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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시울타리의 증언 - 30년간 교도소에 근무하는 현직 교도관이 쓴 감옥이야기
황용희 지음 / 멘토프레스 / 2007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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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유 계장님이 그런 분이었군요. 그땐 몰랐어요^^ 이제라도 밝혀져서...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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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터월드 - 떠도는 우주기지의 전사들
닐 게이먼 외 지음, 이원형 옮김 / 지양어린이 / 2009년 4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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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는 어디고 나는 누구지?"   

주인공이 처한 상황이 이렇다. 툭하면 길을 잃어버리는 어리버리 소년 조이, 짝사랑하는 소녀 앞에서 필사적으로 길을 찾다가 그만 다른 차원의 지구로 이동해버린다. 소년은 사실 워커(차원이동의 능력을 지닌 이)로서, 자신도 모르고 있던 능력이 위기상황에서 발휘된 것. 아무튼 우주적인 차원에서 길을 잃었으니, 꿈(술) 깨면 다음날 아침 새사람 될 거라는 광고 카피도 위로가 안 되는 난감 만빵인 처지. 내 집은 내 집이 아니고 엄마는 엄마가 아니다. 조이, 너 조이 맞니? 

 

"나는 너고 너는 나라고?" 

헥스와 바이너리라는 두 제국의 추적자들에게 쫓기며 만나게 되는 의문의 소년 제이. 이 책에서 조이가 만나는 친구들은 모두 이름이 ㅈ으로 시작된다. 제이, 조우, 조세핀, 조셉, 조이보그, 졸리엣 등등. 왜냐하면 그들은 모두 대칭하는 우주의 다른 지구에 사는 조이의 화신이기 때문이다. 운명이 엇갈리게 되는 한 순간, 서로 다른 지구에서 다른 운명을 살게 된 그들은 그러나 하나의 공통적인 운명을 갖고 있다. 워커, 그들은 워커이고, 헥스와 바이너리는 그들의 공간 이동능력을 필요로 한다. 조이들은 살아남기 위해 워커로서의 자기 운명을 수긍하고, 떠도는 우주기지 인터월드로 결집해 두 제국에 맞서 싸운다. 

 

"과학과 마법의 대립은 현실과 꿈의 대립이다" 

헥스는 마법으로 우주를 지배하려 하고, 바이너리는 과학으로 우주를 지배하려 한다. 마법은 내 의지를 세계에 관철시키는 것이고, 과학은 세계가 자기 자연법칙(의지)를 관철시키는 것이다. 곧 두 제국의 투쟁은 꿈과 현실의 대립이다. 조이들은 이 두 제국의 야욕에 대항해 우주의 조화를 지키려 하는데, 사실 우리 인생도 꿈과 현실을 잘 조화시켜야 의미있게 생존할 수 있다 하겠다. 

 

"조이 투 더 월드~" 

평범한 삶으로 돌아갈 수 있는 기회가 주어졌을 때, 조이는 전사로서의 운명을 걷기로 결단을 내린다. 학교공부가 싫어서 그랬던 건 아니고, 나름 전 우주적인 운명과 개인의 실존 중 어느 것이 중요한가라는 거창한 고민 끝에 내린 결론인데, 엄마와의 마지막 대화에서는 어쩐지 비장한 느낌도 들지만, 뭐 그건 조이의 워커로서의 운명이니까. 아마도 쓰리독나잇의 '조이 투 더 월드'나 흥얼거리며 우주를 구하러 가라고 내버려두는 수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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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형이 쉬워지는 인도 베다 수학 - 기적의 연산법 인도 베다 수학
마키노 다케후미 지음, 고선윤 옮김, 노마치 미네코, 비바우 칸트 우파데아에 감수 / 보누스 / 2009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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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어느 책에선가(아마도 '소크라테스 전후'로 기억) 고대 인도에서 수학이 발전했던 이유를 읽은 기억이 난다. 매년 홍수로 강이 범람하여 농경지를 쓸고 갔기 때문에 경계를 다시 긋기 위하여 토지 면적을 계산하는 방법이 발전했다던가? 아무튼 고대 문명의 중심인 그리스도 인도 수학의 영향을 받았고, 특히 피타고라스 학파는 수의 세계에 매료되어 '종단'으로 발전해서, 오랜 세월 비밀 전승되며 만물 질서의 근본인 수를 숭배했다고 하는데...
물론 보기 4개를 하나하나 문제에 역대입하여 정답을 찍던 청소년기를 보냈던 나로서야 숭배하고픈 마음까지야 들지는 않지만, 그러나 이 책 '도형이 쉬워지는~'을 보니 수학이라는 분야가 과연 오묘하다는 느낌이 스쳐간다.
산꼭대기로 올라가는 길은 하나가 아니겠지만, 우리는 보통 '등산로'라고 이름붙여진 길을 따라 올라간다. 하지만 올라가는 과정을 즐기려는 분들이라면 이리저리 남들이 잘 가지 않는 길을 따라갈 수도 있을 것이고, 어느날 더 흡족한 길을 발견할 수도 있을 것이다. 
수학도 마찬가지 아닐까? 예를 들어, 평행사변형의 면적을 구하는 방법은 꼭 '(밑변+윗변)/2 * 높이'가 아닐 수도 있다. 이 책에서 인도인들은 우리가 수학시간에 배운 것과는 매우 다른 창조적이고 이해하기 쉬운 연산법을 선보인다. 원을 쪼개 사각형으로 만들어 면적을 계산하는 방법을 보노라면 "거 참" 하는 생각마저 든다.
이 책은 도형의 면적을 쉽게 구하는 데 중점을 두고 있기 때문에 주로 '곱하기'를 쉽게 하는 방식을 보여준다. 우리 교과과정 식으로 이야기하자면, 수를 쪼개(인수를 구해) 교환법칙을 활용하는 방식 등으로. 그리고 도형계산으로 치환해 쉽게 이해할 수 있는 방식으로. 읽으며 어렴풋이나마 깨달은 것은 덧셈 뺄셈은 선분으로 표현 가능한 일차원의 세계이며, 곱셈 나눗셈은 면적으로 표현 가능한 이차원의 세계라는 것이다(맞는 생각인지는 확신 못한다).
아무튼 간만에 두뇌운동을 할 수 있는 책이었다. 공식을 외우기보다 좀더 원리를 추구하는 초중생이라면 읽어보는 것이 창의력 개발에 도움이 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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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담거리의 펜더윅스
진 벗설 지음, 이원형 옮김 / 지양어린이 / 2008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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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자매의 일상에서의 모험~ 아빠와 함께 평온하게 살아가는 펜더윅 자매 앞에 풍파가 닥친다. 클레어고모가 엄마의 유언이 담긴 편지를 들고 방문한 것이다! 엄마는 소극적인 아빠가 혼자 외롭게 살아갈 것을 걱정해 재혼할 것을 유언으로 남겼던 것. 맏이 로잘린드는 마음속 엄마의 자리에 새엄마가 등장하는 것을 상상할 수도 없었기에 동생들을 부추겨 '아빠구하기 작전'을 개시한다. 이과 스타일인 둘째 스카이와 거의 글쟁이인 세째 제인은 하기 싫은 주제의 작문숙제를 서로 바꿔 하다가 엉겹결에 꼬리를 문 거짓말 속에 빠지게 된다. 한편 막내 배티는 가담거리를 위협하는 버그맨의 등장에 애견 하운드와 옆집아기 벤을 거느리고 스파이 역할에 열중하게 되는데...  

작가는 소녀들의 일상생활의 에피소드와 감정을 따뜻한 시선으로 재미있게 풀어나간다. 사춘기에 접어든 맏이 로잘린드, 감정에 얽매이기보다는 인생이 수학적으로 정확하기를 원하는 스카이, 한번 주제에 몰입하면 다른 아무것도 보이지 않는 세째 제인, 동물을 사랑하는 네째 배티... 개성만점인 네 자매가 가족에 대한 사랑으로 한 단계 성장하며 닥친 문제를 슬기롭게 넘어서는 모습을 보여준다. 딸 둔 부모님들은 같이 봐도 재미있게 읽을 수 있을 듯. 강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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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수, 종교를 비판하다
브룩시 카베이 지음, 남호 옮김 / 새론p&b(리얼북) / 2008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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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룩시 카베이는 예수를 살리기 위해 기독교의 종말을 선언한다. 믿음을 돕기 위해 제도화된 기독교는 이제는 절대자에 도달하는 데 방해가 되고 있다고 카베이는 생각한다. 곧 기독교가 종교를 위한 종교, 다시 말해 성경 속의 '우상 숭배'의 지경에 이르렀다고 돌려서 말하고 있다. 우상숭배가 무엇인가? 그 본질을 보지 못하고 외식(겉치레, 형식)에 집착하는 것이다. 기독교는 예수가 가르쳤던 사랑과 용서와 화해의 정신을 실천하기 보다, 대궐같은 교회를 짓고 그 바깥의 많은 길 잃은 양들을 배타시하고 있으며, 예수를 팔아 장사를 하고 있다. 면죄부를 팔던 시대나, 특별헌금을 통해 천국행 티켓을 사는 시대나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카베이의 주장이 파격적으로 들리지만 사실 특별한 것도 아니다. 예수는 교회를 건물로 이야기한 적이 없다. 예수는 자신을 걸어다니는 교회(성전)라고 생각했으며, 초기 기독교인들은 자신들을 교회를 이루는 돌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곧 교회는 특별한 건물이나 장소가 아니라 '관계'였던 것이다. 그런데 현대 기독교는 교회를 절대자가 임재하는 '신성한 장소'라고 주장하며, 그 안에 예수를 가둬놓고 사람들을 불러모으고 있다. 예수를 독점하고 있는 것이다. 기독교는 사람들더러 교회로 오라고 강요하지 말고, 예수를 풀어줘 모든 길잃은 사람들에게 다가갈 수 있게 해줘야 하지 않겠는가?

본래적인 의미의 '예수를 따르려는 사람들'이라면 카베이의 말이 당연한 주장으로 들릴 것이다. 하지만 이 당연한 내용조차 기독교 보수근본주의의 입장이 주류인 우리 교계에서는 받아들이기 어려울 것이라 생각하니 안타깝기 그지없다. 가차없이 이단이라고 말할 목사님들도 있을 것이고, 어쩌면 신도들에게는 금서명령을 내리지는 아닐지... 

기독교의 타락과 무신론의 반격 속에서 갈곳을 몰라 헤메이며, 그러나 절대자와 연결되어 있다는 생각을 포기할 수 없고, 인간에 대한 사랑으로 십자가에 매달린 예수를 버릴 수 없는 사람들이라면 꼭 한번 읽어보기를 권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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