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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 속의 책 속의 책 ㅣ 비룡소의 그림동화 121
요르크 뮐러 글 그림, 김라합 옮김 / 비룡소 / 2005년 5월
평점 :
스위스에서 태어난 독일어권 화가인 요르크 뮐러는 작가 요르크 슈타이너와 짝을 이뤄 사회문제를 진지하게 성찰하는 작품을 그려왔다.
산업화와 인간소외를 다룬 <난 곰인 채로 있고 싶은데>와 <토끼들의 섬>,
전쟁으로 파괴되는 마을을 그린 < 두 섬 이야기> 등,
과연 독일어권 작품이구나 싶게 진지하고 심오한 슈타이너의 주제의식은 이를 떠받치는 웅장하고 장엄한 뮐러의 그림이 아니었더라면 그저 무거운 이야기일 뿐 결코 예술은 될 수 없었을 것이다. 그만큼 뮐러의 그림은 격조가 높다.
(위 책들 중 아직 아이에게 읽힌 책은 없다.)
<책 속의 책>은 요르크 뮐러가 콤비인 요르크 슈타이너와 짝을 이루지 않고 혼자서 글을 짓고 그림을 그린 작품이다. 순전히 <그림책이 주는 재미에 마음 껏 빠져보라>고, 사회문제니 심오한 성찰이니 이런 것 없이 그냥 어깨에 힘 빼고 즐겨보라고 만든 책. 그래서 이전의 책들과는 달리 연령대를 많이 낮춰도 좋은 책이다.
그런 작가의 의도대로 아이는 이 책에 아주 제대로 푸욱 빠졌다.
하루에도 몇 번씩 이 책을 보며 좋아한다.
주인공인 아이가 책을 선물받고 그 책 속으로 걸어들어간다는 이야기.
책 포장지를 벗기는 장면을 그린 첫 표지부터 매력적이다.
이 책을 사와 바닥에 나둔 지 얼마되지 않아 겉표지의 포장지를 벗기는 부분이 조금 뜯어져 나갔다. 분명히 살 때는 새 책이었는데 왜 뜯어졌을까 생각하는데 아이가 깔깔거린다.
"이 책 그림이 포장지를 뜯는 그림이잖아? 그래서 내가 조금 더 뜯었어, 엄마가 이걸 알아차리는지 보려구. 엄마 어떻게 여기가 뜯어진 걸 금방 알았어?"
하며 뜯어진 부분을 금방 알아차린 엄마를 신기해 하는 아이.
녀석은 내가 저 같은 지적 수준을 가진 줄 아나보다.
본문은 책 속에 책이 있고, 또 그 책 속에 책이 있는 그림을 서로 다른 각도와 방향에서 끊임없이 보여준다. 혹시 미술 시간에 구도를 익힐 때 참고하면 좋겠다 싶은 생각이 든다.
그림 속으로 계속해서 걸어들어간 아이는 한참을 지나 저 깊숙한 곳에서 이 그림을 계속 그리고 있는 화가(아마도 요르크 뮐러인 듯)와 만나게 된다. 그 화가는 <책 속의 책 속의 책>이란 그림책을 만들다가 이제는 끊임없이 그려야 하는 그림때문에 밖으로 나가지 못하게 된 상황을 설명한다.
"그래서 난 이 겉표지를 그리기 시작했는데, 점점 깊이 빠져 들어서 이제는 밖으로 나갈 수가 없게 됐어! 내가 도와 달라고 외치는 소리 못들었니?"
이 부분에서 아이는 무릎을 치며 맨 앞장으로 넘긴다.
나는 무심코 넘겼는데 아이는 맨 앞 장이 "도와주세요! 누구 없어요?"로 시작하는 것을 정확히 짚어낸다.
이 책의 즐거움을 더해주는 건, 끼고 보면 입체감을 느낄 수 있는 안경이 들어있다는 것이다.
아이는 그 안경을 끼더니 실제로 자기가 책 속으로 걸어들어가는 느낌이 든다며 신기해 한다.
책에 달린 긴 줄에 묶여 있는 그 안경을 아이가 계속 들고 있어서 책 장을 넘기는 게 힘들어 내려놓으라고 했던니 아이 왈,
"엄마, 이 책 속에 있는 아이도 안경을 계속 들고다니잖아. 그러니까 나도 계속 이 안경을 들고 있어야 하는 거야."
조금의 주저함도 없는 대꾸하는 아이의 말 속에 정말 좋은 책을 만났다는 만족감이 배어있다.
요르크 뮐러는 화가로서 그림책이 줄 수 있는 최상의 즐거움을 나와 우리 아이에게 선사해 주었다. 모처럼 맘에 드는 책을 만나서인지 아이는 요 며칠 참으로 즐거워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