맹신자들 - 대중운동의 본질에 관한 125가지 단상
에릭 호퍼 지음, 이민아 옮김 / 궁리 / 2011년 9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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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줄 요약)

객관을 빙자한 '반공주의자', '극렬 개인주의자'의 악의적인 프로파간다, 사회주의와 전체주의 진영에 대항하는 자유세계(1세계) 예찬론으로밖에 보이지 않는다. 그에 더해 사회 비판의 목소리들에 '니 마음이 병들어서 그래'라고 묵살할 수 있는 그럴 듯한 근거와 '단상'들을 제공하고 있으며, '대중 운동' 자체를 냉소적이고 경계심이 가득한 눈으로만 보고 있으니, 이 책이 갖고 있는 날카로움은 대체로 (변화를 거부한다는 의미에서의) 반공보수세력을 지키기 위한 것이 될 거다.



사람들의 불만, 현실을 타파하려는 열정이 제대로 방향을 잡지 못하고 있다고 생각했다. 삶의 구체적인 불편함과 고단함으로 드러나는 문제들에 대한 답을 '생각'해 보아야 할 시기에, 멘토를 자처한 자들의 성공담과 정서적인 위무에 녹아내리거나 혹은 앞장선 누군가의 손가락질과 돌팔매질을 따라 피아식별 따위 없이 만만한 마녀를 사냥하며 '자위'를 하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실은 지금도 그런 모습들은 여전하다고 생각한다. 왜 그럴까, '맹신자들'이란 제목이 뭔가 힌트를 줄 거 같은 기대감을 던졌다.

사실 에릭 호퍼의 이 책은 그런 내 나름의 문제의식과는 거리가 있었다. 저자는 이른바 '대중운동의 역동기', 맹신자들이 형성되고 사태를 압도하는 시기의 동학을 살피고 그들 내부의 심리를 분석하는데 힘을 쏟고 있다. 그의 전제는 간명하다 못해 저열해 보이기까지 한다. 대중운동의 역동적 단계에는 맹신자들이 위세를 떨치며, 그들은 주로 좌절한 채 증오와 자기 비하에 빠진 사람들이라는 거다. 그는 대중 운동의 비전이나 내용엔 관심을 두지 않고, 그 일반적인 양태와 동력원를 분석하려 한다.

그의 이러한 시도는 일견 굉장히 야심차 보인다. 간단히 말하자면 그는 어느 순간 사회를 들썩이는 무정향의 대중 에너지가 만들어지는 원천에 대해 설명을 해보려는 거다. 무엇을 주장하고 요구하던 간에, 어느 방향으로 우르르 몰려가던 간에 중요한 것은 그런 움직임 뒤에 숨어있는 에너지 덩어리이며, 그건 시공간을 초월한 일종의 규칙과 단계를 따른다는 가설. 촛불집회가 되었건, 황우석 사태가 되었건, 87년 민주화항쟁이건 아니면 광주항쟁이던 간에 그 기저엔 같은 게 있단 이야기다.

문제는 여러가지다. 사실 나는 이 책이 왜 새삼 '맹신자의 심리를 날카롭게 파헤친 이시대의 고전'이란 카피를 달고 나왔는지, 그리고 조선이니 동아 따위 보수언론에서 이 책을 화제의 신간으로 내세웠는지 의심하고 있을 정도다. 그들이 이 책을 앞세워 말하려는 맹신자들은 누구일까, '대중 운동' 자체에 대한 불편부당한 인식을 강조함에도 종내 '대중 운동' 자체에 대한 부정적 인식을 가득 드러내는 '개인주의적 반공주의자' 에릭 호퍼의 반세기전 저작이 새삼 고전으로 떠받들릴 이유는 무엇일까 하고.

저자가 '대중 운동'의 정의조차 없이 글을 열며 '좌절한', '광신', '맹신' 따위 모호하고 무책임한 용어를 남발하는 건 참는다 치자. 우선 개인의 병리적 심리에 대한 통찰은 제법 날카로우나 이를 사회의 동학에 그대로 이입하고 충분한 근거없이 일반적인 동력으로 단정짓고 있다는 점에서 설득력이 떨어졌다. 또 하나, 저자가 살던 냉전시대를 넘어서지 못한 채 반공 이데올로기와 오리엔탈리즘 따위의 편향된 사고 프레임에 기반한 편견들을 근거라고 제시하고 있단 점이다. 근거박약한, 응집력없는 조각난 '단상'들일 뿐이다.

결국 그는 '대중 운동'을 암묵적으로 위험한 것으로 간주한다. '자율적이고 스스로에게 만족할 줄 아는 사람, 자주적인 사람'은 대중 운동을 조장하고 독려하는 일부 음모가, 불평분자에 넘어가지 않으나 심리적으로 공허하거나 불안정한 사람, 소위 좌절한 사람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대중 운동이 촉발되고 진행된다는 식이다. 개인적인 차원의 심리 문제와 트라우마, 불만족스러움이 어떤 식으로던 현실을 타파하고 조직적 가치와 지향에 스스로를 투신하려는 자기 희생 의지를 낳는다는 거다.

저자는 사회 변화 혹은 소란의 원인과 에너지원을 개인에서 찾고 있지만, 정말 그런가. 그들이 어떻게 양산되고 있는지, 개인의 도덕성이나 참을성 이전에 따져봐야 할 것들이 많지 않을까. 예외적으로 생겨난 불평분자가 아니라 특정 계층과 그룹에서 공통된 지반을 갖춘 불만과 좌절이 형성되고 있다면, 역시 구조적인 문제 혹은 모순이 있다고 봐야 한다. 저자는 그들을 그저 문제 해결의 의지나 탐색 노력은 없이 어떤 방향으로던 불만을 터뜨려 버리겠다는 마음만 가득한 '맹신자', 혹은 '광신자'라 일컫지만 말이다.

저자의 성찰 역시 견고하진 않으며, 그의 단호한 어조를 뒷받침할 사례들 역시 빈약하긴 매한가지다. 냉전기 전형적인 체제경쟁과 상호비방의 '자유진영' 논리와 어투를 그대로 가져다 쓴 소련 공산주의 비판에서는 레드 콤플렉스의 시대적 한계와 이에 편승한 저자의 몰역사적 인식이 드러나고, 중국이나 아시아에 대한 언급들은 이들 지역이 오랜 기간 역사적 저발전 단계에 있었던 것처럼 보는 오리엔탈리즘이 묻어난다. 그가 드는 사례들 역시, 단편적이고 편의적인 취사선택을 거쳐 주워섬길 뿐이다.

그저 당대의 믿음과 당대의 '상식'에 기댄 한계가 너무도 뚜렷하다. 아무래도 2차 세계대전이 끝나고 난 후 승전국 미국을 중심으로 '자유진영'이 공산주의 혹은 전체주의 세력에 대한 냉전을 새롭게 시작한 시점에 인간의 자유와 개인주의를 지켜내겠다는 자유세계 이데올로그의 냄새가 너무 난다. 저자도 수차례 '악마'라 지칭하고 있는 히틀러와 나치에 대한, 그리고 '광신자'로 싸잡아 묘사되는 '대중운동가', '사회 불평분자'에 대한 혐오는 왠지 2010년대 가스통을 들고 있는 '어버이연합'과 같은 냄새를 풍긴다.

그럼에도 어떤 점에서 그의 책은 니체의 관점을 떠올리게 만들기도 한다. 인간을 병들게 만드는 목적론과 형이상학에 대한 반대라는 점에서, 가족과 부족과 국가와 종교와 같은 특정 조직이 개인의 자유와 창의를 필연적으로 제약하고 억압하게 되는 것에 대한 단호한 거부라는 점에서 니체가 떠오르는 거다. 그러나 니체가 보통 일반인과 초인(ubermensch) 사이의 간극을 말하며 인간의 고양을 말했다면, 이 책의 구도는 굉장히 협소하고 불편하다. 지독한 개인주의적 반공주의자 버전이랄까.

아마도 그런 점에서 이 책이 애초 저자의 의도와도 같이 사회 현상에 대한 설명이라거나 '대중 운동' 일반에 대한 해명을 위한 참고 자료로 인용되기보다는, 주로 종교적 광신자나 폭탄테러범의 내면 심리를 읽는데 제한적으로 참조되는 이유가 아닐까 싶다. 어쩌면 이 책을 지금 한국에서 읽어야 하는 이유를 찾는다면 역시 마찬가지 맥락을 짚어야 하지 않을까. 이른바 '개독인'들이 왜 '개독인'이 되고 말았는지, 라거나 '어버이연합'이 왜 '어버이연합'이 되었는지라거나.

물론 중간에 말했던 내 의심이 유효하다면, 이 책의 얼개를 손쉽게 뒤집어 씌운다면 '멍청하고 좌절한 대중'이 몇몇 선동가의 외침에 놀아나며 '미국산 소고기가 위험하다'느니, '4대강이 무너진다'느니, 'FTA하면 나라 망한다'느니 따위의 선전선동을 '맹신'하고 있다는 식으로 말하기가 더욱 간편한 건 사실이다. 그래서 다시금 이런 책을 '고전'이라 상찬하며 서점 책꽂이에 진열하는 사람들의 의도와 행간을 의심하게 되는 거다. 이 책에 시공간을 넘어설만한 통찰과 혜안이 있어 보이진 않는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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