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 문학동네 청소년 66
이꽃님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8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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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르륵‘
˝저...... 이꽃님 작가 신작 여름을 한 입 베어물었더니 있나요?˝
˝찾아봅서˝

여행할 때 꼭 향수와 책을 준비하곤 하는데 다녀와서 다시 그 향을 맡거나 표시한 구절을 읽을 때면 여행 날의 기분, 그 곳에서 들려왔던 소음같은 기억의 단편이 버튼을 누른 것처럼 이미지가 되어 재생되기 때문이다. 꽤 오래 머물 뜻으로 떠난 휴가지 제주에서 좋아하는 작가의 신간 소식을 듣고는 곧 조그맣지만 알려져있는 지역 서점으로 향했다.
두 번째 찾은 곳에서 겨우 구할 수 있었는데 옆구리에 끼고 일정을 소화하며 구매한 날 다 읽어버렸다. 그래서 이 ‘여름을 한 입 베어 물었더니‘는 나랑 쇠소깍 나룻배도 보고 돈내코 원앙폭포에서 내려오는 시원한 물줄기의 방울방울도 함께 맞았다.

편모 가정에서 자란 지오의 생각과 뜻밖의 사고로 신기한 감각 속에 살아가는 유찬의 생각을 번갈아 들려주는 내용이다. 다른 사람들의 속마음이 들린다는 자칫 흔할 수 있는 소재로 다소 싱겁게 느껴질 장치임에도 불구하고 어떻게 이끌고 풀어가냐로 설레게 만드는 작가의 ‘믿고 보는‘ 능력으로 역시 다 읽고 난 후엔 고요했던 마음에 잔잔한 물결이 반짝이며 인다.
엄마와 살며 아빠 없는 일상이 당연한줄로만 알았던 지오는 엄마가 아플 수 있는지도 어느 날 갑자기 시골로 전학을 갈줄도, 그래서 17년만에 처음 보는 아빠와 함께 살게 될 줄도 몰랐다. 그렇게 흘러들어온 낯선 정주에서 그 아이를 만났다.
세상 모두에게서 엄마아빠를 빼앗긴 날, 들리는 소리가 엄마의 마음이었던 걸 깨닫게 되면서 알고 싶지 않은 사람들의 속 마음을 듣는 저주에 갇힌 유찬에게 ‘삐-‘하고 이명이 울리고는 다시 정적이 찾아온다. 그 고요의 근원이 멀어지지 않게 붙잡아두고 싶다.

˝... ... 그럼 네가 내 이어폰 해.˝
˝뭔 소리야.˝
˝내일부터 학교 오면 내 옆에 앉아.˝ p. 44

자신의 불행이 다른 사람들의 탓만 같아 분노에 찬 삶이 얼마나 처절한지 지오와 유찬을 보며 같이 쓰라렸다. 억울하기만 했을 그 어린 두 인생이지만 지오에게는 새별 선배가 등장하여 새로운 사고의 전환점이 되어 더 열심히 운동하며 엄마를 지키겠다는 의지가 되었다. 그런 새별 형이 유찬에게는 모든 저주의 원천이었기 때문에 관계성이 어떻게 맺어질지 궁금해하면서 책장을 넘기다보니 어느새 마지막 장이었다.

˝그깟 마음 좀 들린다고 다 아는 것처럼 굴지 마. 마음? 네가 들린다는 마음이 얼마나 가벼운 줄 알아? 사람 마음은 하루에도 수십 번씩 바뀌어. 하루는 조금 괜찮았다가, 그래 내가 모르는 어떤 이유가 있었겠지 이해해 보려고 했다가, 또 하루는 미칠 것처럼 화가 나 죽겠다고.˝ p. 57

이제 예전처럼 상처받고 아파하기만 하는 건 그만둘까 싶다. 미움과 분노는 때때로 찾아들겠지만 거기 매여 있는 대신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해 볼 생각이다. 까짓것, 못 할 것도 없지. p. 165

자꾸 어디있는지 눈으로 쫓고 그 애가 누구랑 있는지 신경쓰게 되는 과정이 그림으로 그려지며, 풋풋한 첫사랑이 귀여워 입꼬리가 올라갔다.

체육 시간이면 짝사랑과 가까이 있고 싶어 주위를 살피고, 청소 시간이면 수돗가에서 쨍한 햇살을 등지고 서로에게 물 장난을 치던 찬란했던 학생 시절이 먼 추억처럼 떠오르는 이 책을 내 아이에게 선물하고 싶다. 아득한 첫사랑을 지나 온 엄마에게도 아찔한 첫사랑을 앓을 아이에게도 뜨거운 여름을 한 입 베어물어 마음을 지켜주는 책이기 때문에.

아직 나의 휴가는 끝나지 않았지만 다시 일상으로 돌아가서 이 책을 펼치면, 파도가 밀려와 하얗게 부서져 번지는 포말을 바라보던 제주도의 시간이 재생될 것이다. 바다의 윤슬처럼 눈부시게 반짝였던 내 여름의 한 장면을 언제고 다시 펼쳐볼 수 있도록 책갈피가 된 셈이다.

여름날, 낯선 여행지에서 길벗한 청귤에이드처럼 상큼쌉싸래한 청춘드라마!
이꽃님 작가의 그간 작품들 중에선 드문 순한맛이 아니었을까
순하고 몸에 좋은 유기농같은 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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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튜디오 지브리 입체건축전 도록 (복각판)
스튜디오 지브리 지음 / 학산문화사(만화)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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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디어 도착한 도록! 처음엔 코팅 안된 종이재질의 표지에 (관리의 어려움 때문에)실망스러움이 일었으나 이내 펼쳤을 때의 감동이란.. 전시회엔 못 가봤지만 크게 펼쳐지는 날개표지에 압도되는 것이 작품을 소장하는 느낌이어서 좋게 다가왔다! 특히 애정하는 지브리 애니메이션의 컬렉션을 수집할 수 있는 기쁨이 크다. 오늘 밤은 동화같은 꿈이 찾아올 것 같아 설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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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향사가 들려주는 향기로운 식물도감
프레디 고즐랜드.자비에르 페르난데스 지음 / 도원사 / 2023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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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름휴가를 계획하고 있을 당신에게 주고 싶은 팁 한 가지!
평소에 내가 좋아하는 향수를 갖고 가거나 현지에서 향수를 구입해 여정 내내 뿌리시길 바란다. 다녀와서 몇 일을, 몇 해를 묵혀도 다시금 그 향을 맡으면 그 때의 그 기억이 생생하게 현재에서 재생되기 때문이다.
이게 팁이냐고 할만큼 향수를 즐기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텐데, 그것이 향수가 갖고 있는 힘이다.

향수에 익숙하지 않은 사람에게는 ‘나‘를 기분 좋게 하는 향이 어떤 것인지, 내가 좋아하는 사람에게서 나던 향이 무엇이었는지 알게 해주고
평소 향수에 관심이 많은 사람에게는 내가 끌리는 향들을 조합하여 더욱 디테일한 취향 연구를 할 수 있게 해줄 가이드가 나왔다.

‘조향사가 들려주는 향기로운 식물도감‘은 글자 그대로 식물도감이다. 생생하고 화려한 색감으로 향의 원료가 되는 식물의 실물 사진이 정리 되어 있으며 그 식물의 향에 대해 표현되어있는 것뿐 아니라 주요 산지, 사용 및 분석 역사, 추출법, 구성 성분, 어울리는 향조 등 총 지식이 폭 넓은 주제로 망라되어 있다.
특히, 흔한 향료 외에 여타 책에서 다루지 않은 식물이 많아 소장할 가치가 크고 도감으로서 의미가 있어 이름값한다!
(본 책의 말미에는 ‘플랜트 헌터들에게 감사하며‘라는 페이지가 있는데 이는 각 식물의 실물 공수가 얼마나 어려운지를 실감하게 하는 내용이기에 여태 이 책과 같은 생생한 도감이 나오기 힘들었음을 알 수 있다.)

각 식물 페이지에는 조향사들의 짤막한 에세이와 대표 향수, 요리를 추천하여 읽는 즐거움과 함께 그 향을 더 풍부하게 느낄 수 있는 다른 감각으로의 초대가 기대감을 증폭시키기도 한다.
천천히 읽고 향에 대해 상상해보라!
그리고 당장 향수 매장에 달려가라!
직원이 추천하기 전에 내가 먼저 이 향이 들어있는 향수 또는 책에 나온 향수를 시향해보고 한껏 센스가 고양되어 하루를 들뜬 느낌으로 지낼 수 있을 것이다.

앞 뒤로는 역시 향, 아로마테라피 관련 서적과 마찬가지로 간략한 향수의 역사와 인문학적인 내용이 곁들어져있는데
오히려 이 부분이 향 덕후에게 치이는 포인트가 되는것이, 겉만 번지르르한 향수 ‘관련‘ 책이 아니라 현대 향료 산업에서 연구하는 프로젝트, 발표한 기술 등을 현장감있는 사진을 첨부하여 흥미를 돋우며 진짜 향수를 위한 책이란 차별점이 있다.

후에 한 가지 개정되면 좋겠다는 희망사항이 있던 점은 부록 ‘이 책에 등장하는 향수들‘페이지 내 향수 발매연도 옆에 본문 쪽수도 표기되면 향수들만 나열했을 때보다 이 향이 대표적으로 어떤 어코드인지 연상하기 쉬울 것 같다.

이렇게 기특한 올인원 백과사전이 있으니 초보자나 숙련된 조향사에게나 두고 두고 참고할 교과서 또는 강의 교재로 사용될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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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지개 곶의 찻집
모리사와 아키오 지음, 이수미 옮김 / 샘터사 / 2012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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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창 ‘소설 쓰는 법‘을 구매하고 싶어 저자를 알아보다가 엄청난 다작을 하신 작가라는 것에 놀라 구매하고 대표작을 읽어보았다. 자신이 즐겁게 써야 독자도 즐겁게 읽는다는 말처럼 역시 쉽게 읽혔다. 독창적인 구조라든지 소름끼치는 반전없이 일본 특유의 잔잔한 힐링 소설이지만 근래 많아진 다양한 힐링 아류 소설보단 와닿았다. 그건 이미지 묘사가 잘되어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이 책을 읽은 이후로 나는 내 하루의 시작에서 (오늘의 기분도) ‘맛있어져라, 맛있어져라‘하고 주문을 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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있을 법한 모든 것
구병모 지음 / 문학동네 / 2023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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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심으로 예약판매에 뛰어든 것도 있지만 어텐션북이 너무 기다려져 참을 수 없었다!(받고난 어텐션북은 정말 만족스럽다. 구병모작가님의 위트있고 진지한 생각을 엿볼 수 있는 인터뷰는 언제나 소중해서 이 얇은 책자도 한참을 붙들고 소중히 읽게된다.)
역시 냉소적이면서도 선한 것에 대한 추구가 있는 문장(작가 본체는 희망같은 건 없다고 생각한다고 하셨지만)과 거창하게 표현되지만 또한 ‘있을 법한‘ 일상의 확장을 통해 이끌어나가는 통찰에 단편소설들이지만 그 이미지는 장편처럼 머릿속 깊숙히 스며들어 퍼진다.
근래에 출간되었던 구병모작가님의 단편소설들을 읽을 때면 수수께끼의 연무에 갇혀 언어의 퍼즐을 맞춰 길을 찾아가는 느낌이었는데 그 언어의 퍼즐이 경이로울 정도이다. 내용보다는 언어 그 자체만으로 이렇게 놀이판을 짤 수 있나 하며.......
‘니니코라치우푼타‘를 읽는 내내 그게 뭘까 궁금하면서 딸이 엄마에게 마지막 재롱(미지의 엄마친구‘니니..‘를 연상하며 추억을 고개들게 할 극을 꾸미는 모습)을 부리려 애쓰는 것도 애틋하지만 끝에 가선 그 정체를 알게되고 뭉클하게 밀려오는 모성이 감동스럽다.
‘노커‘로 인해 언어를 잃어버렸을 때의 답답함을 실감하면서 본질적으로 언어가 있음으로 오해가 생긴다는 작가의 사유에 진하게 물든다. 그 와중에 ‘유실물보관소님 오천원 후원 감사드립니다‘, ‘사망플래그님 만원 후원 감사드립니다‘ 나올 때마다 웃겼다 ㅋㅋ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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