훈의 시대 - 일, 사람, 언어의 기록
김민섭 지음 / 와이즈베리 / 201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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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책의 제목을 보고 처음엔 훈이 뭔지 궁금했습니다. 

그 훈이라는 것이 우리의 몸을 지배해 온 

시대의 언어라는 부제를 보고 더욱 궁금해졌지요. 

전작 "대리사회"와 "나는 지방대 시간강사다"로 

이 시대의 문제를 꼬집은 저자의 학교, 회사, 아파트에서의 

욕망을 마주하는 <훈의 시대>를 보겠습니다.



'훈'이라는 단어는 한 단어로 쓰이기보다 

교훈, 훈육, 훈련, 가훈, 훈계 등으로 활용됩니다. 

그 활용을 살펴보면 '훈'은 가정, 학교, 군대, 회사, 국가에 이르기까지 

우리 일상 공간에서 개인을 가르치는 데 주로 사용됩니다. 

그러니까, '훈'은 '~해야 한다'는 지침을 전달 혹은 

강요하는 '계몽의 언어'인 동시에 '자기계발의 언어'입니다. 

특히 어느 집단에 소속된 한 개인에게 위계적으로 다가갑니다. 

개인이 가정, 학교, 회사 등 생애 주기에서 거의 반드시 거쳐야만 할 

모든 공간의 언어는 '훈'이라는 형태로 전달되고, 

이것은 한 시대가 개인에게 품은 욕망입니다.


언어는 한 사람의 몸을 만들어냅니다. 

먹는 것뿐 아니라, 일상 공간에서 오랜 시간을 두고 

쌓인 언어들 역시 그 개인의 몸이 형성되는 데 기여합니다. 

그가 받아들인 훈이 그가 주체로서 존재하는가 아니면 

좀비나 대리인간으로 존재하고 있는가를 결정짓는 것입니다. 

지금 우리가 누구의 몸으로 존재하고 있고, 일상 공간의 훈들을 살펴보면 

이 시대의 훈이 우리의 몸을 어떻게 만들었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모든 학교에는 교훈이 있습니다. 교정의 어느 곳의 바위에 적혀 있거나, 

교가에 담겨 있는 교훈, 어린 시절부터 몸에 새겨진 

그 단어와 멜로디는 오랜 시간이 지나도 잘 지워지지 않습니다. 

그런데 우리는 교훈에 대한 관심이 별로 없습니다. 

그것이 나와 자녀들에게 지속적으로 영향을 미칠 것을 고려하면 

당연히 알아둘 필요가 있음에도 불구하고요. 

저자는 전국 공립 여자고등학교와 공립 남자고등학교의 교훈을 살펴보았습니다. 

남고와 여고에서 나타나는 단어의 종류가 달랐는데요, 

공립여고는 순결, 정숙, 예절, 배려 등이고, 

공립 남고는 단결, 용기, 개척, 책임 등입니다. 

모두 상대편에는 단 하나도 존재하지 않는 단어들입니다. 

우리는 여학생과 남학생이 각각 어떠한 훈을 노래하고 있는지 살펴보고 

시대에 맞지 않는 단어들을 이제는 폐기할 수 있어야 합니다. 

무엇보다도 각각에 대한 호칭을 성 역할을 함의하지 않는 

새로운 것으로 정립할 필요가 있습니다. 

여학생을 여성이나 어머니가 아닌 사람으로서 견인해 내야 합니다. 

이것은 한 존재의 몸을 본래대로 되돌리는 일입니다.


우리가 사훈을 알아야 할 이유는 명백합니다. 

우리 모두는 지금 일을 하고 있거나 

일을 하기 위한 준비 상태에 놓여 있습니다. 

일하는 공간의 훈, 사훈이라는 것은 의무교육을 받는 우리가 

교훈을 받아들여야 하는 것과 마찬가지로, 

일해야만 하는 우리 모두에게 의무적으로 와서 닿습니다. 

일하는 한 인간을 통제하는 언어들이 각 회사마다 존재하고 있습니다. 

한 회사의 훈은 그 구성원들에게 

국가의 헌법보다도 오히려 가까운 것으로 가서 닿습니다. 

그리하여 우리는 대한민국의 헌법이 궁금해하기 이전에 

일상 공간의 헌법이 무엇인지를 먼저 뒤돌아보아야 합니다. 

회사를 비롯해 개인에게 

국가보다 더욱 권력을 가진 실체로 존재하는 공간이 있고, 

거기에서 제시하는 훈은 헌법과도 같은 위상을 가집니다. 

법보다 가까운 법이, 있는 법입니다.



현대사회에서 개인은 일방적으로 훈을 수용하는 존재는 아닙니다. 

훈을 파악하고, 영합하기도 하고, 타인에게 전달하는 역할을 도맡거나, 

그것이 잘못되었다고 판단되면 바꾸기 위한 노력을 기울이기도 합니다. 

이런 개인이 자신의 훈을 전시해 두는 공간은 

집이라는 일상 공간일 겁니다. 

집에서도 갑과 을은 나뉩니다. 

성인 남성이나 여성 중 한 명이 거실과 현관 등 

주요 공간에 훈을 전시해 둘 만한 갑의 위치에 있고, 

다른 구성원들은 간신히 하나의 방만 전시장으로 활용할 권한을 부여받습니다. 

자신이 사는 공간을 특별한 언어로 전시하고 싶어 하는 욕망, 

거기에 동원된 언어들도 하나의 훈입니다. 

사는 동네와 사는 아파트 이름에 자신의 품격을 동일시시키거나, 

책꽂이에 꽂힌 책의 제목으로, 

SNS에 쓰고 공유된 사진과 문구로, 우리는 자신을 드러냅니다. 

이렇게 전시된 훈들은 우리 자신의 모습이고 이 시대의 모습이 됩니다.




<훈의 시대>의 마지막 글에 실린 '김민섭 찾기 프로젝트'를 보고 

세상이 따뜻하다고 느꼈습니다. 

저자는 사정상 여행을 가지 못해 양도할 사람을 

SNS에서 찾던 중 가능한 사람이 나타납니다. 

그는 대학생으로 졸업전시 비용 마련을 위해 

휴학하고 아르바이트를 하고 있답니다. 

이 일이 퍼져서 누군가가 숙박비를 후원하고, 그린 패스권을 보내주고, 

와이파이 포켓을 후원하고, 타워 입장권을 보내주고, 

카카오 창작자 플랫폼 부서에서 연락이 와 

이 사람의 여행을 후원해 주고 싶다며 메인 페이지에 정식 프로젝트로 노출시켜 

다른 사람들의 더 많은 후원을 받게 되었습니다. 

떠나는 날, 인천공항에서 대학생 김민섭 씨는 저자에게 물었습니다. 

사람들이 자신을 왜 도와준 것이냐고요. 

모두 같은 마음으로 당신이 잘되면 좋겠다고 생각했을 거라고 그렇게 대답했답니다. 

이 청년이 여행을 잘 다녀오면 

대한민국의 평범한 청년들도 모두 잘되지 않을까, 

나의 아이들도 잘되지 않을까, 

그리고 결국은 나도 잘되지 않을까, 하는 마음이 모였을 겁니다. 

이후로 저자는 '당신이 잘되면 좋겠습니다'의 훈을 가슴에 안고 살아가고 있답니다. 

이제 나쁜 훈, 이상한 훈, 우아한 훈을 따지지 말고, 나만의 훈을 만들어봅시다. 

'나'보다는 '너'를 위한, 그리고 '우리'를 향한 훈을 가슴에 품고 삽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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