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수의일 #블라인드가제본 #블라인드서평단 #창비 #창비청춘소설 #청춘 #첫사랑 #성장 #치유 #호정 #은기 #나래와지후 #차마
이야기의 시작은 뜬금없었다.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다." (p.7)
내 마음은 호수요, 할 줄 알았는데
그대 노 저어오오, 할 줄 알았는데
'얼어붙은 호수'랬다.
그래서 '안전'하다고 했다.
뭘까, 이 사람은 또 무슨 이야기를 품고 있는 걸까
한 페이지를 넘기니
의사가 등장했다.
호수요?
의사가 물었다. 호수라는 말이 뜻밖이었나 보다. 나조차 그랬다. (p.8)
무슨 일이 있었던 거였군.
좋지는 않은 것이겠군.
나와 가까운 누군가에게 무슨 일이.. 생겼던 거겠군.
벌써 가슴이 조마조마하다.
분명히 청소년문학으로 알고 받은 책이었는데.
아, <아몬드>와 <유원>을 잇는다고 했었나?
#호정
호정이는 여느 고1과 다름 없는 아이다.
매일 들어야 할 인강을 미루게 되고,
야자 시간을 째지는 못하지만
그렇다고 야자를 열심히 하는 것도 아닌.
헤드폰을 끼고 있지만
그냥 친구들의 잡다한 소리를 듣는 게 좋은
평범한 애.
#은기
전학생이 왔다.
강은기라고 했다.
그런데 이상하다.
페북이나 인스타만 없는 게 아니다.
카톡계정도 없다.
호정이는 은기가 궁금하다.
하지만 묻지 못한다.
말할 수 없는 것들이 있다. 말해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다른 사람의 눈길만으로 아파지는 것들이 있다. 돌이킬 수 없으면서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사라진 후에도 사라지지 않는 것들이 있다. (p.131)
#첫사랑
호정이는 은기와 만두를 먹으러 갔다가
눈물이 터지고 만다.
'미쳤나봐, 너 왜 이래?'
했지만
"나 잘 안 울어. 안 우는 애야."
하고 말했지만
그때 은기가 내 손을 잡았다. .. 우리는 그저 손을 잡고 있었고, 온통 흔들리고 있었다.
은기는 왜냐고 묻지 않았다. 울지 말라고 말하지도 않았다. 은기도 알고 있는 거였다. 스스로 설명할 수 없는 눈물이 있다는 걸. 은기도 그렇게 울어 본거였다. (p.160)
호정이는 은기에게 마음이 기운다.
#A군
"너 우리보다 한 살 많고, 수원 살다 왔고, 맞지? 정호정이 그랬다는데?"
은기의 놀란 눈이 내게로 날아들었다.
... 그 순간 은기는 농구공을 떨어뜨리고 교실에서 나갔다. 그리고 두 번 다시 돌아오지 않았다. (p.203)
은기가 사라진 후,
은기가 사라진 자리에서 은기를 파먹는 많은 말들이 있었다.
은기가 있던 모든 자리에서
그 말들은 호정이를 물어뜯었다.
하지만 호정이는 울지 않는다. 나는 울지 않는 애라고 마음을 다잡는다.
#침몰
호정이 곁을 지켜준 건 나래와 지후였다.
은기가 있기 전처럼 돌아간 것 같지만, (아니 그렇게 행동해 주는 나래와 지후가)
버겁다.
호정이는 얼려 놓았던 자신의 마음이 우르르 무너지는 걸 느낀다.
외롭다는 말보다 그 마음을 먼저 배운 호정이는
봉인해 두었던 오래된 내가 한꺼번에 걷잡을 수 없이 비어져 나오게 둘 수밖에 없었는지도 모르겠다.
우울은 내 안에서 숨죽여 나를 지켜보다 어떤 계기로 행동에 나선다고 한다. 그걸 우울증 삽화라고 하는데, 의사는 내 경우를 중증의 우울증 삽화라 했다.
어떤 계기. 그 말이 내 안의 그 애를 아픈 나를 슬프게 한다. 손쓸 겨를 없이 눈물이 쏟아지곤 한다. 의사 앞에서도, 침대를 둘러싼 커튼 속에서도. (p.301)
비로소 내 입에서 흘러나온 말들과 함께 그 아이가, '아픈 나'가 달래진 걸까. 그 애는 말을 하고 싶었던 걸까.(p.302)
호정이의 마지막 말이 여전히 가슴에 남는다.
내 마음은 얼어붙은 호수와 같아 나는 몹시 안전했지만,
봄이 오는 일은 내가 어쩔 수 있는 게 아니었다. (p.350)
안온하길 바랐던 나의 생활은, 가족은, 상처는
끝까지 평안할 수만은 없었던 거다.
흔들리고, 소리치고, 싸우면서, 또 무너져가면서 다시
멈추고, 귀기울이고, 화해하며 또 나아가는거였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녹기 시작한 호수의 심연이 더 단단해지면 좋겠다.
아무 걱정 없을 것만 같던 나래도,
확고한 꿈이 있는 지후도,
혐오와 비난을 지고 살 은기도,
모두의 이야기가 내 어릴 적 이야기인 것만 같았던 이야기.
<호수의 일>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