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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깥은 여름
김애란 지음 / 문학동네 / 2017년 6월
평점 :
김애란 작가의 단편소설 7편이 수록된 책이다. 작년 여름에 읽어야지 생각하다가 지금에서야 읽게 되었다.
각 소설 속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울렁임이 크게 느껴지는 작품도 있고, 작게 느껴지는 작품도 있었지만, 담담한 문체로 쓰여져 있어 왠지 서늘한 가을이 생각나기도 하고, 바깥의 더운 여름과는 달리 에어컨으로 서늘해진 공간이 느껴지기도 했다.
출판사의 소개글에서 언젠가 팟캐스트 방송에서 작가가 '소재를 이야깃거리로 소비하지 않으려 노력한다'라고 말했다는 글을 보았다.
소설 속 이야기들은 우리의 삶 속에서 어쩌면 가끔은 볼 수 있었던 소재이지만, '흔한 수다스런 이야기로 넘겨버리지 않았구나'라는 느낌을 주기에 충분했다. 담담하게 표현하고 있지만, 그때의 감정을 흘려버리지 않고 그 안을 잠깐 멈춰서 볼 수 있는, 관찰할 수 있는 기회를 주었다.
상실과 상처, 안과 밖과의 거리감으로 인해 날카로운 상처를 만들어내지는 않지만, 그 상실과 상처를 마음에 갖고 사는 사람들의 모습을 보여준다.
<입동> 아이를 잃은 부부의 모습속에 담겨진 슬픔은 고통스럽지만, 어떤 상황과 감정과 상황이든지 상관없이 시간은 흐른다. 감정을 꾹꾹 눌러야 살아갈 수 있는 현실의 세상을 보여주듯이 시간이 흐름속에서 그 슬픔은 안으로 침잠되지만, 어느 한 순간 툭 하고 흘러나온다.
<노찬성과 에반> 어린아이 찬성의 눈으로 본 어른들의 세상, 그 속에서 살아남아야하는 찬성의 마음은 어떠할까? 쓰레기봉투더미가 죽은 에반의 모습과 겹쳐지지만, 어떤 두려움에, 외면해버리고야마는 찬성은 어떤 기억을 갖게 될까?
'그 위로 살아, 무척, 버티는, 고통' 을 짐작하며 흘끔거리는 찬성은 무의식적으로 어른의 모습을 닮고자했을가?
<건너편> 수험시절에 만나 연애를 시작한 도하와 이수는 자신들의 아름다울 청춘의 시절을 흘려보내고 만다. '한번도 제철을 만끽하지 못하고 시들어간 연인의 젊은 얼굴'처럼 알록달록한 분홍빛이 아닌 회색빛으로 점철된 기억으로 남겨버리고 만다.
<침묵의 미래> 이제 소멸될, 소멸된 '생명이 있는' 언어가 박물관의 전시품이 되어버린 이야기.
<풍경의 쓸모> 시간강사 주인공의 교수임용과 관련된 에피소드는 사회적 관계속에서의 강자와 약자, 그 안에서 벌어지는 보이지 않는 힘과 탐욕, 배신에 관한 이야기이다. 거짓으로 만들어진 관계의 끈은 얼마나 약한가. '나는 공짜를 바란 적이 없다'라고 말하는 주인공의 씁쓸함이 느껴지는 듯 하다.
<가리는 손> 다문화가정의 아이 '재이'를 둘러싼 어머니의 입장에서 서술된 이 이야기의 마지막은 약간 놀라웠다. 재이의 속마음이 일반적으로 짐작되던 상황이 아님을 발견한 어머니처럼 숨겨진 마음을 우리는 얼마나 알수 있을까?
<어디로 가고 싶으신가요>
물에 빠진 제자를 구하다 생명을 잃은 남편을 생각하며 '시리'에게 고통과 인간, 혹은 일상에 대해 묻던 주인공. 그녀가 정말 묻고 싶었던 ' 나를 남겨두고 어떻게 다른 사람을 구하려 자기 삶을 버릴 수 있느냐'는 울부짖음은 마음속에 꼭꼭 숨겨온 외침이었다. 그러나 제자의 누나에게 받은 편지를 보며 '어떻게 죽음을 선택할 수 있느냐?'는 외침은 '삶이 죽음에 뛰어든 것이 아닌 삶이 삶에 뛰어든 게 아니었을까'라는 생각에 이른다.
작가가 이야기하고자 하는 많은 것들을 이해했는지 알 수는 없고, 모두 이해했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그래도 이 소설을 통해 지금까지 생각해왔던 것들에 대해 조금은 다른 시각으로 바라볼 수 있는 기회가 되어 좋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