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터치 1
아다치 미츠루 지음 / 대원씨아이(만화) / 2000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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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판


미유키와 같은 시기에 연재했던 아다치의 명작. 우리나라에서는 예전에 H1이라는 제목의 해적판으로 출간된 적도 있다. 이후 작품들에서 많이 보이는 양대 영웅,완성된 천재와 미완성이지만 발전할 여지가 계속 남아있는 주인공이라는 구도의 초석이랄 수 있다.

아다치는 이 시기에 극단적인 면모를 보이는데,동시 연재중인 미유키에서는 굉장히 정적이고 느릿하며 반복적인 구조를,터치에서는 부드럽지만 매우 격정적이고 감정의 기복이 심하며 스피드감이 있는 양극화로 각각의 성공을 이루어냈다. 이 구도는 후작들에서 조합되어 정적이면서도 격렬한 모순적인 매력을 그의 작품들에 부가하였다.

지금 같은 시류라면 죽음이라는 소재는 식상하기 그지 없지만,이 작품에서 나오는 단 한 번의 죽음은 이야기의 중심에서 전 편의 내용을 이끌고 있다.죽은 천재 에이스 카츠야를 대신해 마운드에 선 쌍동이 형 타츠야,자신이 확신하지 못하는 재능과 동생의 대타로 선듯한 느낌이 주는 압박감,그로 인한 자신감의 상실,그리고 소꿉친구 미나미와의 관계에서 동생보다 우위를 차지 하고 있었지만 동생의 죽음으로 인해 오히려 자신이 대타가 된듯한 상황,그리고 그 '반칙적' 행위에 대해 용납 못하고 다가가지 못하는 두 사람. 여느 트렌디 드라마들처럼 '죽어서 슬프다'가 아니라 그 한 번의 죽음이 분파시킨 수많은 상황들이 빠르고 조용하게 흘러간다.

아다치 미츠루하면 빼놓을 수 없는 '소년만화에 소녀적 감성의 삽입' 또한 미유키보다는 약하지만 가장 자연스러운 형태로 이루어져 있다. 남녀가 함께 볼 수 있는 열혈(?)스포츠 만화.애니메이션으로는 최근에도 후편에 해당하는(애니메이션 오리지날) 작품들이 두 편 가량 만들어졌으며,오리지날의 경우도 TV판과 극장판 등으로 인기를 끌었다.다른 작가라면 스포츠 만화에는 어울리지 않을지도 모르는 아다치식의 곡선형 펜선 또한 이 만화의 백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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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지 문예출판사 세계문학 (문예 세계문학선) 6
펄 벅 지음, 안정효 옮김 / 문예출판사 / 200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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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화와 불안의 시대,봇 터지듯 밀려든 서구의 물결과 혁명의 사회 분위기 속에서 세월과 시류에 흘러가고 또한 움직이며 살아가던 왕룽 일가의 일대기. 이 것은 그 길고 혹은 짧은 기록의 시작이다. 왕룽 일가의,아니 그 시대의 중국을 비추는 거울.

빈곤한 안정 속에서 전통과 관습에 따라 혼인을 올린 왕룽,그리고 변혁을 시작하는 중국.중국이 열강의 틈에서 몸부림 치는 사이 왕룽은 빈곤 속에서 빠져나오기 위해 허우적 대고 희망조차 없으면서 그 몸부림은 끝을 모른다. 혹은 그 몸부림 자체가 그에겐 위안이었을지도,아니 그 시대의 불안에서 벗어나려는 현실 도피의 수단이 그 당시의 중국에겐 필요했는지도 모른다.왕룽에게 있어서 부유와 행복이란 오직 땅으로서만 이해되었고 그에게 삶이란 부유로의 매달림 그 자체였다. 그 또한 몰락해가던 중국의 체제와 사회,그리고 자존심에서의 추락과 결별이 함께 한다.

오란의 죽음은 어찌 보면 그러한 일변도적 몸부림의 브레이크의 완벽한 사망,그리고 근대 중화 그 존재의의가 이제는 힘을 잃었음을 시사하는지도 모른다. 그렇게 왕룽은 부유해져 가고,대지는 그에게 행복감 그 자체로서 남는다. 그에겐 아들들이 있고,큰 집과 첩이 있고,무엇보다도 그가 그토록 원했던 대지가 있다.

그 또한 부의 껍질을 얻었으나 그의 마음에 있어 의지는 구시대적 가치인 대지일 뿐,그 뿌리는 전통에서 벗어나지 못한다.왕룽은 대지에서 행복을 얻고,대지에 꿈을 싣고,대지를 얻은 후에도 자신의 소유가 아닌 자신의 목표로서 몸은 나태하고 추하되 대지를 향함만은 순수하다.그리고 아들들은 성장하고,그들과 함께 중화의 불안 또한 다른 형태로 자라난다.

죽어가는 왕룽,그리고 그의 땅에 대한 집착,아들들에게 매달리는 대지의 꿈,그러나 그의 영원할 듯한 생명,대지는 아들들의 웃음 속에 비친 서로간의 암묵적 합의 속에서 사라져 가고,전통은 종말을 고한다. 그리고 중국은 또 한 번의 물결을 맞이한다. 대지의 경우는 연작소설의 첫번째 권이다. 이 책을 읽고 나름의 느낌을 얻을 수 있었다면,나머지 두 권도 읽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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소녀경 1
강영수 / 문학수첩 / 1999년 6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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왜 성에 관한 이야기만 나오면 아직까지도 음서 취급을 받고 무시당하고 박해받아야 하는지 이해를 할 수 없다. 이 책의 내용을 굳이 말하자면 '방중술의 탐구'라 볼 수 있다. 성에 대해 약간 회의적인 모습을 보인 소설 '옥보단'과는 반대로,이 소설에서는 그 동기는 비록 불순할지도 모르나(불로 장생...)성 자체에 대한 긍정적인 발전에 대한 탐구와 동양의 의학 혹은 철학이랄 수 있는 관점에서 본 성행위와 그 기술들의 집약,혹은 탐구의 모습을 보여준다.

이른바 요즘 같은 때에도 보기 힘든 성 그 자체에 대한 순수한 탐구라고도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지식 쪽으로 보탬이 될 수도 있고 읽는 사람에 따라 직접적인 영향을 끼칠 수도 있을 정도로 자세하며 방대한 이야기를 모아 놓은 작품. 하지만 그보다는 자신의 성적 관념과 성에 대한 태도(순수한 성행위 그자체만을 두고 볼 때)에 대해 돌아 볼 수 있는 계기가 될 것이다. 새끼 손가락만큼도 야한 분위기 안나니까 에로 소설을 원하는 부분은 다른 걸 찾아보시는 게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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만화 한단고기 1 - 환인천제편
한재규 지음 / 북캠프 / 2003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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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이 책을 읽어보고서 그런 분류를 한 건지 모르겠다. 나름대로 한단고기를 만화로 그려냈다는 점과,자세한 비교적 분석등이 정말 의미 있는 시도이고 역사에 대한 대중의 관점에 긍정적 영향을 끼칠 수 있다는 점도 인정한다. 하지만 문제는 많다. 인과적 구성에 있어 가린 것이 많다는 점,왜곡을 유도하는 구성이 보인다는 점도 그렇다.이른바 사학계에 있어서 언더적인 입장을 고수한 책인데,음악으로 치면 하드코어라는 얘기다.

한단고기,혹은 환단고기가 '위서'의 논쟁을 차치하고라도 그 자체가 굉장히 사료로서의 근거가 빈약하고 현실성이 모자라는데도 불구하고 이러한 책을 아동용으로 소개,혹은 의도적으로 그렇게 만들었다면 좀 문제가 많다고 본다. 사료와 고증을 통한 고고학적 사관에 관해서는 환단고기와 방식이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식민 사관으로 몰아부치고,비유적 표현에 관해서도 알면서 고의적으로 근거까지 들어가며 반박하는 모습을 보이건만 정작 환단고기 내에서의 의문점과 의심 가는 부분에 대해서는 싹 모른체 하는 입장을 이 책은 고수하고 있다.

다시 말해,획일적인 단정적 사학 교육에 문제를 제기하는 소재는 될 수 있으나 아직 분별력이 현저히 모자라는 초 중학생들에게는 현저히 위험한 책이다. 흔히 '빨간 책'이라 불리는 그런 것보다도 더. 개인적으로는 18금 딱지를 붙여야 한다고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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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세암 영화처럼 아름다운 동화 2
정채봉 지음, 정리태 옮김 / 샘터사 / 2003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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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불교적인 감성이라고 말들을 하지만 그보다는 설화적,신비적 감성에 아동에 대한 정채봉 선생의 시각과 보편적 전통 의식이 몽타쥬된(오버랩이 아니다.) 동화라고 생각한다. 최근의 애니메이션이 아니라도,대부분의 사람들이 어린시절부터 읽어왔던 원작동화,아동용 꽁트,영화,교과서에 실린 부분들 등으로 익숙해 있으리라 생각한다. 그만큼,어느 연령이 읽고 어느 때에 누가 읽어도 감동받을 수 있는 작품.

표절이라는 오해를 받을 정도로 스페인 작가 호세 마리아 산체스 시르바의 '빵과 포도주의 마르셀리노'라는 동화와도 많이 닮았고,아마 작품 자체도 이 작품의 영향을 많이 받았으리라 생각한다.그러나 오세암의 길손이에게는 마르셀리노 따위는 가질 수 없는 순수한 지고의 매력이 있다. 마르셀리노의 경우,아이이지만 아이가 아니다.단순히 어른의 시각에서 동화적으로 꾸며낸 아이다움과,기독교적인 이상적인 감성,그리고 그 안에 강조되고 있는 사랑과 자비,역겨울 정도로 작위적인 모습에 비해 길손이는 그저 아이일 뿐이다.

꽃과 병아리 털을 비교하고 모호한 정리보다는 바람의 발자국에 더 집중하는 조그만 꼬마,너무도 아이적인,아이의 감성으로 자신이 눈높이를 맞추지 않았다면 도저히 그려낼 수 없을 그림이다. 결국,오세암의 주인 공은 길손이지만 마르셀리노의 주인공은 마르셀리노가 아니라 그저 예수일뿐이다.

오세암이 당시 크게 반향을 불러 일으키자 불교를 배경으로 한 동화의 흥행을 시기했는지 기독교 계열의 출판사에서 산발적으로 동화 마르셀리노와 영화를 수없이 복간해내었지만 누구에게도 흥미를 일으키지 못하고 사장되어 버린 것도 그러한 맥락. 어찌 보면 마르셀리노 정도의 작품이 오세암에 비교되는 것이 불쾌할 정도다.

생사의 연계에 대한 이야기나 길손이의 어머니에 대한 미련에 공감하지 못하는 독자라도 음악과도 같은 시적 흐름과 작은 사물과 이름들에 대한 그 하나하나의 비유와 묘사에는 감동하지 않고 못배기리라. 최근에 개봉했던 애니메이션도 추천(DVD 나오면 사서 보시라. 장담하건대 열댓번씩 볼 가치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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