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이 반복되는 지루함의 연속. 나의 성취와 성과가 아닌 누군가의 배경으로 존재해야 하는 시간. 누군가를 먹이고 입히기 위해 보이지 않는 곳에서 끊임없이 해야 하는 일들. 해보지 않으면 가늠하기 힘든 번거롭고 수고로운 과정을 저자는 묵묵히 20년을 버티며 배경으로 존재했던 그 시간에 ‘여백’이라는 이름표를 달아준다. 평범한 일상의 배경같은 저자의 삶을 통해 거룩의 일상성에 눈길이 닿고 작은 일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눈길이 머물러 있다는 것을 깨닫는다. “거룩이 별다르냐. 우리가 맞대고 살아가는 바로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느끼면 그것이 거룩 아닌가.거룩이란, 이렇게나 일상적이거늘.” (36)하나님을 느낀다면 그 어떤 것도 보잘것없지 않다. 오히려 거룩하다. 이 얼마나 아름다운 고백인가?하나님은 언제나 내가 서있는 나의 일상에 함께 계셨다. 저자의 고백이 마중물이 되어 나의 심장에 흐른다. 또한, 하루하루 열심히 살아왔는데 어느 순간 되돌아보니 쌓인 것 하나 없이 그저 흘러가버린 것 같은 ‘상실’을 마주하는 순간. 루터의 말처럼 ‘거지’같은 순간에도 하나님은 가장 가까이에 계신다. “허접하기 짝이 없는 인생이 주님과 함께한 삶이었다고 말씀해주신다면, 나는 이것보다 더 바랄 것이 없을 것만 같다.” (59)장님이 지팡이 끝으로 세계를 만나듯,일상이 시가되고 예배가 되는 순간을 통해나또한, 누군가의 영혼을 충만게 하는 자겨있는 사람이 된다면 바랄것이 없을것 같디..아이를 낳고 키우며 누렸던 충만했던 시간인 동시에 끊임없이 내려놓아야 할 나의 욕망들을 벗겨내며 나를 마주했던 시간을 지나 이제는 그저 묵연히 아이의 안녕과 하나님과 동행하심을 바라는 순전한 마음이 되어간다. 자식은 키우는 것이 아니고 자라나는 것이라는 저자의 고백 앞에서 아멘을 말하고 쓰며 고개를 주억거리다 눈물이 흘렀다. 부모가 걸어온 지난 시간을 되새긴다.어릴 때 보지 못했던. 아니 보려고 하지 않았던 그 지난한 시간들에 마음이 기운다. 자식이 찢어진 삶의 페이지를 건너고 있을 때 무력함을 버티며 바라봐야 했던 그 심경을 이제야 헤아려본다. 가슴을 할퀴고 옷을 찢어내며 자식의 고통을 짊어지길 바랐던 어머니의 절규를 이제야 듣게 된다. 그때는 그 사랑이 한없이 무겁고 무거워 피하고만 싶었는데 이제서야 헤아려진다. 남편의 언어에 씌웠던 나의 필터를 걷어내고 사랑의 언어에 순전히 스며들기까지 길고 지난했던 시간이 스쳐간다.부모로부터 남편으로부터 받아들여짐을 머리에서 가슴으로 느끼며 살아갈 힘을 얻는다.의미와 무의미를 고민하는 시간에도 본연의 모습 그대로 아름답다고.‘나’라서, 오롯이 ‘나’이기에 아름답다고 하신다. 끝으로 이별과 죽음에 대한 저자의 깊은 사유앞에서 요철처럼 멈추어 삶의 방향성을 사유한다.오늘 이별할 것처럼 애정하는 것,오늘이 마지막인 것처럼 살아보는 것. 그렇게 매일을 살아보자고 나역시 다짐한다. “더 많이 애정하게 하는 것. 이별은 이런 것이었다.” (237)“죽음을 기억한다는 것. 매일 오늘과 이별하는 것. 끝에 서 보는 것. 그래서... 마지막을 사는 것처럼 살아 보자고 다짐해 본다.” (238).일상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싶은 분존재의 소중함을 느끼고 싶은 분일상의 소중함을 깨닫고 삶의 예배자를 소망하는 분죽음과 이별앞에서 더 잘 살고 싶은 분엄마, 아내, 딸의 자리에서 나의 삶을 반추하고 톺아보고 싶은 분자기 안의 빈자리를 받아들이며 그 결여를 채워가는 모든 분들께 이 책을 권하고 싶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