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밤 열 시 반 ㅣ 문지 스펙트럼
마르그리트 뒤라스 지음, 김석희 옮김 / 문학과지성사 / 2020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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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인스타그램 안진진님 (@zinzinahn) 이벤트를 통해 책을 제공받아 읽은 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여름밤 열 시 반》은 한 사람의 마음이 어디까지 흔들릴 수 있는지를 가만히 바라보는 소설이다.

스페인으로 여행을 떠난 마리아는 남편 피에르, 딸, 친구 클레르와 함께 폭풍우를 피해 작은 마을에 머문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어린 아내와 내연남을 살해한 로드리고 파에스트라가 지붕 위에 숨어 있다. 마리아는 이상하리만큼 그에게 마음이 끌리고, 결국 그를 숨겨주기로 한다. 마리아의 이 행동이 어쩌면 자신의 삶에서 이미 오래전부터 사라지고 있던 무언가를 붙잡으려는 것처럼 느껴졌다.

뒤라스는 마리아의 감정을 친절하게 설명해주지 않는다. “마리아는 어디에 있을까?” 같은 문장이 반복될수록 나 역시 마치 마리아의 마음을 따라 헤매는 것만 같았다. 폭풍우와 번개, 뜨거운 여름, 밀밭과 올리브 나무의 풍경도 단순한 배경을 넘어서, 모든 것이 마리아의 권태와 욕망을 비추는 것처럼 보이게 된다.

피에르와 클레르가 서로를 바라보는 장면에서 마리아가 느끼는 공허함은 이상할 정도로 조용하다. 크게 울거나 분노하지 않지만 오히려 그래서 더 쓸쓸하게 느껴진다. 사랑받지 못한다는 것보다, 사랑이 이미 끝났다는 사실을 너무 늦게 알아버린 사람의 마음처럼.

로드리고 파에스트라를 구해 밀밭에 숨겨주는 마리아의 행동도 그래서 단순한 일탈로만 느껴지지 않았다. 죽음을 기다리는 남자를 바라보며 그녀는 어쩌면 자신의 삶에도 이미 드리워진 ‘죽음’을 보고 있었던 것 같다. 그리고 마지막에 피에르에게 “이젠 끝났어”라고 말하는 장면. “방금 깨달았어. 어쩌면 오래전부터 그랬는지도 몰라.” 맞다. 사랑이 끝나는 순간은 어쩌면 헤어지는 순간이 아니라, 이미 끝난 사랑을 끝났다고 인정하는 순간일지도 모르겠다.

여름의 더위와 권태, 기다림과 부재가 크게 느껴지는 책이다. 뒤라스의 문장은 무언가를 꽉 채우기보다 일부러 빈자리를 남겨두는 것 같다. 그 빈 곳에 내가 읽은 감정들을 집어넣으면 딱이다.

“오늘 밤 이 마을에는 사랑을 위한 장소는 없다.”
이 소설을 가장 잘 설명해주는 문장으로 꼽고 싶다. 뜨거운 여름밤이면서도 서늘하고, 사랑 이야기인데도 외롭다. 어쩌면 《여름밤 열 시 반》은 사랑이 사라진 뒤에도 계속 살아가야 하는 사람의 마음을 대변하는 소설인지도 모르겠다.

#여름밤열시반 #마르그리트뒤라스 #문학과지성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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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눈이 반했습니다 - 꿰맨 눈과 기울어진 사랑
김하진 지음 / OTD / 2024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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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인스타그램 상도덕 서평클럽 (@f83_project)를 통해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한 눈이 반했습니다》는 읽고 나서 단번에 이해되는 작품이라기보다, 한 편씩 읽고 잠시 멈춰 생각하게 만드는 작품들의 모음이다. 처음에는 다소 낯설고 기묘하게 느껴졌던 설정들이 마지막에 이르러 현실을 향한 은유였다는 사실을 깨닫는 순간이 오게 되니까.

가장 기억에 남았던 작품은 역시 「한 눈이 반했습니다」다. '한눈에 반하다'라는 익숙한 표현을 뒤틀어, 완벽한 대칭을 위해 한쪽 눈을 봉합하는 세상을 만들어낸 상상력이 놀랍다. 아름다움을 좇기 위해 스스로 불편함을 선택하는 모습은 극단적인 설정이지만, 유행과 기준에 맞추기 위해 자신을 끊임없이 바꾸려 하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 지금의 현실을 반영하는 것 같은 모습이다. 제목 하나에도 이런 의미를 담아낸 점이 인상적이다.

「솔로 인 더 라이트」에서 박스를 벗어나고 싶다고 말하는 바비인형 역시 단순한 판타지가 아니라, 누군가의 기준과 시선 속에서 살아가는 요즘 사람들의 모습처럼 느껴진다. "내가 바라는 건 박스가 아니야. 이 답답한 곳을 떠나는 거야." 사람도 익숙한 관계와 환경 속에 갇혀 있으면서 그것이 안전이라고 착각하는 경우가 많은 것처럼 말이다.

다른 작품들도 마찬가지였다. 사람을 구조하는 대신 삶의 방향을 되찾게 하는 「견인지역」, 출산과 가족의 의미를 새로운 시선으로 바라보는 「베이비 캐리어」, 정체성과 콤플렉스를 이야기하는 「얼리지 않아」, 가족이라는 이름의 상처와 화해를 풀어내는 「비닐, 하우스」. 작품마다 다루는 소재는 전혀 달랐지만, 결국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의 불안과 외로움, 관계에 대한 질문으로 이어지기 때문에 전부 좋았다.

다만 읽기가 쉽지만은 않다. 어떤 작품은 한 번 읽고는 의미를 온전히 붙잡기 어려웠고, 다시 앞부분을 넘겨보게 된다. 하지만 그 점이 이 책의 매력이다. 정답을 알려주기보다 독자가 스스로 의미를 찾아가게 만드는 것 같다고 생각했다. 읽는 사람마다 기억에 남는 작품도, 해석도 조금씩 달라지지 않을까.

김하진 작가의 상상력은 현실에서 꽤 많이 벗어나 있지만, 아이러니하게도 이를 통해 결국에는 다시 현실을 마주하게 된다. 환상 속에서 소설을 헤엄치다, 어느새 우리 사회의 모습과 내 삶을 돌아보게 되는 경험을 한다. 이게 신인 작가의 첫 소설집이라니. 믿을 수 없을 정도로 독특한 세계관과 묵직한 메시지를 함께 담아낸 놀라운 책이다.

#한눈이반했습니다 #OTD #김하진 #단편 #단편소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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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기 ㅣ 모노스토리 8
이동현 지음 / 이스트엔드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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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치기》의 제목이 왜 배치기인지 알자마자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다. 배를 부딪쳐 승부를 가리는 대회가 바로 배치기다. 우황청심환을 과다 복용한 데니스 봉부터 아이돌 연습생, 변기 회사 비서, 누리꾼 소년까지 등장인물도 하나같이 묘하고 우스꽝스러운 사람들뿐이다.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 이 소설은 현실과 가장 잘 맞닿아 있다.

데니스 봉은 배치기 대회에서 계속 승승장구한다. 그런데 웃기게도 잘해서 이긴 경기는 거의 없다. 상대가 기권하기도 하고, 재채기 덕분에 이기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저 웃겼는데 읽다 보니 조금 씁쓸함도 섞인다. 내가 살아오면서 얻었던 결과들도 정말 온전히 내 노력만으로 만들어졌다고 할수만은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열심히 했는데도 떨어지고, 별 기대 없이 한 일이 뜻밖에 잘 풀리기도 했던 순간들이 많다. 우리가 ‘실력’이라고 부르는 것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우연이 섞여 있는지.

“저 친구도 응원해줘요. 쟤도 소중한 사람이라고요.” 데니스 봉의 경쟁자를 향한 이 한마디가 참 좋았다.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 세상에서, 상대방도 똑같이 지치고 힘든 사람이라는 걸 잠깐이라도 바라보는 마음. 아쩌면 이 소설이 가장 말하고 싶은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국 데니스 봉이 우승 후에 손에 쥔 건 이름조차 새겨지지 않은 플라스틱 트로피였다. 그런데 그 허무한 우승 뒤에 주인공 입에서 나온 말은 “다음은 당신 차례입니다.” 지금 잘하고 있든, 뒤처져 있든, 잠시 쉬고 있든 어쨌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차례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처럼.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는 최후의 한 마디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굉장히 좋았다.

《배치기》는 웃긴데 마냥 웃을 수만은 없고, 황당하면서도 현실의 우리 모습 같기도 하다. 경쟁에서 자꾸 밀리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 노력한 만큼 돌아오지 않는 결과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위로가 될 것 같은 배치기 대회 이야기다.

이 책은 새로운 모노스토리 시리즈인데, 한 편의 단편을 한 권에 담아 짧고 선명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시리즈라고 한다. 이번 책도 짧지만 강렬하고 매력적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경기장에서 열심히 배를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도 주인공 데니스 봉의 입을 빌려 한번더 말해주고 싶다. 다음은 당신 차례라고.

#배치기 #이동현 #이스트엔드 #모노스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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엔딩을 통과하는 중 ㅣ HiP 시리즈
허진희 지음 / 텍스티(TXTY) / 2026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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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허진희 작가의 『엔딩을 통과하는 중』은 ‘만약에’라는 말을 자꾸 생각하게 나는 소설이다. 우리는 모두 지나간 일은 되돌릴 수 없다는 걸 알면서도 가끔 그때 다른 선택을 했다면 어땠을까 생각하곤 한다.

서이는 우연히 다울의 죽음을 알게 되고 장례식장을 찾았다가 15년 전의 모령으로 돌아간다. 죽은 줄 알았던 다울이 눈앞에 살아 있고, 서이는 그를 다시 만난 순간부터 다울에게 무슨 일이 있었는지 알아내려 한다. “15년 전의 모령. 가장 찬란하고 가장 암담했던 모순의 시절” 지나고 나서야 더 선명해지는 시간이 나의 과거에도 하나쯤은 있어서일까, 어쩐지 가슴에 와닿는 문장이다.

이 책은 같은 시간을 두 사람의 시선으로 보여준다. 서이의 이야기에서 보이지 않았던 다울의 마음이 두 번째 이야기에서 하나씩 드러나는데, 앞에서 읽었던 장면들이 조금씩 다른 의미로 보이게 된다. 지강과의 관계나 마임 동아리에서의 시간, 그리고 서로에게 끝내 하지 못했던 말들까지 새롭게 알게되며, 내가 알고 있던 이야기가 전부가 아니었다는 생각에 읽으면서 점차 더 빠져들게 된다.

“나는 용기가 없었다. … 그저 아무것도 잃고 싶지 않았을 뿐.” 사실 살면서 후회하는 순간들을 떠올려보면 정말 큰 잘못을 한건 아니지만, 그때 아무것도 하지 않았던 걸 더 오래 붙들게 될 때가 있다. 이 소설에는 떠나고 싶은 마음과 붙잡고 싶은 마음이 계속 함께 나온다. 하지만 시간을 바꾸어 현실을 통째로 뒤집는 대신, 서로의 마음에 조금씩 다가가는 모습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보인다.

지나간 시간들을 후회하기보다, 지금 내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조금 더 솔직해지고 싶어지는 책이었다.

#엔딩을통과하는중 #펑서토니의마임이스트 #허진희 #HiP시리즈 #텍스티 #같이읽고싶은이야기 #txt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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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호스트
박희종 지음 / 팩토리나인 / 202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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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슈퍼호스트』, 평범한 숙소 하나를 이렇게까지 불편한 공간으로 만들 수 있다는 게 가장 무서웠던 책이다.

그저 여행지에서 벌어지는 살인 사건 정도를 예상했다면 오산이다. 이도윤이 익숙하게 찾던 ‘스테이 나른’에서 검붉은 흔적을 발견하고, 호스트에게서 “숙소에 별문제는 없죠?”라는 메시지를 받는 순간부터 분위기는 완전히 달라진다. 아무렇지 않게 지나쳤던 공간들이 하나씩 의심스럽게 보이기 시작한다.

소설은 이도윤과 소은재, 박현수, 강준영의 이야기를 조금씩 겹쳐가며, 처음에는 단순해 보였던 이들의 관계가 전혀 다른 얼굴을 드러낸다. 과거의 사랑과 배신, 누명을 쓴 사람의 상처, 누군가를 향한 뒤틀린 집착이 하나의 사건으로 엮여가는 과정이 꽤 촘촘하다. 초반에 스쳐 지나간 장면을 뒤에서 아하!하며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이 생기는 것도 재미있었다.

살인도 살인이거니와, 누군가의 일상을 훔쳐본다는 욕망이 역시 가장 서늘하고 섬뜩하다. “그녀의 일상을 훔쳐보고, 표정을 수집하며, 내가 살아 있다는 감각을 느끼는 것.” 사랑이라는 이름으로 포장된 집착이 얼마나 무서워질 수 있는지 실감할 수 있었던 문장이다. (에어비x비가 생각나는) 공유 숙소라는 소재도 그래서 더 현실적으로 다가온다. 낯선 사람의 집에 머물며 그 공간의 취향과 흔적을 구경하는 일이 어느 순간 누군가에게는 관음의 대상이 될 수 있다는 설정이 상상하면 할수록 정말 찝찝하다.

후반부로 갈수록 복수를 둘러싼 인물들의 움직임이 빨라지면서 긴장감도 확 올라간다. 누가 피해자이고 누가 가해자인지, 누가 함정을 파고 누가 그 안에 들어가 있는지 계속 뒤집히는 느낌도 좋았다. 『슈퍼호스트』를 읽고 나니 여행지에서 숙소 문을 닫고 나면 그 안에 정말 나만 있는 걸까 하는 생각이 먼저 들 것 같다. 익숙한 공간을 낯설게 바라보게 만드는 공포를 남기는 책이라고 하겠다.

#슈퍼호스트 #박희종 #팩토리나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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