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 기억의 피아니시모
리사 제노바 지음, 민승남 옮김 / 세계사 / 2009년 12월
평점 :
구판절판


 

" 1월 19일. 좋은 일이라곤 일어난 적이 없는 날이었다. "   (99p)

12월 10일 나는 어땠었던가? 
갑자기 처음 암 진단을 받았을때가 생각났다. 
잘 생각하지 않았었는데......지방의 작은 병원에서 오진을 받아 암을 더 키워버린 미련한 내 모습이 다시금 그려져서 나를, 내 머리를 짓누르기 시작했다.
50세의 앨리스가 자신에게 알츠하이머라는 노인성 치매가 나타날지 상상도 못했던 것처럼,
26세의 나도 암이라는 죽음의 병에 걸릴 것이라고는 생각은 커녕 상상도 못해봤던 일이였다.

뭐 그렇다고 드라마나 영화에서처럼 내 지구가 무너져 내리고, 절망하고 울부짖고 좌절하지는 않았던 것같다. 앨리스가 그러했듯이 나도 때론 담담하게, 때론 미친사람처럼 그러다 더 심해지면 어쩌지 라는 불안감을 떠안고 그저 앞으로 살아나갈 수밖에 없음을 받아들였다.

" 알츠하이머는 암과는 전혀 다른 괴물이었다. 그걸 물리칠 수있는 무기가 없었다....... 
암 환자의 대머리와 핑크 리본은 용기와 희망의 상징처럼 보이지만 
어눌한 말투와 기억력 감퇴는 정신이 불안정하고 실성이 임박했음을 나타낸다. 
암 환자는 주위의 지원을 받을 수 있으나 알츠하이머 환자는 추방자가 된다. " (157~158p)

알츠하이머와 암은 전혀 다르다.
적어도 암은 방사선, 항암, 대체치료등 여러가지 치료방법이 나와있고, 임상실험도 활발하게 진행되가며, 수술도 할 수있다. 기적이라는 좀처럼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녀석도 나타나기에 <희망>이라는 이 한단어를 가슴에 아무도 모르게 품고 갈 수도 있다.
그저 닥치는 상황을 그대로 받아들이기만 해야하는 알츠하이머보다는 희망이라는 두 글자를 안고 갈수 있기에  나는 그나마 행복한것이 아닐까 라는 위안을 해본다.

그러다 문득 올해 갑작스레 뇌로 암이 전이가 되어 기억력 감퇴를 경험했던 일이 생각났다.
무서웠다. 아침에 내가 약을 먹었던가 부터 방금 전에 한 말 조차도 기억을 못하는 경우가 종종 생겨났다. 방사선과 담당의는 뇌방사선으로 인한 자연스런 부작용이라 하지만,
나는 내 뇌가 죽어가는게 보이는 듯해서 불안하고 무서워졌다.
이러다 내가 알츠하이머까지 걸리면 어쩌지? 그럼 내 가족들은 나를 계속 안아줄까?
나를 시설로 보내지는 않을까? 나는 바보가 되가는 건가? 쓰나미처럼 몰려오는 그 불안감들을 안고 나는 어떻게든 이 상황에서 벗어나고 싶어 몸부림을 치기 시작했다.
하지만 앨리스처럼 몸이 그리고 뇌가 움직여주지 않았다.
그저 매일같이 지쳐 누워있다 구토를 하는 것 외에는 
세상이 암흑처럼 내려앉아 나를 짓누르는게 느껴졌다. 
3개월이 지나 MRI결과를 보고서야 조금씩 빛이 들어와 예전으로 돌아갈 수 있다라는 꿈을 꾸기 시작했다. 7개월이 지나가고 있는 지금 이제는 힘겨웠던 독서도 요리도 조금씩 편안하게 하기 시작했다.

내가 어디에 있는지, 무엇을 하고 있는지, 했는지, 할 것인지, 나와 함께 있는 이가 누구인지,
원하는 것이 무엇인지 의사표현을 할 수있다. 읽고 싶은 책도 읽고 글도 쓸수 있다. 이렇게.

나는 아직 살아있는 것이다. 살아있다.  나를 기억하는 뇌와 함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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