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 - 미술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 건축 기행
고영애 지음 / 헤이북스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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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 작품보다 아름다운 현대미술관 건축 기행'

[내가 사랑한 세계 현대미술관 60]의 부제이다.

이 책을 받기 전부터 기대에 차 있었다.

미술에 대한 조예가 있는 것은 아니지만

큰 아이가 건축에 관심을 가지기 시작하니

나도 자연스럽게 시선이 가기 시작했던 것이다.  

그리고 직간접적으로 경험하게 되면서

그 예술성에 감탄하게 되었다.

그런 미술관이 무려 60곳이라니!

직접 가보면 너무도 좋겠지만 그럴 수 없다면

책으로나마 즐기고 싶었는데 한 곳에서 그렇게 많은

건축물을 볼 수 있다니 기대되고, 흥분되었던 것이다.

 

 

책을 받고는 더더욱 놀랐다.

도록을 능가하는 500페이지의 엄청난 두께에.

그러나 빼곡히 채워나간 저자의 글을 보면

이 두께로도 미처 다 하지 못한 말들이 있을 듯 싶었다.

아껴 읽지 않아도 당분간은 눈호강을 제대로 할 수 있을 듯했다.

그러나 다량의 사진과 시원스런 편집으로

페이지는 생각보다 빨리 넘어갔다.

12개국 60곳의 미술관을 하루에 구경하고 말았지만

정말 현장에 있는 듯 가슴 두근거리기도 하고,

날 좋은날 미술관 쉼터에 앉아 마치 명상이라도 하듯

한 동안 페이지를 넘기지 못하고 멈춰있기도 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공간을 직접 발로 다니며

사진이라는 또다른 예술로 담고, 표현할 수 있는

저자가 부럽기 그지 없었다.

 

 

자주는 아니지만 미술관이나 박물관 전시관을 방문할 때면

어떤 공간이냐에 따라 마음가짐이 달라졌었다.

관람객을 어떻게 대하느냐에 따라

그 공간에 존재하는 작품이 다르게 느껴지고,

작품에 대한 감정이나 몰입감도 달라지게 된다.

으리으리하고 고급스러운 것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관람객을 빨아들일 수 있는

그 공간에서 존중받고 있다는 느낌을 들 때

작품과 관람객은 비로소 소통할 수 있을 것이다.

이 책에 실린 60 곳의 미술관은 그런 공간이다.

 

 

아쉽게도 우리나라의 미술관은 '삼성미술관 리움'이 유일하게 실렸다.

그나마도 이전에 읽었던 박물관 건축책에서는 없었는데

여기서는 한 곳이라도 만날 수 있어 조금은 아쉬움을 달랠 수 있었다.

그렇다고 저자가 끼워넣기 식으로 우리나라 미술관을 넣은 것은 아니다.

삼성미술관 리움은 60번째로 책의 가장 마지막에 실려 있는데

그야말로 세계적으로 손꼽히는 미술관의 순례를

모두 마치고 만났을 때에도

결코 디자인이나 구성이 다른 미술관에 뒤지지 않았다.

그래서 한 곳이나마 소개가 되어 안도를 했다.

'세 건축가마다의 개성이 담긴 세계 유일의 색다른 미술관'이라는

부제가 붙어 있는데

말그대로 세계적인 건축가 세 사람이 하나씩 전시장을

디자인한 그야말로 건축물의 전시장이기도 한 것이다.

 

"리움 미술관 안에는 고미술관과 현대미술관과 아동교육문화센터 등 3개의 큰 전시 공간이 있고, 각 공간은 세계적으로 유명한 3명의 건축가들에게 의뢰해 저마다 다른 독특한 공간으로 이루어져 있다. 고미술관은 마리오 보타가 디자인을 맡았고 현대미술관은 장 누벨이 디자인하였다. 아동교육문화센터와 각각의 미술관 흐름을 연결하는 작업은 렘 쿨하스의 손을 거쳤다. 세 건축가마다의 개성이 담긴 독립된 세 곳의 전시장은 아마도 세계 유일이며 색다른 미술관이리라." ---p.482

 

 

건물은 훌륭하고 멋지다.

그럼에도 아쉬운 것은 59개의 미술관을 보면서 느꼈던

정체성이나 개성은 조금 부족해보였다.

작은 마을, 섬, 폐쇄된 발전소 등 사연이 있는 곳도 있지만

그 지역의 자연 경관이나 특징을 살려 조화를 이뤄내고

개성을 만들어낸 미술관들에서 느껴지는 온기가 느껴지지 않는 것이다.

반듯하게 정리된 도시의 느낌이랄까.

물론 소개된 다른 미술관들도 비슷한 경우도 많았다.

그럼에도 유일하게 소개된 곳이기에

아쉬운 마음이 더 컸던 것 같다.

 

 

저자가 이 책을 기획할 때 가장 먼저 마음 속에 떠올렸던 미술관은

독일 노이스의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이었다고 한다.

나 역시 이름을 익히 들어 알고 있는 유명 미술관보다도

책을 읽으면서, 읽은 후에도 가장 기억에 남는 미술관이

바로 이 미술관이었다.

 

 

"아무런 푯말도, 작품 설명도, 작가 이름도, 인공조명도, 건물 안을 지키는 사람조차도 없는 자유로운 감상이 가능하고 느림의 미학을 체험할 수 있는 미술관이다. 인젤 홈브로이히 미술관은 2004년 미술 전문지 <아트 뉴스>가 선정한 '세계의 숨겨진 미술관 톱 10'에 오를 만큼 일반에게는 덜 알려졌지만 꼭 가봐야할 미술관이다. -중략-

아무런 장식 없이 벽돌만을 사용한 소박한 건물들은 자연을 벗삼아 마음에 평정을 주었다. 다듬어지지 않은 길가의 들꽃과 수풀로 무성한 자연과 소박한 파벽돌의 갤러리는 어쩜 그렇게 잘 어울리는지 환상의 조화였다. 야생의 마른 수풀과 늪지 사이로 듬성듬성 서 있는 16개의 미술관들은 숲속에 감추어져 전혀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고 드넓은 숲속에 숨어 있는 다음 갤러리를 알려주는 조그마한 팻말만이 유일하게 있을 뿐이었다. 기존의 미술관 개념을 벗어나 미술관이 갖는 문턱을 헐어버렸다. 미술품에 대한 사전 지식이나 이해도가 전혀 필요 없이 자신만의 감각미를 체험케 하는 것이야말로 이 미술관이 갖고 있는 독특한 매력이었다. 작품에 붙어 있는 캡션을 해독하려는 어떤 수고도 필요치 않은 홀가분한 공간들이 감상자를 기다리고 있다. 고정된 이미지를 헐어버린 자유롭게 나열된 작품들 또한 마음을 편안하게 달래주었다. 그곳은 에코의 공간이며 치유의 공간이었다." ---p.292

 

 

미술관을 세울 때 여기있음을 요란스럽게 홍보하는 것과는 달리

진정 예술과 조우하고 즐기고 감상할 수 있도록

배려하는 마음이 실로 놀랍지 않을 수 없었다.

직접 가보지는 못했지만 마음 속에 깊이 남는 공간이면서

기회가 닿는다면 반드시 가보고 싶은 곳이기도 했다.

 

다음으로 인상 깊었던 미술관은 스위스의 '샤우라거 미술관'이다.

이 미술관은 1년에 5~9월까지 전시가 진행되긴 하지만

주된 역할은 관람이 아니라 많은 컬렉션을

최상의 컨디션으로 보관하는 수장고의 역할이라고 한다.

1933년부터 150여 명의 예술가의 작품을 소장하고 있다.

이 작품들은 원래는 바젤 미술관과 현대미술관에 전시되어 있었는데

99퍼센트의 미공개 작품들을 보여주기에는 턱없이 부족하여

이를 보강하기 위해 세운 대안 미술관이 바로 이 미술관이다.

 

 

건물의 형태도 독특하다.

거친 흙으로 뒤범벅된 무채색의 직사각 박스형으로

편안하고 자연스러움이 돋보이며, 측면의 종이 박스를 뜯어놓은 듯

잘린 외관은 자갈을 섞은 흙 재료와 잘 부합하는데

이 노출된 자갈은 내부의 온도 조절과도 밀접한 관계가 있다고 한다.

이 흙과 자갈은 이 건물을 지을 때 파낸 것이라고 한다.

 

 

"작품을 모아놓은 방식도 독특하였다. 건축가는 평면의 공간 안에 작품 전시와 동시에 보관을 위한 수장고의 효과도 살리기 위해 최대한 노력하였다. 수장고 문은 손잡이가 없이 옆으로 밀어제치면 열린다. 온몸으로 문을 열면 어떤 작품은 벽에 걸려 있고, 어떤 작품은 바닥에 자연스레 펴놓은 공간이 기다리고 있었다. 소장 작가의 드로잉은 판매대 위에 올려져 있었고 작품들은 창고처럼 거대한 벽에 기대어놓거나 걸거나, 바닥에 뉘어놓아 수직 및 수평적 평면 위에서 작품 전체를 한눈에 볼 수 있도록 전시하였고 보관하였다. -중략-

보관이나 설치가 까다운 현대미술 작품을 최적의 상태로 보관하면서 동시에 관람도 할 수 있다는 장점은 세계적인 명소로 거듭나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었다. 뿐만 아니라 이런 혁신적인 미술관을 베른 남부의 물류 창고 단지에 만듦으로써 비용도 절약하고 문화 소외 지역에 활기를 불어넣어준 셈이다. 고요하며 정적인 샤우라거는 기대 이상의 기쁨을 주었던 곳이었다. ---p.359~362

 

책에는 일본의 미술관이 꽤 많은 장수를 차지하고 있다.

그 숫자의 차이만큼 예술에 대한 인식도 다른 것 같아 씁쓸하다.

세계적으로 활약하는 건축가의 수만 보아도

미술관의 수가 많은 것이 이상할 것이 없다는 생각도 든다.

아무래도 세계적으로 가장 유명한 안도 다다오 작품이 많지만

그럼에도 각기 다른 개성으로 세워진 미술관들은

저마다의 특색을 자랑한다.

 

 

산업폐기물이 불법 매립되고 낙후되고 버려졌던 섬,

테시마에 세워진 '테시마 미술관'.

이 미술관은 2010년 세토우치 국제예술제를 개최하면서 세워지게 되었고,

이를 계기로 이 테시마 섬은 예술의 섬으로 새롭게 거듭나게 되었다고 한다.

'침묵과 빛으로 이루어진 아름다운 시적공간'이라는

부제가 쉽게 이해되지 않았는데 저자의 생생한 경험은

마치 내가 그 공간에 있는 것과 같은 황홀함을 안겨주었다.

 

"멀리서 바라본 테시마 미술관은 마치 새하얀 우주선을 연상시켰다. 미술관 입구로 곧장 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테시마 섬으로 감싸고 있는 세토내해의 아름다운 풍경을 볼 수 있도록 산책로를 지나야만 미술관으로 입장할 수 있었다. 일본 건축가다운 배려였다. -중략-

반타원형의 좁고 낮은 문으로 조심스레 머리를 조아리며 안으로 들어서는 순간 침묵과 정적이 휘감았다. 관람객들은 자유로이 누워 있거나 앉아서 그 공간을 누리고 있었다. 순간 무의식적으로 나도 자연스레 따라 누웠다. 제일 먼저 시야에 들어온 것은 두 개의 뻥 뚫린 공간이었다. -중략-

물방울 모양을 모티프한 기둥 없는 쉘 구조의 철근 콘크리트 건축임을 내부 공간에서 알 수 있었다. 콘크리트 바닥에 여기저기 흩어진 물방울들은 신기하게도 한곳으로 모여들고 있었다. 하루 종일 콘크린트 바닥에서 물이 솟아오르고, 흩뿌려진 수많은 물방울들은 중력에 의해 햇살 드는 바닥 한곳으로 모여드는 광경이야말로 그 어떤 위대한 예술보다 장엄하였다. 바람과 햇살, 하늘과 숲, 물방울의 흐름, 이 모든 현상들은 부드러운 솜사탕처럼 달콤하면서도 잔잔하게 내가슴에 스며들었다.

잠시 후 잔잔했던 그 파장은 눈덩이처럼 커져 벅차오른 감정을 누를 길 없었다. 테시마 미술관의 나이토 레이 작품 <물방울>은 나뭇잎사귀에 무심히 얹힌 물방울이 아닌 인간의 창조적 결정체였다. 테시마 미술관은 오로지 물방울을 위한 공간이었다. ---p.453~455

 

 

이렇게 숨가쁘면서도 황홀한 미술관 기행은 

삼성미술관 리움을 끝으로 마무리된다.

우리나라에서도 이제 전국 곳곳에

개성있는 미술관을 비롯, 박물관, 문학관같은 시설들이

들어서고 있는 것 같다.

어느 새 명소가 된 곳도 심심치 않게 있다.

다만 단순히 관광객이나 관람객을 유치하기 위한 곳이 아니라

진정 예술을 느끼고, 즐길 수 있는

영혼이 있는 공간이었으면 하는 바람이다.

그런 곳이 많아진다면 이 두꺼운 책에 없다한들

직접 두 발로 가서 느끼며 행복해할 수 있을 것 같다.

 

그러고보니 리움미술관도 아직 가보지 못했다.

우선 여기부터 시작해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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