누구를 위한 화해인가 - <제국의 위안부>의 반역사성
정영환 지음, 임경화 옮김, 박노자 해제 / 푸른역사 / 2016년 7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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품절


하나의 역사적 사건을 두고 여러 해석이 분분한 건 바람직한 일이다. 대개 그런 주장들은 양립가능하며, 하나의 관점으로는 미처 다 담아내지 못하는 사건들과 의미를 퍼올려내어 입체적이고 세밀한 이해가 가능해지는 거다. 미소 냉전이나 한국전쟁의 원인과 경과에 대한 다양한 이야기가 경합하면서 역사와 인간에 대한 이해는 더욱 풍성해진다. 일제 식민지 시절이나 위안부 문제에 대한 민족주의적인 해석도, 경제사적인 해석도 그럴 수 있다.

여기엔 전제가 있다. 근거가 되는 사료나 1차 자료들에 대한 성실한 발굴과 합리적인 해석, 지금까지 이루어진 연구 성과들에 대한 이해와 비판적 계승이 보장되어야 한다는 점이다. 엄밀한 주장을 쌓아올리기 위해 개념들을 적확하게 정의내리고 유지해야 한다는 점이다. 아니 그보다도 먼저, 주장의 근거를 왜곡하거나 편의적으로 발췌하는 식으로 독자를 우롱해서는 안 될 일이다. 더구나 그 책을 읽는 일반 대중이 그런 팩트체크를 하기란 불가능에 가까우니 그건 악의적인 지적사기에 가깝다.

박유하의 '제국의 위안부'는 그런 학문적 엄밀함과 성실성을 결여하고 대중을 호도하고 있다는 게 이 책의 주장이다. 굉장히 방대한 1차 사료와 근거를 제시하며 객관적이려 애쓰면서도, 행간에 흐르는 뜨거운 분노가 읽힌다. 과연 위안부가 자발적 매춘이었던가. 과연 당시 일본정부는 위안부 모집과 관리에 책임이 없었던가. 과연 현재까지 일본은 충분한 사과를 했는가. 아니다. 아니다. 모두 아니다. 결국 저자는 한일 양국으로부터의 빼곡한 증거와 최근 연구 성과를 업데이트함으로써, 기존에 선언적인 수준으로 엉성하게 알고 있던 역사적 사실, '일제가 위안부를 끌고 갔다'를 탄탄하게 지지한다. (박유하에 논쟁을 청했으나 거부당했단 것도 킬링포인트)

박유하의 주장과 관점을 저자의 목소리로 요약하면 그렇다. 애초 한국병합에 대한 문제의식이 없으니 일본과 한국이 자연스레 한몸인 것처럼 해석되고, 그래선 조선인이자 일본인인 위안부가 돈을 벌기 위한 자발적 매춘부에 지나지 않게 된다. 피식민지역에 대한 강제적이거나 구조적인 압박은 보이지 않는 거다. 대신 책임은 모호하게도 '제국'으로 한정된다. 일본과 한국과 대만으로 이루어진 대일본제국의 책임, 그건 사실상 우리모두의 책임이라는 이야기로 귀결된다. 와중에 위안부 중에서도 일부 강경파와 정대협이 일본에 끊임없이 사과를 떼쓰고 있다는 게 박유하의 시각이다.

이영훈이나 박유하로 대표되는 이들의 역사인식은 사실 이 지점부터 문제가 시작되는 건 아닐까 싶다. 일제가 한국을 병합한 것에 대해 정당하고 합법적인 절차였다고 인식한다. 이영훈은 그래서 식민지배는 한국에 도움이 되었다고 가지를 쳐나가고, 박유하는 위안부 문제를 식민지배의 폭력성과 불법성이 아니라 '모든 국가권력이란 나쁜 거야'라거나 '군인의 성욕은 본능이니 인간을 탓해'류의 원죄설로 치환시킨다. 스스로 반성할 부분도 있다. 리버럴함이라는 거, 그저 얘도 옳을 수 있고 쟤도 옳을 수 있어, 같은 다원주의랑은 다른 건데. 날카롭게 대척하는, 양립할 수 없는 주장 사이에서 원만하고 온건한 종합으로 받아들였던 건 아닌지 반성한다. 그러다가 박유하에 손을 잠시나마 들어주고 말았다. 일제의 한국 병탄과 식민지배, 위안부 문제, 강제징용 문제에 대한 선명한 입장이 필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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