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시선 - 하드보일드 무비랜드
김시선 지음, 이동명 그림 / 자음과모음 / 2020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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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로 자가격리 못지않은 집콕생활이 이어지면서

대형TV의 소비가 급증했다고 한다.

집에서 할 수 있는 가장 손쉬운 활동은

아마도 영화나 TV프로그램, 유튜브 영상을 보는 것일 것이다.

처음에는 어차피 외출도 못하니

그동안 구입해놓고 못봤던 밀린 책을 읽어볼까 했는데

막상 집에 머물다 보면 영상으로 손이 먼저 가게 된다.

그동안 못봤던 영화나 드라마도 많고,

예전에 봤었지만 스토리를 잊어버렸거나

다시 감동을 느껴보고 싶은 영화까지 보다보면

하루 해가 짧기도 하다.

새로운 영화의 개봉도 멈춰버린 요즘

봐야할 영화가 많아서 다시 보기 어려웠던

영화들을 찾아보는 것도 새로운 즐거움이 되었다.

이렇게 나름의 생활패턴을 만들어가고 적응해가고 있는 중이다.

그나저나 밀린 책들은 언제 보려나.

이렇게 영화를 자주 접하게 되니

영화와 관련된 책도 자연스레 찾게 된다.

 

책 읽는 것이 힘들 때는

영화 유튜버들의 영상을 찾아 보면서

영화의 정보를 귀동냥 해본다.

JTBC의 <방구석1열>도 정주행해가며

영화라도 제대로 보려고 또 고군분투한다.

영화를 보기 위해서 책을 읽는 것인지

책을 읽기 위해서 영화를 보는 것인지

혼란이 올 정도로 요즘은 영화와 관련된 책을

틈나는 대로 읽고 있는 중이다.

 

 

[오늘의 시선: 하드보일드 무비랜드]

그런 의미에서 보기시작했던 책이다.

작년에는 망작을 주로 다루기로 유명한 유튜버가

책을 출간해서 냉큼 구입해서 읽었더랬다.

이 책 역시 영화유튜버로 이름을 알리고 있다는

얘기를 듣고 그의 '시선(?)'은 어떨까 궁금해서

읽기 시작했다.

 

그런데 책을 읽으면서 살짝 당황했다.

영화유튜버의 책이라고 해서

영화의 스토리, 감상, 비평을 다루는 줄 알았는데

'영화'라는 소재의 모든 영역을 다 다루고 있는 것이다.

유튜버 활동 뿐만 아니라

시나리오 모니터링, 영화제 심사위원은 물론

넷플릭스, 왓챠 리뷰어, 시사회, 인터뷰, 집필활동, 방송활동 등

영화와 관련된 전방위적 활동을 하다보니

영화계 전반에 걸쳐 하고 싶은 이야기가 많았던 것 같다.

 

그제서야 부제를 다시 보게 되었다.

'반전 없는 것이 반전인 김시선의 영화 생활'

영화 '생활'이었던 것이다.

그렇다고 영화의 주변이야기만 나오는 것은 아니다.

주제와 관련된 영화를 자연스럽게 매칭하면서

영화와 생활을 균형있게 다루고 있다.

영화를 매개로 한 유튜버 '김시선'의

그야말로 영화를 대하는 '시선'을 다룬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당신의 인생 영화는 뭔가요? 이 질문을 다르게 바꾸어 말하면

'영화는 끝났지만 계속 의자에 앉아 일어나지 못한 경험'에 대한 이야기."

--- p.15

 

'1장 영화가 위로가 되는 순간'의

첫 에피소드 '인생 영화를 물으신다면'은 이렇게 시작한다.

'인생 영화'...

선뜻 떠오르지 않는 단어의 답을

저자는 영화가 끝나도 일어나지 못하는 영화라고 정의하고 있다.

내겐 어떤 영화일까?

머리를 아무리 쥐어짜도 떠오르지 않는다.

 

"나도 그런 경험이 있다. 너무 오래되어 기억이 가물가물하지만,

극장에서 이 영화를 보고 한참을 일어나지 못했다.

분명히 영화가 끝나서 엔딩 크레딧이 모두 올라가고

관객들도 하나둘 자리에서 일어나 극장을 떠나는데,

나만 그 자리에 멈춰버린 느낌.

주변에 아무것도 보이지 않고,

내 앞에 놓인 우주에 스크린만 떠 있는 상태.

아마도 내 '인생 영화'를 만난 건 그 순간이었을 것이라 확신한다."

--- p.15

 

그 영화는 바로 이란의 아바스 키아로스타미 감독의

<체리 향기 Ta'm e guilass>(1997)였다.

 

"삶을 즐기려면 죽음이 쫓고 있다는 사실을 기억하라.

그리고 체리 향기를 맡아보라'라는 이란 시인의

시구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었다는 이 영화에

저자가 깊이 빠진 이유는 죽기 위해서 애쓰는

주인공 바디의 모습에서 자신을 발견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내 생각에 바디는 살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체리 향기를 맡았을 테니까.

그리고 나 역시 체리 향기를 맡았다.

삶의 목적을 찾아 부단히 애쓰던 나에게,

스크린에 비친 '영화'라는 존재는

'나만의 체리 향기'였다."

--- p.20

 

<체리 향기>를 보면서 저자는

자신만의 체리 향기를 찾았다고 했는데

난 이 글을 읽으면서 '인생 영화',

나만의 '체리 향기'를 심각하게 고민하게 되었다.

쉽게 떠오르지 않는 생각을 쥐어짜느라

책장은 쉽게 넘어가지 않는다.

 

 

일단 고민거리를 뒤로 미뤄두고

그가 제안하는 이야기들을 따라가보기로 한다.

'내가 영화를 사랑하는 방법',

<4등>(2015)이라는 영화를 통해서

이야기하는 '언제 가장 행복해요?'

'775분짜리 긴 영화를 보는 까닭'.

1장에서만 한 장을 넘기기가 쉽지 않을 정도로

여러 가지 화두를 영화를 통해서 던진다.

 

생소하고 낯선 영화유튜버로서의 일상을 다룬 2장,

어차피 '영화'도 '사람의 일', 영화계 주변의 사람들을 다룬 3장,

영화에 대한 저자의 생각을 본격적으로 다룬

4장 '하드보일드 세계에서 영화로 살아남기',

5장 '시선이 머무르는 곳',

그리고 코로나19이후 앞으로 바뀌게 될

영화 환경을 포함한 우리의 일상을 다룬

6장 '네버 엔딩 영화 생활'로 마무리한다.

 

책을 읽어보니 영화를 둘러싼 세계가 어떻게 돌아가는지

간접체험을 해볼 수 있는 계기가 되기도 했고,

보이지 않는 수많은 과정을 거쳐야

한 편의 영화가 우리의 곁으로 다가오는 지

간접체험을 할 수 있어 좋았다.

 

무엇보다도 수많은 영화를 통해서

찾아낸 삶의 진리를 다시 '영화'라는 매개로

전달해주는 삶을 대하는 그의 자세, 태도는

그가 제안하는 영화만큼이나 깊은 울림과 감동을 준다.

백마디의 말보다 영화 한 장면을 던져주는 것이

더더욱 효과적일 수 있다.

그래서 250페이지 정도의 두껍지 않은 분량임에도

다 읽는데 시간이 꽤 걸렸다.

곱씹어 가며 영화의 장면을 떠올리면서

그렇게 그의 시선이 닿는 곳을 한참동안 머무른다.

 

"영화는 '그게 사실이야' 혹은 '그게 맞아'가 아니라

'내가 어떻게 느꼈는가가'가 더 중요하다.

'얼마나 많이 봤냐'가 아니라 '얼마나 진심인가'가 더 중요하다.

진심이 되면 다른 건 보이지 않는다.

남들이 그 영화를 어떻게 생각하든,

내가 사랑한다는 사실이 더 소중해지니까.

원래 사랑에 빠진 사람은 눈먼 바보가 된다.

영화를 사랑하는 이들은 다 그런 상태에 빠진다."

--- p.164

 

그의 책을 읽어보니

난 영화도 책도 사랑하기에는 아직도 먼 것 같다.

뜯어보고 따져볼 생각만 했지,

진심으로 느껴볼 생각은 미처 해보지 못한 것 같다.

아는 척을 하기 위해서 본 영화도 꽤 된다.

저자의 말대로 이제는 그런 시선을 벗어나서

자유롭게 솔직하게, 그리고 진심으로 느껴보려고 해봐야겠다.

지금부터 진짜 영화와 사랑에 빠져봐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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