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 그림책이 건네는 다정한 위로
최혜진 지음 / 북라이프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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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렇게 마음을 울리는 책을 읽고 나면 한동안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

곰곰히 생각의 여운을 느끼며 아래로 아래로 침참해들어가게 된다.

그림책을 좋아하기 시작한 것은 아이들 때문이었다.

아이들이 아니었으면 그림책을 가까이 할 기회가 있었을까.

아이가 태어나고, 눈높이를 아이의 시선으로 맞추면서

아이에게 더 좋은 것, 더 재미있는 것을 느끼게 해주고 싶어

당시 막 생기기 시작했던 그림책 대여프로그램을 신청했다.

큰 아이 6살, 둘째 4살에 맞는 엄선한 그림책을 매주 4권씩 받아봤다.

그리고는 아이들보다 내가 그림책에 폭 빠져버렸다.

그때 접한 그림책은 내가 어렸을 때 읽었던 책이 아니었다.

옛날이야기나 교훈을 주기 위한 조잡하고 유치한 수준의 책일 것이라고

생각했던 나의 편견을 산산이 깨주는 수준높은 책들이 정말 많았다.

막 성장의 토대를 갖추고 발전하기 시작할 무렵이어서 그런지

두드러진 한국 작가 몇몇의 작품 외에는

대다수가 외국 작가의 작품들이었지만

그래서 독자의 눈높이는 한껏 높아지게 되었고

지금의 눈부신 성장의 동력이 되지 않았을까 싶다.

그이후 우리집 책장에도 한국 그림책 작가들의 책이 하나둘 채워지기 시작했었다.

 

그렇게 그림책에 입문하기 시작하여

아이들의 성장과 더불어 나 역시 그림책을 읽으며 함께 성장했다.

그림책을 통해서 위로를 받고, 해소도 하고,

행복감도 느끼고 순수한 즐거움도 느꼈다.

아이들은 아이들대도 자신들이 좋아하는 그림책을

수백번이고 반복해서 읽으며 그렇게 자신들만의 세계를 만들어갔다.

아직도 그때 읽던 그림책들이 책장 하나를 빼곡히 채우고 있다.

이사를 갈 때도 절대 못버리게 해서

남겨둘 책과 정리할 책의 선별을 거듭해가며 

겨우 책장 하나로 줄여 놓은 것이다.

실은 나도 마찬가지이다.

아이들과 함께 읽던 책은 아이들 뿐만 아니라 내게도

아이들과 함께 만들었던 추억의 공간이 된 것이다.

당시 블로그에 그림책에 대한 리뷰를 써서 올렸는데

지금도 가끔씩 그때를 떠올리며 읽어보곤 한다.

일을 핑계로 양껏 못올렸었는데 지금 생각하면

좀더 부지런히 많이 썼으면 좋았을 걸 하는 아쉬움이 든다.

 

 

아이들이 크면서 그렇게 좋아하던 그림책과 조금씩 멀어지면서

잠시 잊고 있었지만 그럼에도 마음 한구석에는

언젠가는 찾아갈 고향처럼 그림책에 대한 미련이 늘 남아있다.

그래서 그림책과 관련된 책이 나오면 무조건 읽어보는데

[그림책에 마음을 묻다] 역시 그런 이유로 읽기 시작했다.

나 역시 그림책을 통한 치유의 경험이 있었던 터라

힘든 어느날 갑자기 훅 작가의 인생에 들어왔다는

그림책의 힘에 깊이 공감할 수 있었다.

 

그림책이 마음을 울릴 수 있는 것은

'그림'과 '책'이 제 역할에 충실했을 때이다.

그림이나 글이 서로 엊박자가 나거나 균열이 있을 때는

아무리 좋은 메시지가 담겨있어도

마음으로부터의 공명이 생기지 않는다.

어른의 시각으로 보거나

목적을 가지고 억지로 상황을 만들거나

교훈이 너무 노골적으로 눈에 보일 때

정해진 결론으로 몰고갈 때

그 책은 어떤 감흥도 일으키지 못한다.

 

 

이 책에 소개된 그림책은 적어도 그런 면에서는 걱정할 것이 없다.

책 한권 한권이 고민의 고민을 거듭하며

고르고 고른 저자의 정성이 물씬 느껴지는 그림책들이기 때문이다.

저자가 전해주고 싶은 메시지는 물론

이를 전달하고 있는 그림 역시 열 마디의 말을 아우르는

강력한 힘을 가지고 있다.

이 책에 소개된 21권 모두를 당장 읽어보고 싶을 정도로

정말 수준높은 그림책들이다.

중간중간 실려있는 그림책 작가에 대한 소개를 보면

저자가 그림책을 얼마나 섬세하고 세심하게 골랐는지를 느낄 수 있다.

철학적인 사유를 담아내고 있는 작가들의 면면은

그림책 대상의 분류가 얼마나 무의미한 것인지를 알 수 있게 된다.

 

 

 저자는 이런 그림책에 정말 가슴을 파고드는 글을 얹는다.

책에 소개된 고민은 실은 특정인의 문제가 아닐 수 있다.

누구나 고민해봤을 법한 복합적인 고민 덩어리들을

하나하나 풀어헤쳐 놓은 것일뿐.

처음에는 남의 고민인줄 알았는데 

책장을 넘길수록 저자의 마음을 읽어내려가는 위로를 들을수록

가슴 속 깊이 묻어두고, 꽁꽁 숨겨두었던

바로 내 얘기였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그래서 그림책을 보면 한숨이 나오고 상황에 몰입이 되고

그리고 해소와 위안이 되는 것이다.

그때서야 비로소 내 얘기였구나, 나였구나 하고 깨닫게 되는 것이다.

 

 

전문 심리상담사는 아니라고 저자는 손사래를 치지만

그렇게 들어주는 것만으로도, 알아주는 것만으로도

이해해주는 것만으로도 치유가 되는 것이다.

 

오랜 시간 에디터로 일을 했던

글로 먹고 살 수 있겠다는 학창시절 교수님의 예언처럼

깔끔하고 정갈하면서도 폐부를 찌르는 저자의 글은

그렇게 그림과 함께 든든한 위로가 된다.

 

이 책을 읽는내내 생각나는 사람이 있었다.

한 사람의 특별한 사유가 아니라

이 시대 여성이라면 겪고 있고, 겪었을

그런 힘겨운 삶의 무게에 힘들다는 말도 못하고 있는

그 사람에게 이 책이

잠시나마 숨을 쉴 수 있는 공간이 되지 않을까 하는 생각에서였다.

기회가 닿으면 살며서 건네봐야겠다.

 

조금은 가벼워진 마음으로

나는 저자의 또다른 책을 검색하러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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