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사람 표류기 - 주강현 박사가 한 권으로 풀어 쓴 우리 대표 표류기
주강현 지음, 원혜영 그림 / 나무를심는사람들 / 2013년 10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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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조선 사람 표류기] 이 책의 제목만 들었을 때는 '표류기'라는 단어가 약간 낯설었었다. 기껏해야 학창 시절 달달 외웠던 '하멜 표류기' 정도?. 조선 시대라면 중국을 통한 길 외에는 배가 유일한 바깥 과의 교통 수단이었으니 '표류'는 심심치 않게 일어 났을 것이다. 지금처럼 배의 성능이 좋지 않았을 것이고, 비상 사태에 대비할 수 있는 장치도 부족했을테니 말이다. 그러나 대부분은 목숨을 잃었을 것이고 어찌 살아 돌아왔다고 해도 글을 몰라 기록을 남길 재간이 없다면 그 경험은 허공으로 사라지고 말았을 것이다.

 
이렇게 많은 경우의 수를  뚫고 살아남은 '표류기'가 바로 이 책에 실려 있는 네 편의 이야기다. 처음에는 해외로의 여행이 어려웠던 그 시절 다른 문물을 접한 신기한 경험쯤으로 여기고 이 책을 펼쳐 들었다. 그러나 '항해기'와 '표류기'의 근본적인 차이를 머리말부터 느끼기 시작해서 네 편의 표류기를 모두 읽은 후에는 숭고하고 겸허한 마음마저 들게 되었다. '표류'는 의지와는 전혀 상관없이 망망대해에서 배 한 조각에 목숨을 의지할 수 밖에 없는 극한의 상황이 갑작스럽게 시작한다는 점에서 '항해'와는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 그야말로 목숨을 내건 사투의 기록인 것이다.
 
 
처음에는 조선 사람의 눈으로 본 다른 문물이 어떻게 보였을까 어떤 경로로 도착했는 지 등의 생소한 시각이 궁금해서 이 책을 읽게 되었는데 읽다 보니 극한 상황에서의 인간의 모습으로 초점이 맞춰지게 된다. 생각만해도 끔찍한 환경에 놓여진 사람들의 공포가 그대로 느껴지는데, 그런 극한의 위기 속에서 힘을 발하고 살아돌아올 수 있는 해주는 것은 결국 살고자 하는 강인한 '의지'라는 것을 다시금 느끼게 된다.
 
망망대해를 탈출해 육지에 도달해도 끝이 아니다. 무자비한 해적의 위협을 받고 겨우 버틸 수 있었던 식량마저 빼앗기는가 하면, 국가의 보호를 받기 어려웠기에 오로지 스스로 조선 사람임을 증명해가면서 도움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상황이 연출될 때는 지금과 같은 시스템이 없는 것이 참 답답하기까지 했다.
 
물론, 조선 사람임이 증명된 후에는 조선과 교류가 있는 나라에서는 풍성한 대접과 함께 안전 귀국을 도와주는 것을 보면 지금과는 사뭇 다른 인간적인 느낌이지만, 그나마도 벼슬에 있지 않으면 그 비용도 고스란히 스스로가 감당해야 하니 고향에 돌아왔다고 해서 마냥 좋아라만은 할 수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좀처럼 경험할 수 없는 극한의 경험들은 분명 그들에게 이전 까지와는 다른 삶의 철학을 안겨 주지 않았을까 싶다.
 
책은 중국 역사상 3대 기행문의 하나로 꼽힐 정도의 명나라 당시 강남의 모습을 세세하게 기록한 최부의 <표해록>과 지금의 베트남인 안남국을 다녀온 김대황의 <표해일록>, 그리고 지금은 일본에 속해 있는 섬 <유구국>을 다녀온 장한철의 <표해록>, 마지막으로는 당시 스페인이 지배하던 여송국과 당시 포르투칼 사람들이 살았던 마카오까지 다녀온 홍어 장사꾼 문순득의 이야기가 실린 <표해시말>의 내용으로 구성되어 있다.
 
 
표류는 시작하면서부터 죽음을 각오해야 할 정도의 위기로 시작되지만 위기의 순간을 넘긴 후에는 명나라의 보호를 받으며 다른 문물을 접한 것을 꼼꼼하게 기록으로 남길 여유가 있는 가하면(최부), 끝까지 표류의 표류를 거듭하며 결국 수많은 동료를 잃는 아픔을 겪어야 하는 경우도 있고(장한철), 타고난 장사꾼의 기질을 발휘해 돌아갈 뱃삵을 스스로 벌기도 하는(문순득) 등 표류 이후의 과정도 다양하게 펼쳐진다. 그래서 각 표류기는 새롭게 다가오며 각기 다른 여운을 남겨준다.
 
 
 
이렇 듯 다양한 모습으로 펼쳐지는 '표류'가 과연 무엇인지, 그에 대한 '정의'를 각 표류기의 제목은 말해주고 있다.
 
최부의 중국 표류기 "표류는 자신과의 싸움입니다."
김대황의 안남국 표류기 "표류는 갑자기 떠나는 여행입니다"
장한철의 유구국 표류기 "표류는 가장 흥미진진한 모험입니다"
문순득의 여송국 표류기 "표류는 새로운 세상입니다"
 
각자가 겪은 표류의 성격대로 정의하고 있지만 이 모두가 결국은 '표류'의 모습일 것이다.  
 
책을 읽다 보니 '표류'는 인생과도 같다는 생각이 든다. 인생 역시 어디로 어떻게 흘러가는 지 가끔은 알 수 없을 때가 있고, 자신도 모르는 곳으로 데려다 주기도 하기 때문이다. 인생의 '표류'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바로 살아서 돌아가고자 하는 강한 '의지'일 것이다. 이 책은 그 과정을 '바다'라는 현실적이면서도 극단적인 배경을 통해서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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