배치기 ㅣ 모노스토리 8
이동현 지음 / 이스트엔드 / 2026년 7월
평점 :
장바구니담기


*** 본 게시글은 출판사로부터 책을 제공받아 작성되었으며, 솔직한 감상을 담았습니다 ***

《배치기》의 제목이 왜 배치기인지 알자마자 솔직히 조금 당황스럽다. 배를 부딪쳐 승부를 가리는 대회가 바로 배치기다. 우황청심환을 과다 복용한 데니스 봉부터 아이돌 연습생, 변기 회사 비서, 누리꾼 소년까지 등장인물도 하나같이 묘하고 우스꽝스러운 사람들뿐이다. 하지만 어떤 지점에서 이 소설은 현실과 가장 잘 맞닿아 있다.

데니스 봉은 배치기 대회에서 계속 승승장구한다. 그런데 웃기게도 잘해서 이긴 경기는 거의 없다. 상대가 기권하기도 하고, 재채기 덕분에 이기기도 한다. 처음에는 그저 웃겼는데 읽다 보니 조금 씁쓸함도 섞인다. 내가 살아오면서 얻었던 결과들도 정말 온전히 내 노력만으로 만들어졌다고 할수만은 없을 것이다. 솔직히 말하면, 열심히 했는데도 떨어지고, 별 기대 없이 한 일이 뜻밖에 잘 풀리기도 했던 순간들이 많다. 우리가 ‘실력’이라고 부르는 것 안에는 생각보다 많은 우연이 섞여 있는지.

“저 친구도 응원해줘요. 쟤도 소중한 사람이라고요.” 데니스 봉의 경쟁자를 향한 이 한마디가 참 좋았다. 나만 살아남으면 된다고 생각하기 쉬운 세상에서, 상대방도 똑같이 지치고 힘든 사람이라는 걸 잠깐이라도 바라보는 마음. 아쩌면 이 소설이 가장 말하고 싶은 가치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결국 데니스 봉이 우승 후에 손에 쥔 건 이름조차 새겨지지 않은 플라스틱 트로피였다. 그런데 그 허무한 우승 뒤에 주인공 입에서 나온 말은 “다음은 당신 차례입니다.” 지금 잘하고 있든, 뒤처져 있든, 잠시 쉬고 있든 어쨌든 다음 장면으로 넘어갈 차례는 누구에게나 있다는 것처럼. 독자들에게 전달해주는 최후의 한 마디처럼 느껴져서 오히려 굉장히 좋았다.

《배치기》는 웃긴데 마냥 웃을 수만은 없고, 황당하면서도 현실의 우리 모습 같기도 하다. 경쟁에서 자꾸 밀리고 있다고 느끼는 사람, 노력한 만큼 돌아오지 않는 결과에 지친 사람들에게 이상하게 위로가 될 것 같은 배치기 대회 이야기다.

이 책은 새로운 모노스토리 시리즈인데, 한 편의 단편을 한 권에 담아 짧고 선명하게 이야기를 건네는 시리즈라고 한다. 이번 책도 짧지만 강렬하고 매력적이다. 어쩌면 우리는 모두 각자의 경기장에서 열심히 배를 부딪치며 살아가고 있는지도 모르겠다. 그렇다면 나도 주인공 데니스 봉의 입을 빌려 한번더 말해주고 싶다. 다음은 당신 차례라고.

#배치기 #이동현 #이스트엔드 #모노스토리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