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라흐마니노프, 피아노의 빛을 따라
피오나 매덕스 지음, 장호연 옮김 / 위즈덤하우스 / 2025년 12월
평점 :
라흐마니노프가 생애 나눴던 편지, 음악과 생애를 정리한 여러 자료집, 역사학자, 음악학자, 음악가, 라흐마니노프 전공자, 그의 친척들의 증언을 한 데 모아 정리한 전기傳記 작이다. 책의 제목 그대로, 그의 음악을 따라가다 보면 그가 어떤 사람이었는가에 대한 이해가 찾아온다.
라흐마니노프는 가까운 사람에게 정이 많았고, 신사적이었으며, 일 중독자였고, 죽을 때 까지 평생 고향을 그리워한 타국의 이민자였으며, 너무도 지극히 러시아인이었다.
이미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2번>과 같이 잘 알려진 그의 일화가 있다. <피아노 협주곡 1번>을 발표해 끔찍한 혹평을 뒤집어 쓰곤, 극심한 우울증에 시달렸다는 이야기. 그 유명한 <피아노 협주곡 2번>은 아마추어 정신과 의사인 달 박사를 통해 우울증을 극복하고 쓴 곡이다. 하지만 이 이야기는 긴 라흐마니노프의 생애 중 겨우 첫 번째 장에나 등장할 법한 일화였다. 라흐마니노프가 길고 긴 망명을 시작하기도 전 이야기라는 것이다.
’10월 혁명‘에는 볼셰비키당이 페트로그라드를 장악하고 사유재산 종식을 선언했다. 다행히 라흐마니노프는 스칸디나비아의 정치적 중립국에서 음악회를 맡아달라는 초대장을 통해 러시아를 무사히 도망나올 수 있었다. 1917년 12월 23일, 그는 러시아를 떠나 죽을 때까지도 다시는 그 땅에 돌아오지 못했다. 죽기 직전에야 미국 시민권을 얻었으니, 반 평생을 떠돌이 이민자 생활을 한 셈이었다.
망명자 신세로 미국, 파리, 스위스에서 새로운 안식처를 마련하면서도, 그는 러시아인이기를 포기하지 않았다. 그의 주변에는 늘 러시아인 친구들이 있었다.
자신이 거처하는 공간은 꼭 러시아 가정집처럼 꾸몄다. 제2의 안식처로 삼은 스위스의 세나르에는 사랑과 노력을 부어 만든 집도 있었다. 그마저도 세계 2차대전의 영향으로 또다시 망명길에 올라야했지만...
아무튼, 그는 죽기 직전에도 러시아 사람들과 함께했다. 그의 임종을 지킨 간호사도, 의사도 러시아 이민자들이었다. 무엇보다 그가 작곡한 모든 곡들이 ’러시아스럽‘지 않은가. 특히나 <교향곡 3번>은 ’나의 러시아 추억‘이라는 표제가 붙었다는 점이 인상적이다.
라흐마니노프는 피아니스트로서 총 1457회 무대에 섰고, 그중 1189회는 망명자로서 새로운 삶을 살 때 이루어졌다. 대표곡 <c샤프 단조>는 무려 1400번 넘게 연주했다. 그의 음악은 비평가들에게 ”너무 대중적(모더니즘 음악에 비견해)“이고, ”음울하“며, ”심리적 불안이 횡행하“고, ”의식을 탁하게 하고 의지를 약하게 만든다“는 혹평을 들었다. 하지만 라흐마니노프 음악을 좋아하는 사람들이 그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가 바로 그 지점이지 않나 싶다. 나도 그렇다.
그의 삶에는 참 많은 굴곡이 있었다. 시대 혼란에 안식처를 두 번이나 잃는다는 것은 어떤 느낌일까? 러시아인으로 살고자 하는 의지로 그토록 미국 시민권 얻기를 미루는 기분은 어땠을까? 오늘날 러시아 공습으로 자신이 연주회를 열었던 우크라이나의 도시를 그가 알게된다면 얼마나 절망할까.
그래도 그의 삶에는 극복의 의지가 있다. 어려운 시기에도 음악과 연주를 멈추지 않고 이어갔다. <피아노 협주곡 1번>도 <교향곡 3번>도 당시에는 좋은 평가를 듣지 못했지만, 현재는 많은 사랑을 받고 있다. 불멸이란 이렇게 만들어지는 것일까?
라흐마니노프를 좋아하는 한 사람으로서, 국내서로 출간된 점에 굉장한 감사를 표하고 싶다. 그에 대해 모르는 이야기들이 너무 많았고 그래서 재미있었다. 라흐마니노프의 팬이라면, 혹은 격변의 시대에 많은 관심이 있다면 꼭 읽어보길 바란다.
*본 글은 출판사로부터 도서를 제공 받아 작성한 주관적인 리뷰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