성경을 읽으며 하나님의 뜻을 이해하려 애쓰고 하나님이 명령하신 대로 살려고 부단히 노력할 뿐이다. 그래서 이 덕무는 자신의 호를 청장 靑荘 푸른 백로라고 정한다. 눈 앞에 지나가는 고기를 필요한 만큼만 먹고 사는 욕심 없는 새라고 한다. 그 푸른 백로의 성품을 닮아 서자 제도를 타파하려는 혁명을 꿈꾸는 것도 아니며 부를 축적해서 자신의 신분을 상승시키려고도 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의 책읽기는 종교적이고 영적이기까지 하다. 


이 덕무의 딱한 처지에도 불구하고 그의 삶 속에는 정금 같은 친구와 진주 같은 스승이 포진하고 있다. 친구들 중에는 박제가, 이서구, 유득공과 같이 학문으로 맺어진 친구가 있다. 이들은 후에 한문학사의 네 대가로 역사에 남는다. 이 친구들의 공통의 운명을 짊어지고 서로 이해하고 위로하는 사람들이다. 친구를 바라보는 존경심은 나이를 초월한다. 또한 서로 배운 바를 이야기 하고 서로의 학문적 성숙을 시로 표현하기도 하고 음식을 나누기도 하고 서로를 걱정해 준다. 사실 요즘 국어에서 ‘친구’는 동갑인 사람 중에 친한 사람으로 그 뜻이 좁아 졌고 또 그 의미가 많이 오염되었다. 친구라는 말은 “내가 니 친구냐? “(너 예의가 없구나라는 뜻), “우리 친구들이 정말 잘했어요!” (유치원이나 학교에서 교사가 학생을 가리킬 때 쓰는 친구), “그 친구 맘에 안 들어” (사람의 대명사로서 친구) 등의 말에서 쓰임이 달라지고 있다. 그러니 주인공의 친구들에게는 친구라는 말보다 ‘벗’이라는 말이 더 어울리는 것 같다. 이메일이 없던 학창시절 편지지에 펜으로 꼭꼮 눌러 편지를 쓰고 마무리 할 때 항상 너의 벗 아무개라고 쓰던 시절이 있었다. 이 아련한 벗이란 말이 이 책에 등장할 때마다 우리 삶에서 벗들의 사귐은 이 덕무의 벗을 닮아야 할 것이라 생각했다.  

친구와 더불어 이 덕무이 스승은 연암 박 지원과 담헌 홍대용이 있다. 친구가 더 없는 위로를 주는 배움의 동반자였다면 스승은 코페르니쿠스적인 사고의 전환과 선입견을 버리고 사물을 바라보는 학문의 자세를 가르쳐 준다. 지구가 둥글고 움직인다는 지동설을 배우는 과정에서 스승은 새로운 세계를 열어주며 그 세계를 기쁘게 탐험하며 알아갈 때 진정한 스승 제자 관계가 성립함 알 수 있었다. 하나님을 아는 것도 이런 사고의 전환과 삶의 태도의 변화를 의미하지 않았던가.  

이 덕무와 그의 벗들은 열심히 학문을 닦고 스승을 만나 그들의 사상을 배워 드디어 중국으로 나아가 조선이 아닌 세상을 관찰한다. 드넓은 대륙에 발을 내딛고 더 많은 것을 배우고 느낀 후 대궐로 들어간다. 규장각 검서관으로 발탁된 것이다. 그들은 규장각 검서관이 되려는 스펙을 쌓은 것도 아니요 오직 순수한 마음으로 공부를 했을 뿐이다. 이런 공부 맛을 아는 학생이 몇이나 될까. 점수를 위해 공부하도록 만들어진 학교 시스템이 한탄스러울 뿐인데, 그런 환경 속에서도 배움이 무엇인지 알기 위해 청소년이 이 책을 읽기 바라는 부모의 마음을 가져 본다.  


사심 없이 공부하고 배운 바를 삶에 실천한 이 덕무의 삶은 이제 노년으로 접어 들어 기력이 쇠해간다. 그럼에도 이 덕무의 손자가 붓을 들어 하늘 천자를 쓰는 모습에서 대대 손손 할아버지의 뜻을 따르는 자손들이 생겨날 것이라는 희망의 메시지를 전해준다. 이 책은 성공이나 스펙 쌓기 등에 늘 우선 순위를 빼앗긴 친구와의 우정과 스승의 가르침, 배움의 진정성에 대해 깊이 느끼고 사고할 만한 시간을 허락해 주었다. 중간 고사 시험 공부하느라 정신 없는 아이에게 주말에 읽어 보라고 권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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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는 왜 싸우는가?
김영미 지음 / 추수밭(청림출판) / 2011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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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곳곳의 분쟁에 대한 의문이 풀고 공감하게 하는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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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가 지도해야 한다면
딕슨 에드워드 호스트 지음 / 로뎀 / 2010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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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른이 되면 무엇이 되고 싶냐는 질문에 CEO 가 되겠다는 아이를 만나면 나는 그 아이에게 물어본다.  그럼 CEO가 뭔지 아느냐고. 높은 자리에 오르고 성공하는 모습이 아주 어린 아이로부터 청소년에 이르기까지 너무나 이상화되는 것을 보면서 마음 한구석이 정말 서글퍼 진다.  우리 딸 학교의 영어 말하기 대회에서 1등 상을 탄 아이의 원고 주제는 장래 희망이었고 내용은 CEO 가 되겠다는 것이었다.  아이들에게 멋져 보이는 그 CEOD.E. 호스트의 <내가 지도해야 한다면> 에 나오는 지도자의 모습은 너무 멀기만 하다.  이 책은 지도자가 가져야 할 자격과 태도를 36개의 단상으로 잠언적으로 묘사하고 있다.  이 책에서 말하는 사실을 어떻게 아이에게 지도해야 할 지 그 길이 험난하다.  내가 지도해야 한다면이 아니라 내가 지도해야 하기 때문에 이 책을 읽었다.  이 세상의 부모와 선생님이 모두 아이들의 지도자 이다. 또한 아이들은 자라서 공동체, 회사, 학교 등 여러 모양의 사회 속에 속하게 될 것이고 그 속에서 또 지도자의 역할을 맡아야 할 때가 올 것이기 때문에 지도자의 모습을 바로 이해하는 것은 자라나는 아이들에게 중요한 과제라고 생각했다.

아이들은 학교에서 많은 지식을 배우고 그것을 충실히 암기해서 누구보다 빨리 시험문제에 적용하여 답을 고르는 훈련을 받고 있다.  학교 교육이 지식교육으로 흐를 때 부모는 아이에게 하나님을 믿고 그 분의 뜻을 따라 사는 자녀로 양육하는 것이 목표가 되어야 한다는 것은 너무나 분명하다.  문득 아침 조간신문을 보니 지식은 홍수처럼 흘러 넘치고 있었다. 본신문이 40쪽에 두 개의 부록(?)신문이 24, 거기에 광고지까지 더하니 70쪽이 훌쩍 넘는다.  한 달 신문을 보면 2천 쪽을 넘게 읽는 것인데 환경 운동가들이 외치는 종이를 절약하자는 구호가 무색하다. 인터넷을 비롯한 미디어의 힘에 의해 뿜어지는 지식의 총화를 보면서 나는 피로감과 무력함을 느낀다.  이런 기분을 입시 교육을 받고 있는 아이들이 느끼는 것이 아닐까 한다. 

넘치는 지식으로 사람들이 똑똑해 졌을 것 같지만 오히려 더 어리석어 지고 있다. 유럽 사람들이 미국인들을 보고 우상 없이는 살수 없는 Big Baby 들이라고 놀렸던 말이 우리 아이들에게도 적용된다.  이른바 아이돌 (idol) 스타가 정신 없이 많이 등장하며 대놓고 우상숭배를 하고 있다.  아이들에게 아이돌이 우상이란 뜻이라고 말해주면 교회에 다니는 아이들은 화들짝 놀란다. 우상숭배가 하나님이 가장 증오하는 것이라는 걸 배웠기 때문인 것 같다.  그런데 놀람도 잠시, 하나님이 싫어하는 우상과 아이들의 우상은 다른 것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각자의 우상으로 평안히 돌아가고 있다. 또 우리 사회는 연예계의 아이돌 뿐 아니라 사회 어떤 일에 종사하는 사람이든 아이돌로 만들기 좋아한다. 황우석 박사, 올림픽 금메달을 목에 피겨 여왕, 또 칠성급 호텔 총괄주방장이라던 권영민씨등, 대중은 끊임없이 열광할 대상을 원해 우상을 만들지만, 곧이어 배후 의혹이나 음모론등의 미스터리를 만들기 좋아하는 대중은 실컷 부풀려 만든 우상의 거품을 빼거나 폭로라는 자극적 방법으로 변덕스럽게 자신들의 작품을 망가뜨린다.  CEO도 이런 스타 만들기 풍조에서 나온 결과가 아닐까 싶다.  열심히 일하다 보니 승진했고, 혹은 작은 회사가 성장해서 큰 기업이 되는 과정에는 관심이 없고, 부자라서 멋지고 폼나게 메스컴에 나오니까 CEO가 되고 싶어하는 것이다.  아이들에게 그건 정말 아니야 라고 말해 주고 싶었다.  그래서 <내가 지도해야 한다면>을 부모님들이 읽어보길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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