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 - 명작동화 속에 숨어 있는 반전의 세계사
박신영 지음 / 바틀비 / 2019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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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번쯤 읽어보았던지 들어본 이야기 있잖아요, 

신데렐라나 백설공주, 잠자는 숲속의 공주, 빨간 모자... 

정확한 스토리는 몰라도 대충은 다 알고 있을 거예요. 

이런 이야기, 특히 외국의 옛이야기는 명작동화란 이름으로 전집으로 출판되어 

아이들 필수 목록으로 많이 읽곤 합니다. 

옛날엔 그냥 이야기 자체로 받아들였지만, 

이젠 명작동화에 딴죽을 거는 사람들이 많이 나타나기 시작했어요. 

왜 공주들은 한결같이 수동적이며, 계모들은 나쁘게만 그려지는 걸까 식으로요. 

거기다 명작동화의 원판은 잔혹하다며 원판을 다룬 책도 나왔어요. 

이런 명작동화의 이야기를 각색해서 새로운 이야기로 바꾸는 시도도 많이 생겨나 

명작동화가 예전과 다른 모습으로 다루어집니다.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의 저자는 어릴 적 세계문학전집을 읽으며 

백마 탄 왕자들이 자기들 나라를 놔두고 왜 그렇게 떠돌아다니다 

공주들을 발견해 사랑에 빠지는지 등이 궁금했답니다. 

그런 중에 세계사를 공부하며 의문을 풀게 되었고, 

어려운 세계사를 조금 쉽게 접근하는 마음으로 이 책을 나왔대요. 

그럼 명작동화 속에 숨어 있는 반전의 세계사,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를 볼까요~



저자가 말하기 전엔 한 번도 인식하지 못했던 저, 

그러고 보니 진짜 왕자들이 왜 그렇게나 많은 건가요? 

한 나라에 왕자는 몇 명 정도 있을 건데, 공주도 많고 왕자도 많더라고요..


그 이유는 근대 이전의 유럽에 작은 나라들이 많았기 때문입니다. 

30년 전쟁이 끝난 1648년, 지금의 독일어권 지역은 무려 300여 개나 되는 

작은 나라들로 이루어진 영방국이었습니다. 

왕만이 나라를 다스리는 우리나라와 달리 중세 유럽은 귀족이나 기사들도 영주가 되어 

영토를 각각 다스렸어요. 

그러므로 큰 나라든 작은 나라든 그 나라를 다스리는 영주의 자녀들은 다 왕자와 공주였습니다. 

큰 나라의 경우 왕자들은 태어난 순서대로 왕, 공작, 백작 등의 지위와 

평생 먹고 살 수 있는 영토를 받습니다. 

그러나 작은 나라의 경우는 왕자들이 많으면 나라를 분할할 수 없기 때문에 

장남이 부모의 지위를 계승하고 나머지 왕자들은 스스로 알아서 인생을 개척해야 했습니다.

그렇기에 작은 나라의 부모는 영지가 딸려 있어 일정 수준 이상의 수입이 보장되는 

추기경과 대주교 같은 성직 자리를 사주기도 했고, 

그 밑의 왕자는 무력으로 망해가는 나라를 차지해 스스로 영주가 되거나, 

딸만 있는 이웃 나라에 가서 공주와 결혼하기 위해 매력 어필을 하거나 

마상시합에서 용맹을 자랑해야 합니다. 

젊고 예쁜 공주를 만나지 못하면 남편과 사별해 넓은 영토를 상속받은 

부유한 귀부인에게 구혼하기도 합니다. 

그러니까 동화에 나오는 그 많은 방랑 왕자들, 그들은 

정의감이 넘쳐 용과 마법사를 무찌르러 다니는 모험가들이 아니라 

일거리와 부자 처갓집을 찾고 있는 떠돌이 백수인 것입니다. 


그리고 본문에서 언급되지 않은 공주들에 대한 이야기가 'Plus'에 나옵니다. 

공주들이 많은 가난한 나라는 첫째 공주만 동맹을 맺은 나라의 왕자나 왕과 

정략결혼을 시키고, 나머지 공주들은 결혼 지참금보다 싼 기부금과 함께 

수녀원에 평생 맡겨집니다. 

인어공주에서 왕자와 결혼한 이웃나라 공주도 그렇게 해서 수녀원을 나올 수 있었고, 

공주뿐만 아니라 귀족 집안 딸들도 수녀원에 맡겨진답니다.


이제야 명작동화 속에 숨은 의문이 해소되네요. 

그리고 왕자들도 공주들도 불쌍한 생각이 들구요.



그림 형제의 빨간 모자, 헨젤과 그레텔 등도 처음과 이후 판본의 내용이 다릅니다. 

빨간 모자의 초판에는 늑대가 등장하지 않고 늑대 인간이 등장해 소녀를 성폭행합니다. 

재판부터는 늑대 인간이 아니라 실제 늑대가 등장하고 성적인 내용이 순화되죠. 

헨젤과 그레텔의 초판에는 아이들을 갖다 버리려는 엄마가 계모가 아니라 친엄마입니다. 

중세 유럽에서 흉년에 식량이 부족할 경우 영아를 죽이거나 

유아를 버리는 것은 흔한 일이었어요. 

그러나 어떻게 친자식을 버리느냐는 도덕적 비난을 피하기 위해 계모로 바꿉니다.


민담을 바탕으로 한 동화들의 여러 판본을 비교해보면 

후대로 내려올수록 폭력적이거나 성적인 면, 비윤리적인 부분이 수정되어 

좀 더 '동화적'으로 바뀌는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명작을 통해 역사를 보고 싶다면 순화되기 이전의 모습을 봐야 합니다. 

빨간 모자와 헨젤과 그레텔을 통해서 중세 유럽은 어땠는지 알 수 있어요. 

왜 마을 밖에는 그토록 울창하고 길을 잃기 쉬운 숲이 있었는지, 

왜 그 숲에는 늑대가, 그것도 말하는 늑대가 어슬렁거리고 있었는지, 

왜 숲속에는 마녀가 살고 있었는지 등을요.


안데르센의 동화 빨간 구두의 소녀는 빨간 구두를 신고 춤추기를 좋아했다고 

그렇게 심한 벌을 받아야 할까요? 

화학 염료가 개발되기 이전, 빨간색은 비싸고 귀한 색이었고 

사치와 권력의 상징으로 빨간 구두를 신을 수 있는 사람은 로마 황제와 황후, 교황뿐이었습니다. 

고대 로마 제국이 멸망하고 교황만이 빨간 구두를 신을 수 있었어요. 

그런데 안데르센이 살던 19세기 덴마크에서는 루터주의 개신교를 믿고 있었으니 

가톨릭 교황의 사치를 상징하는 빨간 구두가 좋게 보일 리 없겠죠. 

이 시기 북유럽 종교개혁가 칼뱅은 엄격한 금욕과 근면을 강조해 

현대에도 검은 양복에 검은 스타킹과 검은 구두만 착용하고 사는 

근본주의 칼뱅주의자 신도들이 있습니다. 

이런 엄격한 윤리관에 주인공 카렌이 빨간 구두를 신고 춤추는 것이 

죄악이 될 수 있었는지 이해가 됩니다. 

여왕의 행차 때 공주가 신은 빨간 구두를 보고 부러운 나머지 빨간 구두를 신고 

세례식에 가서 춤을 추죠. 

왕이나 백작의 딸은 빨간 구두를 신어도 되지만 가난한 고아 수녀인 카렌이 신으면 

죄가 되는 것입니다. 

카렌의 빨간 구두는 단순한 구두가 아니라 그 사람의 신분을 나타내는 거죠. 

카렌이 부러워한 것이 단순한 구두가 아니라 신분이었으며 

신분을 욕망한 공공의 적으로 간주돼서 

가난한 아이들의 본보기가 되는 벌을 받게 된 것입니다.





저자는 2013년 초판이 나온 뒤 이 책을 읽은 독자들이 동심이 깨졌다며 

농담 섞인 항의도 받았답니다. 

하지만 백마 탄 왕자가 공주를 만나 한눈에 사랑에 빠지는 것을 믿는 것이 

동심이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그건 요즘 아이들도 다 아는 드라마고, 허구죠. 

동심은 어른이 되어서도 아이였을 때의 마음, 약자였을 때의 시선을 잃지 않는 것이라고 

저자는 생각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추방된 마녀와 신분에서 벗어나고자 하는 소녀의 이야기를 오래 기억하고 

배경 역사를 알아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백마 탄 왕자들은 왜 그렇게 떠돌아다닐까>를 읽으며 

다양한 명작동화를 접하며 몰랐던 반전의 세계사를 배울 수 있는 시간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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