불안 - 개정판
알랭 드 보통 지음, 정영목 옮김 / 은행나무 / 2011년 1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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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득 불안해질 때가 있다. 내가 뭔가 길을 잘못 들은 건 아닐까. 이제 돌이킬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아진 건 아닐까. 지금 살고 있는 게 제대로 사는 거 맞는 건가. 남들은 다들 잘 살고 있는 거 같은데 난 왜 아직도 이런 걸까. 왜 나만. 남들보다 뒤쳐지는 건 아닐까. 이러고 있을 때가 아닌데 너무 아무 생각없이 살았던 건 아닐까. 뻔한 삶이 되는 건 아닌가. 흔히들 하는 말로 '난 누군가, 또 여긴 어딘가'라는 혼란감에 젖어들면 불안감은 걷잡을 수 없어진다.

일종의 발작과도 같다. 아무 문제없는 듯이 평온하게 혹은 무탈하게 지나던 일상에 '불안'이라는 돌멩이가 하나 던져지고 나면 그 파장은 삽시간에 전신을 훑고 오르내리며 점점 큰 울림을 일으킨다. 강변 테크노마트를 흔들었다던 공진현상의 생체적 발현인지도 모른다. 앙상하게 헐벗은 겨울나무가 문득 불어온 칼바람을 온몸으로 버티며 그저 바람이 지나가기만을 기다리듯, 그렇게 불안감과 뒤이은 자학, 자괴감, 패닉이 지나기만을 기다릴 뿐이다.

불안의 대부분은, 남들과의 비교에서 온다. 알랭 드 보통은 그걸 '지위'에 대한 불안이라 말한다. 가만히 살펴보면 정말 그렇다. 남들이 어떻게 사는지 살피고, 남들이 어떤 가치를 좇아 달리는지 살피고, 남들이 무엇을 귀하게 여기는지 살피면서, 그들을 따라 어깨 나란히 달리며 같은 것을 좇고 심지어 보다 많이 가지려고 애쓴다. 너무도 당연해서 다들 의식조차 않고 '평범한', '주류적인' 길을 따라 학교를 다니고 직장을 다니고 결혼을 하다가, 문득 불안해지는 거다.

남들보다 더 갖고 더 사랑/존중받고 싶다, 라는 마음. 아무리 노력해도 채워질리 없는 그 만족감, 하나를 얻으면 다른 하나가 눈앞에 나타나는 무한한 쳇바퀴 위를 달리는 것 자체도 지치는 일인데, 자기보다 앞서는 남들이 보이는 것은 더더욱 힘빠지고 좌절스러운 일이 되고 만다. 이러다가 쳇바퀴 위에서 아예 탈락하고 낙오자, 패배자, 루저 낙인이 찍힌 채 게임 오버되는 건 아닐까 싶어 가슴이 타들어간다. 더구나 실체도 불분명한 '능력'으로 열세우는 현대사회에선.

특히나 한국에서는 더더욱 심해지는 거 같다. 중고등학교부터 성적으로 줄세워지고, 직장에 들어가면 연봉으로 줄세워지며, 이후엔 결혼이니 사는 곳이니 집 따위로 다시 줄세워지는 끝없는 비교의 연속. 천박하고 단순한 잣대일 수도 있겠지만, 알랭 드 보통이 말하듯, '능력주의'라는 이데올로기가 창궐한 이 시대에는 남들보다 앞서고 성공하는 건 도덕적으로도 올바르고 바람직한 일이라고 선전되고 있는 거다. 그 결과 대부분의 경우 불안에 불안이 더해진다.

알랭 드 보통이라고 뾰족한 답을 갖고 있진 않다. 다만 그 불안감을 만들어내는 음습하고 악의적인 기반에 조금씩 균열을 만들어 내고자 한다. 그는 성공과 실패, 명예와 수치의 기준선을 바꾸고 개념을 흔들어보려 한다. 그런 작업들은 사실 철학과 예술, 정치와 종교의 영역에서 뿌리깊게 산발적으로 진행되었던 것들이기도 하다. 주류적인 가치관과 위계감각에 기대지 않고, 나름의 가치와 철학을 갖고 중심을 세워 살아보려는 사람들이 이미 걸었던 길을 따르는 과정.

"모든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늘 지배계급의 관념이다." 마르크스는 말했다. 이 시대의 지배적 관념은, 능력이 있으면 성공하고 부자가 되기 마련이라는 '능력주의' 아닐까. 한국의 경우 IMF 이후 더욱 노골적으로 재물과 부유함만을 쫓아 달리는 물신주의는 굉장히 단순하고 명료한 기준 하나를 제시한다. '스펙'이라 이야기되는, 연봉과 가격으로 말해지는 화폐숫자들.

그렇지만 다들 체감하듯 그 '능력'이란 건 대개의 경우 우연적이고 필연적이다. 운, 그리고 환경과 조건의 영향이다. 여기가 자기최면적인 자기계발서가 파고드는 부분이다. 그리고 알랭 드 보통이 멈춘 지점이기도 하다. 별 생각없이도 남들만 따라가면 그뿐인 편하고 자연스러운 길, 물론 그길을 가다보면 만성적으로 불만에 휩싸이고 주기적인 공황상태에 빠질지언정 그로부터 벗어나 곁길을 트고, 남들과의 비교가 아니라 자기 자신으로부터 우러난 행복을 찾는 길이란 건 말이야 쉽지, 참 난감하고 막막한 일이다. 종교적인 메시지나 자기최면을 거는 진통제 같은 메시지 말고, 뭐 없을까.

글쎄. 책장을 넘기다 드문드문 맘에 와닿는 구절들은 있었다. 무엇보다 큰 위로가 되었던 건, 알랭 드 보통이 말하는 것들이 어느 시점엔가 나 혼자 갖고 있다고 생각했던 불안감, 조바심에 대한 것들이었단 사실. 알고 보니 나 혼자만 갖고 있던 불안과 열패감이 아니라 모두에게 잠재해 있고 모두가 느끼고 있는 감정이라는 것, 그래서 어떤 사람들은 나와 같이 그 쳇바퀴에서 내려서서 다른 길과 가치를 모색할 준비가 되었거나 모색하고 있다는 것.

어쨌거나, 불안과 싸우는 건 어쩌면 살아간다는 것과 동의어일지도 모르겠다. 불안을 지워내고 걷어낼 수 없다면, 차라리 그 불안감의 정도를 통제하고 그에 잠식되지 않을 만큼 스스로 균형을 잡고 중심을 잡는 게 관건이겠다는 생각도 든다. 그 와중에 필요한 건, 주어진 잣대와 가치관을 그대로 받아들이는 대신 스스로의 기준과 가치를 발견하고 세워내려는 노력, 그리고 그런 노력을 함께 일구어갈 수 있고 공유할 수 있는 사람과 계속해서 교류하는 것 아닐까.


* 아래는 책에서 발췌한 몇몇 구절들.


"세상의 선은 역사적으로 거창하지 않은 행동들 덕분에 확장되기 때문이다. 당신이나 나나 더 나쁜 인생을 살았을 수도 있지만 그래도 그렇지 않았던 것은 반은 드러나지 않은 삶을 충실하게 살아가다 지금은 사람이 찾지 않는 무덤에서 쉬고 있는 사람들 덕이다."

"부자가 되는 사람이나 빈자가 되는 사람이나 딱히 범주를 정할 수 없는 다양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즉 소득과 명예가 비례하는 것은 아니라는 메시지다. 수많은 외적 사건과 내적인 특징이 어떤 사람은 부유하게 만들고 다른 사람은 가난하게 만든다. 운과 환경도 있고, 병과 공포도 있고, 우연과 뒤늦은 발달도 있고, 적절한 시운과 불행도 있다."

"우리의 성공과 실패를 냉정하게 평가해본다면 우리 자신을 자랑하거나 창피해할 이유가 그리 많지 않다고 느끼게 된다. 실제로 벌어지는 일 가운데 많은 부분은 우리의 행동의 결과가 아니기 때문이다. 몽테뉴는 힘있고 부유한 자를 만날 때 흥분을 억제하고 가난하고 미미한 자를 만날 때 판단을 억제할 것을 요구했다."

"어떤 것에 계속 눈이 가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은 그것을 사는 것일지도 모른다. 어떤 사람을 자꾸 보게 되는 상태에서 벗어나는 가장 빠른 방법이 그 사람과 결혼하는 것임과 마찬가지다. 우리는 어떤 것을 이루고 소유하면 지속적인 만족이 보장될 것이라고 믿고 싶어한다...정상에 오르면 곧 불안과 욕망이 뒤엉키는 새로운 저지대로 다시 내려가야 한다고 말해주는 사람은 드물다."

"인생은 하나의 불안을 다른 불안으로 대체하고, 하나의 욕망을 다른 욕망으로 대체하는 과정으로 보인다. 그렇다고 불안을 극복하거나 욕망을 채우려고 노력하지 말아야 한다는 이야기는 아니다. 노력은 하더라도 우리의 목표들이 약속하는 수준의 불안해소와 평안에 이를 수 없다는 것쯤은 알고 있어야 한다는 뜻이다."

"우리는 어떤 직업이 주는 매력도 오해하는 경향이 있다. 그 직업에 포함된 많은 것들이 편집되고 오직 감탄하지 않을 수 없는 부분만 강조되기 때문이다. 과정이 아니라 결과만 눈에 보이는 것이다. 선망을 멈추지 못한다면, 엉뚱한 것을 선망하느라 우리 삶의 얼마나 많은 시간을 소비할 것인가."

"병원에서 환자복을 입고 눈앞에 다가온 죽음을 기다릴 때 우리는 우리의 지위를 조건으로 우리를 사랑하던 사람들에게 격분한다. 그들이 냉혹하게 유혹의 책략을 썼다는 사실만이 아니라 우리 자신이 그들에게 유혹을 당할 만큼 허영심이 컸다는 사실에도 화가 난다...아는 사람들 가운데 누가 입원실까지 와줄 것인지 생각해보면 만날 사람을 정리하는데 큰 도움이 될 것이다."

"조건부 사랑에 흥미를 잃게 되면, 그것을 얻기 위해 우리가 추구하던 많은 것들에 대한 흥미도 줄어든다. 부, 위신, 권력으로는 우리의 지위가 유지되는 한에서만 지속되는 사랑밖에 얻을 수 없다면, 그렇게 살다가는 어린 아이처럼 위로를 갈망하며 무방비 상태에서 헝클어진 모습으로 인생을 끝내야 할 운명이라면, 우리가 지위를 얻든 잃든 지속될 수 있는 관계에 에너지를 집중해야 할 분명한 이유가 생기는 셈이다."

"폐허는 세속적 권력이라는 불안정한 보답을 얻으려고 마음의 평화를 포기하는 어리석음에 대하여 말한다. 낡은 돌들을 보다 보면 성취에 대한, 또는 성취하지 못한 것에 대한 불안이 누그러드는 것을 느끼게 된다. 다른 사람들 눈으로 보기에 성공하지 못했다 한들, 우리를 기리는 기념비나 행렬이 없다 한들, 그게 어쨌단 말인가?"

"돈과 실용적인 직업이 영혼을 부패시킬 수 있다는, 또는 스탕달의 말을 빌리자면 "부드러운 감각"을 향유하는 능력을 부패시킬 수 있다는 생각은 보헤미아의 역사에서 계속 이어져 왔다."

"'월든'의 소로는 한 사람에게 돈이 없다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재규정하려고 했다. 그것은 부르주아적인 관점이 미묘하게 암시하는 것과는 달리, 반드시 인생의 게임에서 패했다는 뜻은 아니다. 돈이 없다는 것은 어떤 사람이 자신의 에너지를 사업 말고 다른 활동에 쏟는 쪽을 택했고, 그 과정에서 현금이 아닌 다른 것에서 부유해졌다는 뜻일 수도 있다."

"주류 문화와 갈등하면서도 자신있게 살아가려면 우리의 직접적인 환경에서 작동하는 가치 체계, 우리가 사교적으로 어울리는 사람들, 우리가 읽고 듣는 것이 중요하다...그래서 보헤미안들은 함께 시간을 보낼 사람을 고르는데 특히 주의를 기울였다...보헤미안들은 대도시에 살면서 지위에 관심을 가지는 사람들을 피하고 대신 진정한 친구들과 매일 접촉할 수 있는 동네에 모여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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