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처럼 질문하라 - 합리적인 답을 이끌어내는 통섭의 인문학
크리스토퍼 디카를로 지음, 김정희 옮김 / 지식너머 / 2013년 3월
평점 :
품절


작년 이맘 때 쯤 책을 읽는 방법과 토론에 대해서 한참 열심히 배웠었다. 근 일 년 가까이를 그 동안의 시각과는 다른 각도로 세상을 보는 방법을 배우느라 고전하고 있었던 것이다. 토론이라는 것이 하루 아침에 되는 것은 아니기에 열심히 한다고는 했지만 여전히 제자리 걸음인 것 같고, 때로는 뒷걸음을 치는 것 같기도 해서 답답하기만 했다. 지금은 바쁜 일 때문에 토론과는 잠시 멀어져 있지만 그 때 배운 사물과 현상을 바라보고 표현하는 방법은 강렬하게 남아서 아직도 나의 생활의 많은 부분에 영향을 미치고 있다. 

 

그 중에서 가장 기억에 남는 것이 바로 '질문'에 관한 것이다. 그 무렵 읽었던 책을 제대로 읽는 방법의 가장 중요한 과정이 바로 '질문'하면서 읽는 것이라는 것이다. 그냥 수동적인 책읽기가 아니라 저자의 의견이나 주장, 혹은 이론에 대한 질문, 그리고 나에게 어떻게 적용할 것인가에 질문과 답을 해가면서 읽을 때 진정한 책읽기가 완성된다는 것이다.

 

생각해보면 우리는 '질문'을 거의 하지 않는다. 예스, 노로 답을 할 수 있는 단답식의 질문이 아니라 왜? 어떻게?와 같은 개방형 질문은 얼마나 하고 있는가. 질문보다는 무조건 입력이 공부의 중요한 시대를 살았던 우리는 질문을 할 필요도, 질문을 하는 방법도 모른 채 살아왔다.

철학이라는 학문을 학교 정규 과정에서 배우지 않는 나라. 사유할 필요도, 질문할 이유도 없었다. 오로지 사실을 누가 더 많이 암기할 수 있느냐가 중요했다.

 

세월이 많이 흘러간 지금....학교의 모습은 어떨까? '질문'이 자연스럽게 나오는 환경이 되었을까? 교과과정이 바뀌고, 서술 논술형 시험의 비중이 높아진다고 해도 여전히...아직 우리 아이들이 자라는 교실에서는 삶의 관철을 위한 '질문'은 여전히 부재 상태이다.

초등학교 때부터 철학을 배우며, 대학을 가기 위한 시험에서 철학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은 프랑스와 대학에 진학해서도 교양으로 듣는 것이 전부인 우리나라의 학생들의 사유의 폭,,,,다를 수 밖에 없지 않을까.

 

진정한 '나'를 알 지 못하면 행복할 수 없다. 진정한 '나'를 알아야 타인도 알 수 있고, 나와 연관된 수많은 '관계'도 이해할 수 있으며, 그 관계 속에서 살아가는 의미도 찾을 수 있는 것이다.

토론을 하다 보면 결국 '철학'의 영역까지 들어가는 경우가 많다. 현상을 바라보는 '관점'의 차이를 정당화 시키고 타당한 근거로 제시해야 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토론을 하는 동안에 철학, 인문학에 대한 책과 강좌를 틈틈이 읽고 배워야 했으며, 또한 상대의 논리적인 오류를 밝히며, 동시에 내 주장을 견고히 하기 위해서는 논리의 오류와 같은 논리에 대한 공부도 별도로 해야 했다.

 

이 책 [철학자처럼 질문하라]에 관심을 갖게 된 것 역시 이러한 나의 최근 관심사와 무관하지 않다. 어떻게 하면 질문을 잘 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에 대한 최선의 답일 것 같고, 아무리 배워도 어렵기만한 논증의 방법을 다시 한번 제대로 배워보고 싶기도 했기 때문이다.

 

'철학'과 '질문'에 대한 관심으로 이 책을 읽기 시작했지만 사실 생각했던 것보다 더 근본적인 접근을 한다. 책 제목에서 얘기하는 '질문'은 바로 '나'와 '타인'을 근원적으로 탐색할 수 있는 이른바 '빅파이브 질문'이다.

 

1. 내가 알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2. 나는 왜 여기 있는가?

3. 나는 누구(어떤 존재)인가?

4. 나는 어떻게 행동해야 하는가?

5. 나는 앞으로 어떻게 될 것인가?

 

간단해보이지만 이 질문에 대한 답을 통해 우리는 우리에게 작용하는 수많은 보이지 않는 힘에 대해 배우게 된다. 이 간단한 질문에 대한 답을 할 때조차도 얼마나 많은 관계의 영향이 미치는 지에 대한 증거를 하나하나 보여준다. 그리고 왜 그러한 현상들이 발생했는지 빅파이브 질문을 중심으로 분석해서 보여줌으로 나와 타인을 지배하고 있는 생각은 무엇인지를 간파하게 해준다. 이를 간파한다는 것은 곧 상대의 허점과 오류를 쉽게 파악할 수 있다는 것이며, 크고 작은 논쟁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강력한 도구를 갖추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책에서도 지속적으로 얘기하는 것처럼 이것은 방법을 안다고 해서 단 시간 내에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수영 방법을 안다고 해서 수영 선수처럼 수영을 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지속적인 훈련을 해야 만 자유자재로 활용할 수 있는 도구가 될 수 있을 것이다.

 

여느 철학책이나 논리책을 기대하며 '들어가는 글'을 읽었는데 갑자기 솔직하게 답하라며 이 다섯가지 질문을 던지는 것이다. 솔직하게 한다고 했지만 솔직한 지는 자신이 없다. 그 이유가 바로 내가 알게 모르게 심지어 유전자 속에서도 또아리를 틀고 있는 나를 둘러싼 수많은 힘에 의해 좌우되고 있기 때문이다. 타인 역시 마찬가지이다. 타인이 주장하는 바에 논리적인 허점을 찾기 위해서는 이러한 배경을 인지하고 있어야만 하는 것이다. 이 '다섯가지 질문'은 상대의 생각을 지배하고 있는 힘이 무엇인지를 간파할 수 있게 해준다.

 

구성을 살펴보면, 이 빅파이브 질문에 대한 분석을 하기 전에 이러한 분석을 할 수 있는 방법을 먼저 배운다. 즉 논리적인 도구들이다. 논리책에서 기본적으로 다루고 있는 '논증'의 방법들이다.

연역 추론, 귀납 추론, 증거의 방법, 논리적 오류 (임시방편의 오류, 인신공격의 오류, 권위에 호소하는 오류... 등등) 등을 배운다. 이와 관련된 여러 가지 책을 읽어 봤는데 참 헷갈리고, 어렵고 지루하다. 논리적인 도구 자체가 어렵기도 하거니와 딱딱하기 때문에 끝까지 읽으려면 인내심 적잖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책은 정말 재미있는 얘기를 들려주듯 쉽고 가볍게 설명을 해준다. 논리적인 도구들 뿐만 아니라 나머지 내용도 근원적인 내용을 다루는 만큼 추상적이고 표현이 힘든 부분들도 쉽고 명쾌하게 설명을 해주니 책장이 술술 넘어간다. 내가 어렵게 이해했던 그 내용이 맞나 싶을 정도로.

아무리 쉽고 잘 이해되게 설명를 하고 있을 지라도 이 책을 한 번 읽고, 다 이해하기는 어려울 것이다. 두고두고 봐야 하겠지만 앞부분 논증에 대한 기능적인 설명은 당장 써먹을 수 있고 연습하는데 정말 유용하게 활용할 수 있을 듯하다. 특히나 논증 구조를 도식화하는 방법은 글을 읽을 때나 쓸 때도 상당히 효과적으로 사용할 수 있다. 이 책을 다 이해하지 못한다고 하더라도 이 부분만 잘 활용해도 이 책을 읽은 보람은 충분히 얻을 수 있을 것이다.

 

또 한가지 특징은 적절하게 배치된 유머러스한 일러스트이다. 그림이 웃긴 것은 아닌데 진지하게 설명하는 부분에서 진지하게 등장한 일러스트는 그 조합 자체가 유머로 다가오는 것이다. 어렵고 긴장된 뇌를 이완시켜주는 효과가 있다.

 

 

 

이렇게 기본적인 지식을 배운 후에 고대 철학자들의 추론 방식을 배우고, 제 3부부터는 본격적으로 빅파이브 질문에 대한 답에 대한 분석에 들어간다. 개개인 뿐만 아니라, 사회, 국가 간에 분쟁과 논쟁의 원인은 의외로 종교적인 입장의 차이에서 비롯된 경우가 많다. 그로 인해 인종 차별과 같은 왜곡된 현상들도 발생하고, 어떤 경우에서는 이를 자연스럽게 받아들이게 된다.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과학과 종교. 더 많은 관점과 영향이 있겠지만 이 책에서는 이 빅파이브 질문에 이 두가지 관점 즉 '자연주의적 관점의 대답'과 '초자연주의적 관점의 대답' 두 가지 관점을 살펴봄으로써 그에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어떻게 주장을 할 것이며, 이들과의 논쟁에서는 어떻게 대응해야 하는 지에 대해 다룬다.

 

마지막 '결론' 부분에서는 이 빅파이브 질문에 대한 나의 생각과 답변이 어떻게 달라졌는가를 비교해볼 수 있는 공간이 있다. 그러나 쉽게 써내려갈 수가 없다. 저자가 처음에 많이 달라질 것이라고 얘기한 것처럼 내가 영향을 받고 있는 수많은 관계에 자유로울 수 없고, 어느 쪽으로 편향되어 있는 지에 대한 고민을 하다 보니 답하기가 두려워진다.

 

그러나 저자는 이 질문은 나와 타인 뿐만 아니라 우리 직면하고 있는 중요한 문제들 이를테면, 낙태, 인권, 안락사, 언론의 자유, 전쟁 등에 대해서도 적용이 가능하다고 한다.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에 따라 그가 어떤 관점으로 세상을 보고 있는지, 어떤 영향을 받고 있는 지, 우리는 배웠기에 간파할 수 있는 것이다.

 

아직 걸음마 수준도 안되겠지만 무엇을 알아야 하고, 어떤 질문을 해야 하는 지를 깨달은 것만으로 이 책을 읽은 의미는 충분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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