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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쟁과 가족 - 가족의 눈으로 본 한국전쟁
권헌익 지음, 정소영 옮김 / 창비 / 2020년 7월
평점 :
소년은 한밤중 문을 두드리는 소리에 일어난다.
그리고는 문지방에 선채 전깃불을 비추는 사내들로부터
이쪽인지 저쪽인지를 묻는 질문을 받는다.
이쪽이라고 대답했을 때 저쪽이면 쏠 것이고,
저쪽이라고 대답했을 때 이쪽이면 쏠 것이었다.
소년은 어떤 대답도 할 수 없었던 당시를 떠올린다.
중학교 다닐 때 읽었던 윤흥길의 '장마'에는
한국 전쟁 이후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이야기가 담겨 있었다.
아니, 어쩌면 여전히 한국 전쟁 시기를 살아가고 있는 이야기였는지도 모르겠다.
작년에 아이들을 대상으로 하는 도서관 지원 사업으로
역사 동화를 주로 쓰는 정명섭 작가와 함께
3.1운동 100주년 기념 '어린만세꾼(사계절)'
작가와의 만남을 진행한 적이 있었다.
100주년이 왜 중요한지 알고 싶다는 물음에
그 역시,
역사는 경험하지 않은 사람들이 어떻게 기억하느냐가 중요하다고 했다.
특히나 100주년은
그 해에 태어난 사람도 더 이상 생존하기 어려운 시간적, 현실적 어려움에 당면하는 때인 것을 감안하면
더더욱 그러하다고 했다.
전쟁을 경험하지 않은 나로서는
6.25는, 한국전쟁은 그저 책 속에 담긴 사진과 문자로만 대하는 것이었다.
종전이 되지 않았다는 사실과
휴전중이라는 현실에만 집중하면 되는 것이었다.
많은 전후 소설을 통해
전쟁을 겪은 자들의 슬픔과
가족적 아픔을 문학적으로 경험하기는 했지만
전쟁의 참상은 육체적이고 시각적인 것에 가까웠다.
이념 간의 전쟁이었고,
냉전 간의 대리 전쟁이라고 머리로는 이해하고 있었지만 말이다.
한국전쟁은 수많은 내전 중 하나로 기록되어 있었지만,
사실은 탈식민의 한국에서 또다른 종류의 전쟁이 있었다는 사실이
최근의 연구를 통해 밝혀지고 있는 시점에서
권헌익 교수의 '전쟁과 가족'은
한국전쟁 70주년이 되는 올해 등장한 반가운 책이다.
특히 한국전쟁을 사상의 측면이나 세력간의 다툼에서 이해한 것이 아니라
가족의 관점에서, 관계의 관점에서 해석한 것이 돋보였다.
"이 논의의 핵심은
전쟁의 경험자들이 더 이상 존재하지 않을 때,
그 전쟁을 어떻게 기억할 것인가라는
시간과 세대의 문제이다"라고 표현한 문장이 특히 마음에 들었다.
한국전쟁은
여전히 지속되고 있는 과거의 시간을
어떻게 기억하느냐에 따라
앞으로 어떻게 풀어갈 수 있느냐도 결정될 것이라는 생각이 들었다.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고,
가해자가 피해자가 되었던 전쟁.
원하든 원치않든 삶의 터전을 버리고
그 어딘가를 향해 대규모 이동의 행렬에 올라야 했던 전쟁.
지옥같던 시간이 지난 후에도
재결합을 바라는 마음과
연좌 처벌을 받게 될 지도 모른다는 공포 사이에서 시달려야 했고,
한 지역, 지역 내, 심지어는 한 가족 안에서도 양분되는 혼란스러움을 겪어야 했던
70년을 담고 있었다.
전쟁으로 죽은 자들을 애도할 수 없는 그들은
국민이었지만 국민이 아니었고,
가족이었지만, 가족일 수 없었다.
죽은 자들의 존엄을 회복했을 때,
산 자들의 존엄함도 회복될 수 있다는 말이
가까운 듯 멀게 느껴졌다.
(아직도 제주 4.3은 '4.3' 또는 '사건'으로 남겨져 있기 때문인지도 모른다.)
70년 전 전쟁의 상흔이 남아있는 우리의 모습을 보면서
앞으로의 70년이 어떠할지 가늠되지 않았다.
다만 분명한 건,
조금씩 나아가고 있다는 것과 나아갈 것이라는 기대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