테 아라로아, 나에게로 - 광활하고 눈부신 뉴질랜드 3000킬로미터, 혼자 걸은 아홉 달의 기록
나오미 아널드 지음, 신정은 옮김 / 그림나무 / 2026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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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위처럼 견고했던 나오미의 원칙은 통제할 수 없는 자연의 거대함 앞에서 속수무책으로 깎여지고 자신의 한계를 수도 없이 마주하며 비로소 체념을 배우고 순리에 자신을 맡긴다.

오직 그녀가 할 수 있는 단 하나, 걷는 것.
한 발 앞에 다른 한 발을 놓는 것, 그리고 그것을 지속하는 것.

그렇게 그 긴 여정을 온몸으로 통과해 나간다.

상상조차 할 수 없는 9개월간의 여정을 이렇게 몇 문장으로 표현하는 것이 그저 송구스럽다.
날것의 자연 속에서 마주한 자신을 날것 그대로 표현해준 나오미를 말없이 바라볼 수밖에...

드디어 마지막 날, 마지막 종착지인 북섬 북쪽 끝에 있는 케이프 에잉가의 등대 앞에 서며
문득, 고요한 무언가를 깨닫는다.
그건 모자람이 없이 충분하고 넉넉한 느낌, 만족감.
그저 내가 하기로 마음먹은 일을 끝냈다는 담백한 사실에서 오는 평온이었다. (319)
(이 부분에서 길 위에서 온 몸으로 생을 통과한 후 마침내 평안이 깃든 얼굴이 된 골드문트도 떠올랐다. (‘나르치스와 골드문트’-헤세))


이제,
테 아라로아 길, 그 길 위에서 만났던 이들, 그리고 길을 걷던 자신에게도 작별을 고한다.

“지난 9개월의 여정이 나라는 존재를 남김없이 태워버렸다. 이제 모든 것이 타버린 뒤 남겨진 내가 누구인지 마주해야 할 시간이다.” (332)


장 그리니에의 <섬>이 떠올랐다.

“ 그러므로 사람은 자기 자신에게서 도피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 그것은 불가능한 일 –
자기 자신을 되찾기 위하여 여행한다고 할 수 있다.” <섬 p93)

나오미의 이 여정(여행)이 단순히 낯선 장소로의 이동이 아닌 자신에게서 멀어졌다가 다시 자신에게로 돌아오는 과정처럼 보였다. 길 위에서 만난 풍경과 사람들, 고통과 고군분투하며 나아갔던 걸음과 예측하거나 통제할 수 없었던 순간들. 그 모든 것을 통과하며 나오미는 자신 안에 있었으나 아직 만나지 못했던 또 다른 자신을 발견했을지도 모른다. 그래서 그 먼 과거부터 이 여정을 그렇게나 열망했는지도 모른다.

나를 만나기 위해 더 먼 길을 향해 나아간다는 건 결국, 나에게로 돌아오는 긴 여정이지 않았을까.

먼 길을 떠나기 전의 나와 돌아온 뒤의 나는 같은 사람이면서도, 더는 완전히 같은 사람일 수 없으니까.

*

내가 그 길을 걷는 것이 아니라 어느새 길이 나를 통과해 흐르고,
그 길 위의 모든 것이 비어있는 나를 온전히 채워가는 것.
나를 완전히 무너뜨렸다가 다시 일으켜 세워 더 단단해 만들어 가는 것.

자신이 해낸 것이 아닌 나를 움직이게 한 건 테 아라로아라고..
내가 한 일이라곤 그저 꿋꿋이 버티는 것뿐이었다고.

테 아라로아가 나에게로 온 것이다.

이 여정의 끝에서 제목을 되뇌며 전율과 숙연함이 동시에 흐른다.

“테 아라로아, 나에게로”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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