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군분투 책 일기
최유리 지음 / 위즈플래닛 / 2017년 1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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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코 뜰 새 없이 바빴던 지난 몇 주였다.

책읽기도 거의 스톱 상태.

퇴근하고 와서는 자기에 바빴고

생각이 필요없는 일들에 나를 맡겨버리곤 했다.

롤러코스터를 탄 듯이 오르락내리락하는 일과가 반복되던

몇 주가 정신없이 지나가고 비로소 숨 한 번 크게 쉴 수 있는

여유가 생긴 주말 아침.

드디어 층층이 쌓여있는 책더미가 눈에 들어왔다.

또다른 숙제같아 이불을 덮어써버린 것도 잠시.

이렇게 다시 피폐한 생활로 돌아갈 수 없다는

생각에 제일 위에 있는 [고군분투 책 일기]를 집어들었다. 

 

 

사실 이 책은 비교적 얇은 편임에도

반쯤 읽다가 미뤄뒀었다.

저자의 치열한 하루하루가 그냥 슥 읽고 말아버리기엔

너무 짠하고 힘겨워보여서

그리고 무엇보다도 저자가 읽은 책에 대한 정보를

하나하나 같이 찾아 보며 읽고 싶어져서

한숨 돌리면 그때 천천히 다시 읽자는 마음으로

읽기를 중단했다.

 

한동안 88만원 세대라는

세대를 지칭하는 우울한 말이 유행을 했었다.

어처구니가 없지만 공감할 수밖에 없어

그래도 나아지겠지 하는 막연한 희망를 가졌었다.

그러나 상황은 더욱 나빠져 3포세대를 지나

이제는 N포세대로....

뭘 포기해야 하는지 헤아릴 수도 없어

미지수로 넣어버려야 하는 상황까지 도달했다.

 

그 한복판에 저자도 있다.

청년실업의 그늘에서는 비켜났지만 여전히

희망이 없는 세대의 일원.

인간 생활의 기본권인 의식주마저도 힘겨워

신음하고 있는 청년이다.

'82년생 김지영'의 무거운 숙제까지 떠안은

그녀는 일찌감치 결혼을 포기했다.

 

그렇게 닥쳐올 많은 문제를 가지치기했지만

그럼에도 눈앞에는 아직도 해결해야 할

풀지못한 숙제들이 산적해있다.

그녀는 SNS에 그 고군분투의 과정을

일기로 옮기기 시작했고 반응이 좋아

연재 제안을 받게 되었다.

개인적인 넋두리 대신 '책'이라는 주제로 버무려

'책 일기' 형식으로 연재를 시작했고,

이를 책으로 묶어 출간하게 된 것이다.

 

"놀랍게도 책과 함께 한 일기를 통해 저는 많이 달라졌습니다. 부모님과의 관계, 결혼에 대한 생각, 일에 대한 생각까지 꼬여있던 질문들을 책 일기를 통해 많은 부분 풀어낼 수 있었습니다. 어쩌다보니 이 책이 고군분투하며 꼬인 삶을 풀어내는 기록으로 남게 되었습니다.

너무 가난하고 찌질한 일기들이라 조금 부끄럽기도 합니다. '삼포세대'라고는 하지만 제 주변에는 학자금 대출 없이 학교를 다녔던 친구들이 훨씬 더 많고 차근차근 결혼을 준비하는 친구들도 많습니다.

시골 출신 도시 가난뱅이의 푸념만 가늑 차 있는 것 같습니다. 신문에서 '삼포세대'라는 말이 나와을 때 참 기뻐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나만 그런 게 아니라는 생각이 어쩐지 힘이 되더라고요. 누군가 함께 고민을 하고 있다는 것만으로도 위로가 될 때가 있습니다. 혼자가 아니라는 생각만으로도 위로가 됩니다. 해결책이 보이지 않아도 외롭지 않다는 것은 큰 위안입니다. 나의 아픔이 오로지 내 탓만은 아니라는 것, 혹은 나의 아픔이 오로지 혼자만의 아픔은 아니라는 것을 책을 통해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가득한 넋두리일지라도, 이 작은 책이 누군가에게 작은 위로가 된다면 무척 기쁠 것 같습니다."

--- <머리말 中>

 

 

책 일기라는 개인적인 일상을 표현하는 공간이다 보니

책의 종류는 저자의 관심사에 집중되어 있다.

삼포 세대, 베이비붐을 다룬 성석제의 <투명인간>,

힘내라는 말에 지친 <미움받을 용기>,

공허한 '할 수 있다'는 말의 위험성 <피로사회>,

왜 대학에 가야하는가, 왜 공부를 해야하는 가에 대한 물음

<우리는 차별에 찬성합니다>, <우리는 왜 공부할수록 가난해지는가>,

결혼과 출산의 포기 선언 <인구쇼크>, <5년만의 신혼여행>,

그리하여 혼자 살기의 선포

<개인주의자 선언>, <혼자 산다는 것에 대하여>,

이외에 가족간의 관계, 직장에서의 어려움,

서울살이의 고달픔과 관련된 책들을 읽고

치열하게 글로 옮겼다.

 

책 목록만 봐도 저자의 현실과 고민이 고스란히 드러난다.

그중에서 찾은 보물같은 책.

소설가 장강명의 <5년만의 신혼여행>.

사실 소설보다는 가수 요조와 함께 진행하고 있는

'책, 이게 뭐라고'라는 팟캐스트 방송을 통해서

먼저 알게 된 작가다.

 

 

소설 잘 쓰기로는 이미 정평이 나 있는 작가라는데,

방송에서는 어눌한 듯하면서도

조곤조곤 핵심을 찌르기도 하고

순수한 질문으로 본질을 드러내게 하는

매력적인 진행자이기도 해서 호감이 갔었다.

신문사 기자 출신이고 아내 바보라고 느껴질 만큼

지금도 아내 사랑이 방송에서도 그대로 묻어나

애처가인가보다 했는데

의외로 집안의 반대로 결혼식도 못올리고,

혼인신고만 하고 가정을 꾸렸다고 한다.

그 덕에 회사에서 결혼 휴가를 못받아

신혼여행도 못갔다고 한다.

직장을 그만두면서

비로소 5년만에 신혼여행을 떠나게 되면서

결혼을 둘러싼 이야기, 삶의 방식에 대한

자신의 생각을 풀어쓴 책이 바로

<5년만의 신혼여행>이라고 한다.

반대하는 결혼, 전업작가를 위한 사직,

어느 것 하나 쉬운 결정이 없었을 것이다.

그럼에도 이를 선택한 그의 용기와 심지가 궁금해졌다.

느릿느릿 때로는 수줍게 자신의 생각을

얘기하는 방송에서의 그 순한 목소리 안에

저런 과감함과 힘이 있었다니 놀랍기도 했다.

 

"소설가 장강명은 말한다. "자식이 위험에 빠지길 바라는 부모는 없다. 그러나 모험에는 언제나 위험이 따른다. 그러므로 자식에게 모험을 권하는 부모도 없다"고. 물론 모험을 허락하는 부모도 있다. 자식에게 닥칠 위험도 자신들이 수습할 수 있을 때. 그래서 부자 부모 아래에서 자란 젊은이가 더 많은 모험을 누리게 되고 더 진취적이라고. 심술이 난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인생에서 부잣집에서 태어났건 아니건 간에, 부모가 뭐라 하건 간에 위험을 무릅쓰고 모험을 벌여야 할 때가 반드시 찾아온다. 그렇지 않으면 그것은 인생이 아니다. 사는게 아니다"라고 말한다. 좋아요 백 번! 누르고 싶은 말. ---p.39~40

 

"저자의 말은 "한국인들이 정체정 문제에 관한 한 정신적으로 허약하기 때문"이다. "자기 삶의 가치에 대한 뚜렷한 믿음이 없기에 정체성을 사회적 지위에서 찾는 것이다. 사회적 지위는 대학 간판이나 자식 결혼식장에 모인 하객수로 구체화 된다." 이 허약은 어디에서 왔을까. 그래, '기적'적인 성장 사회를 만들어 내느라 자신을 챙길 틈이 없었을지도. (중략)

그저 우리 부모 세대들이 자신의 '허약한 정체성'을 타인을 통해 충족시키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정말 행복하게 결혼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더 많이 보인다면, 내가 결혼을 해서 지금보다 더 행복해질 것이라는 확신이 생긴다면 뜯어말려도 결혼을 하려고 하지 않겠는가. 내가 살고 싶은 삶은 특별하지 않다. 그저 오늘보다 내일 더 행복하게 사는 것." ---p.41

 

내 허약한 정체성으로 아이들에게

미래의 선택을 강요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잠시 생각해봤다.

아직은 그 모든 시선에서 자유로울 만큼

내 정체성이 굳건하지 않다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을 것 같다.

그럼에도 달라지려고 노력은 해야지.

우리부터, 나부터라도 바꿔나가야겠지.

저자의 책 일기 글에 공감 꾸욱!

 

 

저자는 치열한 삶의 현장에서 고군분투하며 살면서

상처와 아픔, 고통을 '책읽기'로 치유한다고 한다.

절망의 현실을 나열한 목차의 끝자리에는

그래서 '책 읽기'에 관한 책들이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

 

마크 바우어라인의 <가장 멍청한 세대>,

카바사와 시온의 <나는 한 번 읽은 책은 절대 잊어버리지 않는다>

고군분투 책 일기를 마무리하는 정희진의 <정희진처럼 읽기>.

 

"마지막으로 함께 읽고 싶은 책은 바로 내게 '신경성위염'을 진단해 준 의사 같은 책, <정희진처럼 읽기>다. 저자는 "책을 읽으면 덜 아프다"며 치료제처럼 읽은 책을 소개한다. 내가 아픈 이유를 명확히 알 수 있다면 아픔을 피할 수 있으리라. 내가 '고군분투 책 일기'에서 읽고 소개한 책도 대부분 나의 아픔을 해소하기 위한 책, 내가 왜 아픈지 알고 싶어 찾은 책이었다. 저자의 글은 상처받은 내 마음을 만지고, 별일 아닌 듯 나를 설명했다. 하루하루 살아내는 삶이 온통 질문의 연속일 때, 나보다 조금 더 빨리 질문하고 상처받으며 견뎌온 저자의 말 한마디, 한마디는 명쾌한 내 마음진단서였다. 이 책에 소개된 책들을 한 권도 읽지 못 한 점이 아쉬움으로 남는다. 아직은 내공이 부족해서 어려웠다."

---p.161~162

 

저자와 동시대를 살아가지만

서로 다른 아픔을 갖고 있어서인가

나 역시 저자에게 치유가 된 책들을 대부분 읽지 못했다.

그러나 공유할 수는 없지만 공감은 할 수 있을 것 같다.

나에게도 역시 책이 치료제로서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원인과 증상은 다르지만

서로를 위로할 수 있는 매개로서 책은 언제나 진리요, 정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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