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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 ? - 두란노서원빛과소금시리즈 1
헤리블레마이어 지음 / 두란노 / 1986년 4월
평점 :
품절
나는 아직 청년이고 기독교인이기 때문에 가장 많이 접하는 사람들이 기독교인이고 청년들이다. 주일날 예배시간을 전후해서 늘 이들과 교제를 나누며 일주일간의 삶을 서로에게 이야기를 한다. 그런데 이들과 교제를 나누면서 하나의 불문율같은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일주일간의 삶을 나누는 것, 즉 일주일동안 대학에서, 직장에서 어떤 일들이 있었고 이런저런 일 때문에 힘들었고 또는 기뻤다는 것에 그치고 서로간에 더 깊은 나눔과 대화는 피한다는 것이다.
그런 나눔과 대화가 끝나면 늘 뭔가 아쉽고 허전한 기분이 남아서 씁쓸했는데 그것의 원인을
책『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가 내게 가르쳐 주었다.
그 씁쓸함의 정체는 삶에 대해, 믿는 사람이나 믿지 않는 사람이나 별 구분없이 할 수 있는 나눔은 있었지만 (책의 원제목처럼) 그 속에는 기독교적인 정신과 사고는 없었기 때문이었다.
책에서도 사실 교회 내에서 그리고 삶속에서 사라져가는 기독교적인 정신에 대해서 안타까워하고 있다.
문학 평론가이자 소설가이면서 King Alfreds College의 은퇴교수였던 블레마이어는 기독교사상가라 일컫는 C.S.루이스와 친분이 두터울 정도로 그리스도인들의 사고와 정신에 대해서 많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는데, 그가 기독교인들에게서 실종되었다고 단호하게 말하는 기독교정신이 무엇일까?
책에서는 그것을 삶에 대한 종교적 견해 즉, 모든 지상적 사건들을 종교적 맥락에서 해석하며 인간의 모든 문제들-사회적, 정치적, 문화적-을 기독교신앙의 교리적 기초들에 연결시키며 여기 지상의 모든 것들을 하나님의 주권과 지구의 무상함을 통하여 보며, 천국과 지옥을 통하여 보는 견해라고 설명하고 있다.
이러한 기독교적 정신이 기독교인들에게 있어서 사라졌다고 말하고 있는 것이다.
책의 내용을 살펴보면, 책은 총 1부와 2부로 구성되어있다.
블레마이어는 왜 기독교적 정신이 사라져가고 있는지 그 이유를 1부에서 다루고 있는데
그 이유가 기독교적 정신이 세속적 정신에 굴복했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있다.
일례로 이 책이 출간될 당시 영국의 문화의 가치를 면밀히 조사하여 현대문명의 질을 정사한 많은 저술가들의 정신은 인본주의였다고 말한다.
게다가 당시 사람들의 환호를 받는 사상가들과 선지자들의 대부분은 비 기독교인이라고 기술하고 있다.
그나마 기독교적 정신으로 현대문화의 치명적인 측면을 비판하고 반성을 시도한 죠셉파이퍼 등의 저작에 대해서는 거의 무시당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렇기때문에 이러한 것들에 문제의식을 가지는 기독교인들에게서 “사고하는 그리스도인의 외로움”이란 문제가 생겨난다고 말하고 있다.)
언젠가 교회에서 단체로 영화를 보러갔었는데 다 보고나서 한 청년이 그 영화에 대해서 한가지의 쟁점을 꺼내서 가볍게 대화하자는 말을 했었다. 하지만 대부분의 청년들이 아니 모든 청년들이 다들 무시하고 헤어졌었던 적이 있다.
어쩌면 그 순간이 그에게 있어 “사고하는 그리스도인”으로 첫발을 내딛는 중요한 순간이었을지 모르는데 그는 그 자리에서 집단적인 무시를 당함으로 블레마이어가 말하는 외로움을 느꼈을지 모른다.
그와 동일하게 블레마이어 당시 영국의 사정도 그랬기에 통탄하며 선지자적인 외로움을 느끼고 있었을 것이다.
2부에서는 기독교적 정신이 어떻게 서 있어야하고 나아가야 할 방향에 대해서 제시하고 있다.
블레마이어는 기독교적 정신은 세속정신과는 달리 눈으로 보이는 감각적 현세만을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눈에 보이지 않는 내세까지도 계산에 넣는 것이라고 말한다. 즉 초자연적인 방향설정을 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리고 우리가 바라보는 이 우주를 선의 세력과 악의 세력사이의 전쟁터로 인식하고 우리로 하여금 악을 구별해내는 통찰력으로 세상을 향해 비판하면서 동시에 우리도 죄에 똑같이 참여했으므로 세상에게 소망을 주는 메시지를 전하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이 소망의 메시지가, 우리의 제한된 질서너머에 계시는 하나님과 그분으로부터 주어진 계시여야하며 그것이 곧 진리라고 말하고 있다.
하지만 기독교적 정신의 실종과 함께 진리의 개념도 불분명해졌다. 그래서 블레마이어는 지금 온 세계를 뒤덮고 있는 세속적 정신에 의해 훼손된 진리와 그것을 규정해주는 권위의 원리를 기독교적으로 재주장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세속적 정신에 의해 훼손된 권위는 첫째 하나님의 권위이고, 그 다음에는 계시와 그의 명령과 교회의 권위이다. 이러한 것들의 권위를 회복하는 한편, 이미 확립된 거짓된 상도 타파해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또한 블레마이어는 인간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는데 그는 현대의 사회는 기계로 인해 많은 발전을 이루었다고 말한다.
기계화로 인해 사회의 많은 부분이 빨라지고 편리해졌지만, 그것에 의해 오히려 하나님과는 멀어지고 더 나아가 인간에 의해 만들어진 편리한 기계에 노예가 되어가는 사회에 우려를 표했다.
이 기계는 우리의 일상생활 속에서만 영향을 미치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정신과 신념, 다른 사람을 바라보고 판다하는데도 영향을 미친다고 말하고 있다. 이른바 기계론적인 사고이다. 이러한 정신과 사고에 블레마이어는 저항해야 하며 기독교적 정신으로 바로잡아야 한다고 말하고 있다.
마지막으로 블레마이어는 당시에 흔히 부정적으로 생각하는 음악, 섹스, 춤 등 충동적이고 본능적이며 열정적인 모든 것들에 대해서도 피력하고 있는데, 그는 그것들이 악한 것들이 아니라 근본적으로는 건전하며 하나님의 선물이라고 말하고 있다. 그러면서 기독교적인 정신으로 이러한 부분들을 사고하고 다루어야 될 것을 말하고 있다.
나는 이 책을 통해 미처 깨닫지 못했던 부분들을 깨닫게 되었고, 아주 부족하게나마 고민했던 부분들의 원인과 대안을 생각할 수 있었던 것 같다.
하지만 책이 1986년에 번역이 되어서 번역의 미숙함때문인지, 아니면 아직 내가 많이 부족해서 그런지 책이 쉽게 읽혀지지 않았다.
또한 쌔크라멘탈리즘(Sacramentalism)-극단적 성례주의- 이란 단어는 우리 종교개혁의 후예들에게는 부정적인 의미인데 다루고 있는 내용은 쌔크라멘탈리즘과는 거리가 있는 듯해 여러 번 반복해 읽었지만 아직까지 정확히 무슨 의미로 사용했는지 의문이 남는다.
하지만 이런 부분들은 얕은 나의 지식의 수준이 원인일 것이다. 어쨌든『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를 통해 또 하나의 인식의 창이 열린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