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상점들의 거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40
파트릭 모디아노 지음, 김화영 옮김 / 문학동네 / 2010년 5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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휴대폰번호랑 이메일주소만 잊혀지면 사람 하나 인생에서 사라진 거나 마찬가지라고 농담처럼 말하지만, 사실 그 농담 아닌 농담은 이렇게 더 뻗어나갈 수 있을 거다. 그렇게 내 옆의 사람 하나가 사라지면, 날 기억하고 날 구성해주는 조각 하나가 사라지는 셈일지도 모른다고. 나라는 사람은 내가 여러사람과 이어진 관계의 다발 그자체와 다를 바 없으므로.

굳이 휴대폰과 이메일의 시대가 아니어도, 생각보다 나란 존재는 희미하고 관계는 휘발성이 높단 사실에 화들짝 놀라는 순간은 어느 시대고 있었을 법 하다. 어쩌면 그건 인간의 본질적인 고독감을 건드리는 문제일 테고, 파트릭 모디아노는 계속해서 그의 책들에서 변주할 만큼 집요하게 이를 파고 드는 중이다.

인생의 한토막에 해당하는 기억을 문득 잃어버린 남자, 제3자의 발자취를 좇듯 자신-혹은 자신이라고 생각되는 이-의 지인들과 사건들을 추적한다. 지극히 희미해진 기억과 제각기의 입맛에 따라 재구성을 거친 사건들. 그런 고난에도 불구하고 몇가지 강렬한 기억과 후각 등 예기치 않은 힌트가 던져져 안개가 걷히듯 말끔히 기억을 되찾을 수 있기를 은근히 기대하게 만드는 쫄깃함.

사는 게 어디 그렇던가. 앙상하게 쥐어진 사실 몇조각에 본인의 기대와 희망이 더해지고 나면, 어느 순간부터 기억은 일종의 환타지나 픽션이 되고 만다. 나만의 내러티브. 어차피, 기억을 잃었거나 잃지 않았거나 자기 편할대로 기억을 재구성한 과거를 사는 건 마찬가지일 거다. 그래서 기억을 되찾으려 발버둥치던 그는 어느 순간 강렬히 남은 감정 몇가지를 버무린 적당한 드라마에 주저앉는 것처럼 보이기도 한다.

정작 비극적인 건, 그렇게 자기 안에 간직한 이야기책을 함께 펼쳐보며 '그때 우린 그랬지', '자네 잘못 기억하고 있구만'할 수 있는 사람들은 결국 전부 사라져 버린다는 것. 기억을 공유할 수도, 너무 엇나가지 않도록 조율할 수도 없어지고 나면, 그들과 더불어 나란 사람 역시 사라져 버린다는 것. 결국 모두 사라진다는 것. 굉장히 쌉쌀하고 달콤한 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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