책장의 위로
조안나 지음 / 지금이책 / 2018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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책과 관련된 책은 언제나 호기심을 자극한다.

과연 어떤 책을 소개할까.

저자는 그 책을 왜 좋아할까.

어떻게 읽었을까.

이런 종류의 책을 읽다보면 고전의 경우 중복되기도 하지만

새로 알게 되는 책들이 더 많다.

저자의 의견에 격하게 공감할 때는 메모해두거나

온라인서점 장바구니에 넣어두었다가

후에 읽어보기도 한다.

[책장의 위로] 역시 그런 의미에서 읽게 되었다.

책을 읽기 전까지는 몰랐는데 읽고 보니

제목에 '위로'라는 감성적인 기능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것이다.

책을 읽기 전에는 '책'에, 읽은 후에는 '위로'에 더 방점이 찍혔다.

 

 

외로움으로 치닫는 깊은 밤.

불면증에 가깝게 잠이 오지 않은 날이면 저자는

잠자기를 포기하고 '책'을 집어들어 읽고 블로그에 글을 남긴다.

청춘 시절 대부분을 책으로 보내고,

현재는 책을 편집하는 일을 하면서도

여전히 일상의 빈틈을 책으로 메꾸고 있다.

 

 

01 사람은 떠나도 책은 남는다

02 좋아서 하는 일도 힘들 때가 있다

03 잊고 싶은 기억은 꼭 밤에 떠오른다

04 읽다 보면 혼자가 아닌 날이 많다

05 피곤한 날에도 읽다 잠든다

06 마음 속에 나만의 도서관을 만든다

 

책은 저자의 소소한 일상에 스며든 책들에 대한 단상을

6개의 주제로 나눠 소개한다.

 

 

'잠 못 드는 밤을 위한 독서처방전'이라는 뒷표지의 소개 문구처럼

각 상황에 읽으면 좋은 책을 소개하는 형식을 취하고 있다.

예를 들면,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나를 외롭게 할 때는

한스 에리히 노사크의 《늦어도 11월에는》을 권하는 형식이다.

저자의 일상, 책의 간단한 스토리 라인과 책을 통해 얻는 위로,

그렇게 다시 돌아온 현실에서의 의미,

때론 소개한 책과 비교되거나 대조가 되는 책들을

복합적으로 소개하면서 읽는 독자를 더 바쁘게 만들기도 한다.

이렇게 책과 책 속을 종횡무진 마구 휘젓고 다니며

책을 향유하는 저자를 좇아가다 보면 독자는 관찰자가 아닌

동행자가 되어 책 속을 여행하게 된다. 

 

이런 책 속으로의 완벽한 여행을 위한

특별한 장치도 마련되어 있다.

바로 책과 함께 소개되는 '심야의 BGM'이다.

책과 함께 들으면 좋을 곡을 각 꼭지마다

추천해놓고 있는 것이다.

 

《늦어도 11월에는》과 함께 들으면 좋을 곡으로

저자는 Feist의 <Inside And Out>을 추천한다.

이 음악을 배경으로 깔아놓고

본격적으로 저자가 안내하는 세상 속으로 들어간다.

 

"이렇게 만사가 귀찮은 날에는 통속적이면서 시시하지 않은, 사랑만으로는 생활이 불가능하다는 것을 새삼 느끼게 해주는 소설 《늦어도 11월에는》을 읽는다. 처음 만난 남자가 내뱉은 미친 소리 한마디에 남편과 자식까지 버리고 나간 한 여자의 이야기를 탐독하다 보면 서서히 일상을 껴안게 된다.

-중략-

플로베르의 《마담 보바리》보다 우아한 불륜 이야기가 《늦어도 11월에는》에서 펼쳐진다. 신기하게도 읽을 때마다 새로운 책이다. 몇 번을 다시 읽어도 마치 처음 읽는 것처럼 생경하다. 그렇기  때문에 이 소설은 빌려서 급하게 읽으면 그 맛을 제대로 느낄 수 없다. 지금 만나고 있는 사람이 나를 더 외롭게 하거나 특별하다 믿었던 내 사랑이 평범해지는 것 같아 슬픔 밤, 머리맡에 두고 비스듬히 누워 읽으면 내 사랑을 객관적으로 바라볼 수 있게 된다.

-중략-

아직 내가 도달하지 않은 많은 함정이 삶에 남아 있음을, 이 소설을 읽으며 체감한다. 우리는 이토록 불행해 하면서 왜 이렇게 끊임없이 행복에 대해 이야기할까. 행복이 무엇인지 아는 사람은 아무도 없기 때문이 아닐까." ---p19~21

 

 

각 꼭지의 말미에는 책과 경험을 통해서 얻은

해당 글 주제에 대한 지혜를 살짝 풀어놓는다.

함께 실린 풍경을 담은 사진이 더 긴 여운을 남긴다.

 

백프로 공감가는 제목인

3장 '잊고 싶은 기억은 꼭 밤에 떠오른다'에서는

수없이 만들어내는 밤의 몽상들을

다스릴 수 있는 책들이 소개된다.

사랑에 대한 감정이 무뎌진 날.

첫사랑이 아니라 첫사랑의 뜨거운 감정이 그리울 때는

에단 호크의 《이토록 뜨거운 순간》을 읽어보라고 권한다.

심야의 BGM은 A Great Big World & Christina Aguilera의 <Say something>으로.

 

 

"첫사랑의 추억이 희미해질 때, 하루 종일 그 사람을 생각하며 상상 진동을 느낄 정도로 안절부절 휴대폰이 울리기만을 바라던, 그 설레던 감정이 도통 기억나지 앟을 때, 배우이자 감독인 에단 호크의 《이토록 뜨거운 순간》을 읽는다. '빌어먹을, 차가운 심장(허수경 시인이 2011년 발표한 시집 제목)'이 그제야 반응을 한다.

'아, 그래, 나도 그랬던 적이 있었지....'

이런 회상은 밤이 아닌 낮에 하면 청승이 되어버리니 서둘러 소설 속에 나를 맡겨본다. 에단 호크의 분신이자 이 소설의 주인공 윌리엄은 '남 흉내내기'라는 특기를 살려 연기도 하고 연애도 하는, 한마디로 '몹쓸 녀석'이다. 진지함이라고는 눈곱만큼도 찾아볼 수 없는 이 녀석에게 어느 날 우연히 가수지망생 사라가 뛰어들어온다.

사라를 운명적인 짝으로 생각한 윌리엄의 감정은 철저히 독립적인 생활을 꿈꾸는 그녀로 인해 서서히 광기로 변해간다. 몇 초 간격으로 음성메시지를 남기고, 집 앞에 찾아가서 소리를 지르고, 물건을 집어 던지고 급기야 자해도 해보지만 사라의 심장은 더욱더 차가워질 뿐이다.

-중략-

이 소설은 '한 녀석'이 고집불통인 여자를 만나 '한 남자'가 되어가는 과정을 날것 그대로 보여주는 성장소설이다. 아, 정말 미쳐돌아버릴 것 같은 감정이 잘 녹아 있는 책이다.

-중략-

스무 살의 사랑, 그 처절한 울부짖음이 그리울 때면 나는 《이토록 뜨거운 순간》에 간다. (영화로도 나와 있으니 함께 보면 더 좋다.) 내가 조금 더 상처 받기 쉬운 인간이 되었으면 좋겠단 생각이 든다. 오랜만에 옛날 그 번호로 전화를 걸어보고 싶다. 내가 한 번쯤 무너진다고 해서 세상이 무너지는 것은 아니기에." ---p.91~94

 

이 책은 굳이 첫 사랑의 설렘을 다시 느끼고 싶기 보다는

비포 시리즈와 함께 성장하고 나이들어가고 있는

에단 호크의 작품이라는데에서 눈이 번쩍 뜨였다.

비포 시리즈는 감독과 배우들이 머리를 맞대고

대사 하나하나까지 상의해서 결정한다고 하니

그런 감수성이 이 책에도, 영화에도

그대로 투영되지 않았을까 하는 기대감에서였다.

더욱이 풋내 나는 가슴 절절한 첫사랑의 아픔과

성장을 어떻게 표현해냈을 지 에단 호크표 감성이 궁금했다.

책도, 영화도 가장 먼저 찜!

 

이 책을 읽으면서 가장 반가웠던 것은

무라카미 하루키 책이 2권이나 만날 수 있었다는 것이다.

새벽에 홀로  깨어 있고 싶을 때는

《어둠의 저편》을,

열심히 일한 날, 한밤에 술친구가 필요하다면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를 추천해준다.

눈으로 보고 있는 듯한 세밀하고 뛰어난 묘사와

냉랭한 공간의 공기같은 묘한 분위기에 반해서

하루키의 소설을 즐겼지만

하루키 마니아들 중에는 에세이를

더욱 매력적으로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다.

하루키의 책 몇 권을 책장에 꽂아두고 차일피일 미루고 있지만

그럼에도 쌓여있는 책들 맨 위에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를 올려놓을 참이다.

 

 

"이제 곧 출간 예정인 도서의 예상 제목과 부제안을 A4 세 장 분량은 뽑고 가야 성에 찰 것 같은 하루다. 일은 언제나 끝이 없다. 오늘까지 본문 시안을 주기로 한 디자이너는 전화조차 받지 않는다. 다음 생에는 꼭 디자이너로 태어나리라...." --- p134

 

서로 얽히고 얽혀서 일을 하는 직장인들의 피로감,

열일 했지만 결과는 지지부진하고 텅 빈 것 같은 공허함,

아무리 손을 뻗어도 닿을 것 같지 않은 무력감,

그렇게 천근만근인 하루의 끝에서 축이는 맥주 한 잔과

하루키는 잘 어울릴 것 같기도 하다.

 

"오늘처럼 열나게 일한 날엔 꼭 가슴속까지 시원해지는 캔맥주와 함께 하루키의 쓸데없이 보이는 생각 꾸러미, 《그러나 즐겁게 살고 싶다》를 마시다 그대로 잠든다. 다른 안주는 필요 없다. 잠들기 전 속만 부대낄 뿐이다. 그의 에세이는 소설보다 가볍고 천진난만하여 읽는 내내 '아무 생각 없이' 웃을 수 있다. '

-중략-

"아무리 사소한 일이라도 매일 계속하다 보면, 거기에서 자연히 철학이 생겨난다"는 '매일 하는 일'에 대한 확고한 그의 철학은 고스란히 내 일의 철학이 되었다. 탁월한 소설가답게 예민한 관찰력을 발휘해 그 주변 사물에 대한 개똥철학을 도입하는 솜씨가 여간 세련된 게 아니다. 나도따라서 일기를 쓰거나 키보드를 두들겨 아무 기록이나 남기고 싶어진다.

비록 오늘, 기계처럼 일하고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내 지식이 헐값에 팔리지도 못하는 굴욕을 겪었지만, '작지만 확고한 행복(요새는 '소확행'이라고 줄여서 부르기도 한다)' 하나는 건지고 잠든다. 왠지 내일은 '자질구레한 일에 안달복달하지 않고 지나치게 많은 일을 하지도 않고 느긋하게 하루하루를' 보낼 수 있을 것만 같다. ---p.134~137

 

책을 많이 읽었다고 지식을 자랑하거나

책을 편집하는 일을 한다고 예민하거나 까탈스럽지 않은

주위에 흔한 평범한 친구같은 저자는

지나치다 싶을 만큼 솔직하게

수다스럽지 않게 진솔한 마음을 드러낸다.

그래서 소개하는 책이 더 진정성있게 다가온다.

너무 어렵지 않은, 그럼에도 할 말은 똑 부러지게 하는

저자의 책을 읽노라면 언제든 고민을 털어놓고 위로 받을 수 있는

든든한 술친구를 얻은 기분이다.

밤새 떠들어도 이야깃거리가 떨어지지 않는 그런 소울 메이트.

 

정서적으로 공감하는 부분이 많아서 그런지

꽤 많은 읽을 책 리스트가 작성되고 말았다.

그럼 어떠랴.

밤은 계속 될 것이고,

그만큼 길 것을.

채 햇볕을 쬐지 못하고 있는 나의 책들 위로

두껍게 쌓여진 책들은 당분간 그렇게

나의 맥주와 밤과 친구가 될 것이다.

Cheer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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