작가의 이름이나 다른 어떤 후광이 아니라 작품 그 자체로 인정받고 싶다는 창비만의 독특한 시선이 담긴
블라인드 서평 시스템
선뜻함이 느껴지게 때로는 직설적이지만,
작가만의 따뜻한 시선과 세상에 대한 호의가, 배려가, 위로가 느껴지는 이 작가.
분명 이런 느낌을 받았던 적이 있었는데..
기성 작가인가 싶기도 하다가 신인인가 싶기도 하다가.
읽고 나서야
아... 이런 문체 누구였지? 누구였지??
했지만 ㅠ 복면가왕 볼 때처럼 아직까지는 뚜렷한 대상 작가를 찾지 못하고 있다.
(어쩌면 발표 직전 아! 그래, 그 사람 아니야? 할지도 모르겠다. )
사실 읽는 동안은
'나'에게서 빠져나온 이 두 영혼, 한수리와 은류가 어떻게 될 것인가를 생각하느라
작가고 뭐고, (죄송합니다.. ㅎㅎ)
캐스팅이고 뭐고 (또 죄송ㅎㅎ... 글이 너무 좋았다니깐요)
생각할 겨를이 없었다.
말 그대로 몰입감 최고였고, 전개도 빨라서 마음에 들었다.
(지난 번 스노볼보다 복잡하지 않은 것도 매력적이었다. 스노볼이 안 좋았다는 건 아니고.. ^^: 나는 현재에 충실하다 ㅎㅎ)
한수리와 은류 두 사람의 시선으로 교차되는 <나나>는
어느 날 영혼이 빠져 나오면서 일어나는 일주일 간의 이야기를 그린다.
보통은 영혼이 빠져 나오면 그 육체는 죽거나 혹은 식물인간처럼 제 구실을 할 수 없을 거라고 생각하겠지만
작가는 요즘 흔히 쓰는 말 - 영혼을 갈아 넣었다, 영혼이 1도 없다,는 말을 실현시키고 싶었던 모양이다.
어쨌든 한수리와 은류는 버스에서 일어난 가벼운 사고로 영혼이 육체로부터 떨어져 나오게 되고,
영혼 사냥꾼 - 선령으로부터 자기 육체로 돌아갈 수 있는 시간은 일주일 뿐이라는 이야기를 듣는다.
육체로 돌아가기 위해 육체 주변을 끊임없이 맴도는 수리와 달리
류는 육체는 육체대로 남아 살고, 자신은 선령을 따라 저승으로 가도 상관 없다는 듯 말한다.
둘은 어쩌다 영혼을 잃어버리게 된 것일까?
수리는 성적에서부터 친구관계 심지어는 SNS까지 완벽하게 관리하는 완벽한 아이였다.
적어도 영혼이 육체와 함께 있을 때는 그랬단 말이다.
학교에서 일정을 소화하는 날은 물론이고 주말까지도 분단위로 어떻게 하면 내게 좋을 지를 계획하고
나를 몰아 세우며 지금까지 왔다.
그렇게 나를 위해 무엇이든 감수하고 참아가며 살아왔다고 생각했는데 이게 웬걸,
육체가 감히 나 한수리의 영혼을 받아들이지 않는다.
무엇보다 강한 결계가 쳐져있다는데, 육체가 날 원하지 않는다니. 이해할 수 없다.
반면 류는 언제나 예스맨으로 살아왔다.
내 생각을 쉽게 이야기 할 수 없었다.
내가 솔직하게 말하면 아프고 어린 동생을 돌보느라 지친
엄마가, 아빠가, 할머니가 나를 버릴 것만 같았다.
그러던 어느 날 진짜로 동생이 떠나버렸다.
내가 떠나도 괜찮을 것 같았다. 어떻게 되어도 좋을 것 같았다.
수리와 류는 영혼으로 떨어져 나오고 나서야
'나'를 객관화하기 시작한다.
진짜 나를 위하는 게 무엇인지,
진짜 내가 하고 싶었던 것은 무엇인지
서서히 알아가기 시작한다.
둘 다 겉으로는 아무렇지 않아 보였지만
속으로는 아무렇지 않다고 생각해왔지만
그렇지 않았음을 깨닫기 시작한다.
진정한 '나'로 돌아가기 위해 '나'는 성장하기 시작하지만
아니, 어떻게 보면 뒤로 걷고 있는 것처럼 보일 지도 모르겠다.
하지만 개구리가 더 멀리 뛰기 위해서는
그 어느때보다 몸을 움츠려야 한다고 했으니까..
선령이 드라마 '도깨비'의 김신(공유)이나 저승이 정도로 비중있게 나올 줄 알았지만
아쉽게도 그 정도는 아니었다.
하지만 수리와 류가 제자리를 찾아가는데 이보다 더 중요한 역할을 해줄 이가 또 누가 있었을까?
이처럼 따뜻한 선령이 정말 있으면 얼마나 좋을까?
영혼 사냥꾼이라기 보다 영혼 돌보미 같은 느낌이었다.
사실 그가 지나간 자리마다 냉기가 흐르는데도 말이다.
겉바속촉식 선령인가? ㅎㅎ
육체를 잃어버린 수리와 류는
주어진 시간 안에 과연 육체로 돌아갈 수 있을까?
아니면, 정말 저승문턱을 밟게 되는 걸까?
'나'에게서 '나'로 돌아가기 보다
'나'에게서 '나'를 발견하는 시간이길 바란다.
'나나'를 읽는 모든 이들에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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