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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어나서 죄송합니다 - 왜 태어났는지 죽을 만큼 알고 싶었다
전안나 지음 / 가디언 / 2022년 3월
평점 :
절판
자신을 폭행하는
상대임에도 그 외에는 의지할 무언가가 없어서, 그 밖에 어찌할 도리가 없어서, 내가 미처 알지 못하는 나의 잘못이 있다고 이해할 테니 그러니 제발 나의 결핍을 채워달라고 애정을
갈구해야 하는 그 심정은 어떨까? 이 모든 X같은
상황이 다 나 때문이어야 한다. 비록 썩은 밧줄일지라도 나의 생명이 매달려있기에, 그 끈을 놓치지 않기 위해 스스로 죄인이 되어야 한다. 그
잔혹한 고통의 소용돌이 속에서 문드러지는 괴로움의 폭풍을 홀로 마음속에서 잠재우기 위해 얼마나 여러 번 스스로를 죽이고 또 죽였을까?
부모라는 존재로부터 사랑과 이해 대신 경멸과 분노를 받아내는 아이의 밤은 얼마나 춥고 잔인했을까? 도저히 이해하기 힘든 삶을 받아들이기 위해 도대체 어떤 생각들로 스스로를 속여야 했을까?
이런 경험은 평생의 트라우마로 남아 한 사람의 인생을 불구로 만들어 버린다. 보통의
한 사람을 심리적으로 거세 시켜버리는 행위다. 남에게 늘 자신을 속여야 하며, 사람으로 받은 상처로 인해 다른 사람과 관계를 맺는 게 너무나 힘들다. 사랑과 관심이란 것도 받아본 자만이 그것을 나눠줄 수 있는 것이다. 학대를
받은 이들은 누군가에게 관심과 호감을 받으면, 거기서부터 새로운 혼란이 시작된다. 있는 그대로의 상대방의 표현을 고맙게 받아들이지 못하고 '이
사람이 나에게 왜 이유 없이 잘해주지?', '내 본 모습을 알게 된다면, 나의 과거를 알게 된다면 이 사람은 날 떠날지도 몰라.'와
같은 생각으로 본인을 괴롭히게 된다.
나를 움직이는 것이 ‘열정’이라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제 와서 보니 그건 ‘결핍’이었다.
나의 산소 호흡기는 책이었다. 책은 나에게 무중력 상태였다. 그곳에서 나는 안전했다. 책을 읽으며 나는 나를 치유해 나갔다. 책 중독자처럼 매일 책을 읽고, 그것으로도 충족이 되지 않아 온갖 것들을 배우러 다녔다.
나는 김주영이자 전안나였던 나의 역사를 수용한다. 다른 사람에게 끌려다니지 않고 내 결정에 따라 살 것이다. 내 지난 삶을 자본 삼아, 책을 지도 삼아 그렇게 사람들과 함께 살아갈 것이다.
내 이름은 김주영이다. 그리고 전안나이다. 그것이 내가 오늘도 죽지 않고 살아 있는 이유이다. 태어나서, 참 다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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