0년 - 현대의 탄생, 1945년의 세계사
이안 부루마 지음, 신보영 옮김 / 글항아리 / 2016년 2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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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년 #글항아리 #세계사 #책스타그램

지금의 세계가 언제 만들어졌을까. 지금의 국제정치경제시스템은 이미 뚱땅거리며 고쳐쓰인지 여러차례라지만, 최근의 근본적인 결절점은 아무래도 2차 세계대전의 종전, 1945년쯤일 거다. 그래서 0년. 0년 이전의 세계에 부재했거나 부조리했던 것들이 고스란히 0년 이후의 세계를 주조하는 형틀이 되었다.

고교 교과서 수준의 정리로는 말끔하게 떨어지는 새 시대의 정의와 지향, 새부대에 담긴 새술 같은 이야기겠지만 어디 현실이 그렇던가. 얼마나 구시대가 난마처럼 헝클어져 있었는지, 그 구시대를 경과한 구성원들은 또 얼마나 비뚤어져 있었는지를 천착하기엔 개별 국가 대신 구체적인 인간들의 모습을 보는 게 답이리라. 이 책의 미덕 중 하나는 그렇게 0년을 맞닥뜨린 지구 각지 원주민들의 비뚤어진 성장배경과 좌절된 욕망들, 그로 인해 또다시 왜곡된 의지와 지향을 투영시키는 그들의 0년을 그려낸다는 점. 예컨대 패전의 책임을 진 전범세력에 대한 단죄를 사법체계내에서 가능케 하려는 노력이라거나 부역자들에 대한 청산작업은 각지의 처지에 따라 다양한 수위와 방식으로 나타난다.

다만 그렇게 보통사람들의 역사를 집중한다고 해서 가십거리를 진열하거나 삽화적인 편린만 제공하는데 그쳐서는 곤란하지 않을까. 산만하고 맥락없는 이야기들의 스크랩북이 아니라, 조금은 더 꿰어진 구슬이 되어야 하지 않을까 하는 생각. 물론 그건 여러모로 어려울 거다. 어떤 층위의 누군가의 이야기를 퍼올려야 시대와 공간의 대표적인 사례가 될지, 그걸 골라내고 늘어세우는 작업은 그대로 굉장히 정치적이고 주관적인 작업이 되고 마니깐. 게다가 그건 자칫 보통사람들의 목소리를 재차 뭉개는 짓이 될 수도 있겠고.

그래서 다시 생각해보면 저자는 어쩌면 그 구슬 하나하나를 공들여 세밀하게 묘사하는데까지가 원래 목표였는지도 모르겠고, 그렇다면 꽤나 성공적이었던 듯. 특히 한국의 역사와 그 후과들만 들여다보지 않고 세계 각국의 형편과 비교해 볼 수 있단 점은 또다른 귀중한 포인트. 친일파/부역자 청산 문제라거나, 해방을 준비했던 수준의 문제라거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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