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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인들
엘프리데 옐리네크 지음, 류소연 옮김 / 다른우리 / 2004년 11월
평점 :
품절


'연인들'은 다가가기 쉬운 책은 아니다. 겪어본 바 없는 젊은 여성의 삶을 소재로 한데다 극히 냉담하고 건조한 문장과 감정이입을 방해하는 브레히트적인 장치가 결합된 작가의 글은 대중이 기대하는 일반적인 쾌락을 제공해주지 못한다.  

하지만 뒤집어 보자. 책을 찾는 이유는 경험해보지 못한 세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혼적령기에 이른 여성의 내면을 정제된 글로 접해보는 기회는 분명 의미가 있다. 더구나 주제에 대한 작가의 접근은 공감과 이해와는 거리가 멀다. 앞서 말했듯 작가의 글은 독자를 소설의 인물들과 떨어뜨려 놓는다. 멀어진 거리만큼 객관화되고 확장된 세계가 펼쳐진다.  

책은 소설의 공간에 대한 묘사로 시작된다. 계곡과 언덕으로 둘러싸인 오스트리아의 한 도시는 그림같은 곳이다. 그곳에 자리잡은 재봉공장은 태초부터 자연과 함께 한듯이 보이지만 만들어진 원리는 전혀 다르다. 이윤추구를 위해 세워지고 숫자와 욕망의 경영기법으로 유지되는 하나의 유기체이다. 출근해 일하며 삶을 지속하는 군중들에 소설의 이야기가 있다.  

우리의 삶은 계곡과 언덕이 아니라 공장에 있다. 낭만을 분리해 접근하는 소설의 두 주인공의 사랑은 동물의 왕국에 가깝다. 물질이 제공하는 안락에의 탐욕을 위해 여성은 남성을 탐색하고 구애한다. 이성이 연인관계로 발전해 결혼에 이르는 과정에 일반적인 의미의 사랑은 없다. 따지고보면 사랑은 얼마나 모호한 단어인가. 돌이켜보면 많은 경우에서 이기적인 감정을 합리화하기 위해 쓰였다.  

작가는 사랑을 '상대의 미래를 소유하는 것'이라고 표현한다. 소유와 종속으로 규명된 감정의 명령에 따르는 극의 인물들은 많은 생각을 낳는다. 그들의 생애를 거침없이 헤집어 놓는 작가의 통찰이 너무나 예리하기에 이를 단지 여성의 문제로 국한시키기 어려워진다. 가장 기본적인 단위부터 회의적으로 해체하는 작가의 접근은 사회 속의 나에게 이른다. 이를 체계적으로 풀어내기에는 나의 능력은 턱없이 모자라다. 다만 당연하게 보였던 것에 회의하는 기회가 된 것에 만족할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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러브 인 뉴욕 - 마음을 읽는 고양이 프루던스의 샘터 외국소설선 11
그웬 쿠퍼 지음, 김지연 옮김 / 샘터사 / 2013년 12월
평점 :
절판


정말 상투적인 제목이다. 표지의 고양이 그림이 아니었다면 본 책을 들 일은 없었을 것이다. '러브 인 뉴욕'은 E.T.호프만의 '수코양이 무어의 인생관' 이래로 반복되온 문학적 컨셉트가 등장한다. 밀착하지 않으면서도 사람과 함께 하는 양가적인 매력의 고양이를 관찰자이자 화자로 삼아 인간사를 읊는다. 그러나 그웬 쿠퍼의 글은 표피의 감성만 더듬을 뿐 통찰은 없다. 더구나 시점이 예고없이 이동하는 장황한 구성의 스토리는 대단히 방만하다.  

그럼에도 손에서 책을 못 놓게하는 공감이 있다. 이는 작가가 애묘인이고 그를 읽는 나 역시 그렇기에 가능했다. 반려동물이면서도 개와 확연히 다른 고양이만의 습성에 대한 묘사는 고양이를 직접 기르고 사랑하는 사람이 아니라면 불가능한 서술이 있다. 결정적으로 고양이를 통해 우리로 향하는 결론은 개인적인 체험을 깨운다.  

고양이를 잃은 적이 있다. 창문에서 뛰어내려 골목 어딘가에 숨어있을 고양이를 찾아 헤메다 직장에서 해고되었던 일을 아는 몇몇은 나를 미친놈이라 불렀다. 동물을 동물 이상으로 사랑하는 감정이 왜인지 부끄러워지는 사회에서 슬프면서도 슬픔의 근원을 토로하지 못하는 상황에 어쩔줄 몰라했다. 과연 당시의 행동이 제대로 감정을 발산하지 못해 왜곡된 집착이었을까. 소중한 존재를 사랑하고 최선을 다하는 태도는 단지 극성이었을까. 그 대상이 인간이든 인간이 아니든 말이다.  

소설의 고양이 프루덴스는 거리에서 사라에게 선택되었다. 사라는 곧 죽고 그의 딸인 로라가 프루덴스를 맡지만 둘의 사이는 시큰둥하다. 시간이 흐르며 로라는 프루덴스를 통해 어머니의 흔적을 찾는다. 고양이는 인간과 거리를 두며 무시하는 듯 도도하게 고개를 돌리고 있지만 인간의 일거수일투족을 감지하고 응축하고 있었던 것이다. 물론 이런 과정이 작가의 평범한 글로 인해 문학적으로 훌륭하게 승화되지 못한 점은 아쉽다. 그러나 애묘인다운 관찰은 왜인지 나에게 위로가 된다.  

현재 함께 사는 고양이를 쓰다듬으며 가끔 나를 만나기 이전에 녀석의 태생을 사이코매트리하듯 상상한다. 하루하루 전쟁이었을 길 위에서의 삶은 전술한 과거로 이른다. 상념들이 꼬리에 꼬리를 물수록 매개체에 대한 사랑으로 상호상승한다. 소설의 로라가 프루덴스로 인해 사라지는 것의 소중함을 깨닫는 과정을 통해 누구에겐 하찮아 보일 수 있는 존재에 대한 사랑을 폄하하지 않는 글의 정서는 유독 가슴을 울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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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년 시절
존 쿳시 지음, 왕은철 옮김 / 책세상 / 2004년 7월
평점 :
구판절판


'소년 시절'은 존 맥스웰 쿳시의 자전적인 책이다. 앞서 읽었던 쿳시의 문학이 어디에서 유래했는지를 직접 확인할 수 있는 기회이다. 쿳시의 고향이라던 남아공 내륙 고원지대의 풍광 하나하나를 목장을 오가는 과정에서 목격하며, 복잡다단한 남아공의 인종지형을 작가의 태생에서 실감할 수 있다. 야만적인 광야에서의 생과 죽음에서 쿳시의 문장은 탄생했다. 

남아공 통치계급의 주류이며 네덜란드인의 후손을 일컫는 아프리카너도 아니고 당연히 피지배계급도 아닌 쿳시의 혈통을 따라가다 보면 절묘한 위치에 있었던 문학적 시선의 연유를 조금이나마 납득할 수 있다. 요컨대 쿳시는 지배계급의 소수자였다. 일반적인 상식과는 다르게 영국계는 남아공의 비주류였던 것이다. 소년 쿳시는 거칠고 덩치좋은 아프리카너 또래들에게 일방적으로 밀리며 국가의 권력구도를 체득한다.  

쿳시는 노벨문학상 수상 소감에서 어머니부터 언급했다고 한다. 누구나 그렇겠지만 쿳시 역시 어머니에 대한 그리움이 각별했던 모양이다. 그의 문학에서 중심에 섰던 여성의 목소리의 근원이었을 어머니에 대한 묘사 역시 본 책에서 큰 부분을 차지한다. 이를 통해 작가의 많은 작품에서 혼란스러웠던 구조가 어느 정도 해석된다. 다만 간명한 쿳시의 문장은 모자의 뜨거운 감정에 별 관심이 없다. 어머니와 아버지와 자신의 삼각관계를 통해 세상의 진실을 조금씩 엿보기 시작하는 과정은 작가의 이름값에 걸맞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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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자책] 바다의 가장자리 레이첼 카슨 전집 3
레이첼 카슨 지음, 김홍옥 옮김 / 에코리브르 / 2020년 2월
평점 :
판매중지


'우리를 둘러싼 바다'는 중대한 결점을 가지고 있기에 남에게 추천할 수 없다. 바다의 기원과 생태를 설명하는 본 책은 1963년에 출판되었다. 반세기가 지난 출판시기는 하루가 멀다하고 새로운 과학적 성과로 업데이트되는 현대에 어울리지 않는다. 책의 내용은 과알못의 눈으로도 거슬리는 점이 상당하다.  

이제는 일반인에게 상식이 된 알프레드 베게너의 대륙이동설에 따른 지식들이 반영되어 있지 않다. 또한 페름기의 거대 동식물들을 한 순간에 멸망하게 만든 이유를 설명하는 가설들이 책이 출판될 당시에 분분했으나, 최근에 이르러 멕시코의 유카탄 반도에 떨어진 운석의 여파였다고 밝혀졌다. 그러니 바다의 생성에서부터 현재에 이르기까지 유기적으로 서술되는 글의 특성상 오류의 도미노를 일으킬 수 밖에 없는 것이다.  

다만 책의 존재 이유는 이해한다. 세계대전 이후에 번영의 길로 들어서던 시기에 바다는 무한하다고 막연히 인식되었다. 바다의 동식물들은 남획되었다. 핵실험이 바다에서 이뤄졌고 핵폐기물이 바다로 폐기되었다. 그런 무지한 시대에 자연의 순환은 우리 생각보다 재빠르기에, 순환의 고리에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바다가 인간에게 재앙을 되돌려 줄 것이라는 경고의 의미로 쓰여진 글의 의도는 오늘날에도 유효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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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책의힘 2019-02-15 12:44   좋아요 0 | 댓글달기 | URL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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