익사 (무선) 문학동네 세계문학전집 128
오에 겐자부로 지음, 박유하 옮김 / 문학동네 / 2015년 3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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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에 걸친 사회적 발언과 집필활동을 이어온 늙은 작가, 어렸을 적부터 머릿속을 떠난 적 없던 기이한 아버지의 죽음과 관련된 책을 결국 마지막 작업감으로 삼았다. 태평양전쟁에서 패퇴하기 전 천황을 살해하겠다는 농담같은 음모, 그 음모가 실행되기 직전 아버지의 익사. 가족을 비롯한 주변인들의 만류와 자신의 두려움에도 불구하고 직면하려는 그것은 일본 현대사를 어떻게 해석할 건지, 그런 뜨거운 감자와도 같은 문제다.

이 복잡한 문제를 풀어보기 위해 작가는 몇 개의 복잡한 프레임을 교묘하게 엮어두었다. 우선 굉장히 자전적인 내용이라, 사실상 소설 속 화자인 주인공은 거의 작가인 겐자부로와 동일한 편력과 역사를 가진 인물이다. 그리고 화자가 기어이 쓰기로 맘먹은 그 소설을 시작한 이후의 과정을 따라가는가 하면 이는 유사한 주제의 연극을 제작하는 과정과도 겹친다. 게다가 인터뷰 형식, 연극 형식, 영화 제작 그리고 손편지의 형식까지 다채롭게 빌린 구성까지, 다양한 관점과 입장을 끌어온다.

이야기는 그렇게 다양한 주제로 번져나가 풍요로워질 수도 있을 것 같지만, 아무래도 역시 작가의 삶의 연장선에서 보았을 때는 제국주의와 역사를 바라보는 자세에 대한 부분이 큰 줄기지 싶다. 과거 제국주의 시대의 허위를 고발하는 연극을 제작하는 과정에서 계속 불화하는 현재의 일본인들, 고위 관직자와 정치인들과 우익세력들이 소환되는 장면이 반복되는 걸 봐도 역시나, 민족이니 국가니 하는 단어를 경계하는 그의 입장이 선명하다.

이 정도면 가히 사이드가 말한 '만년의 작업' 중 모범적이지 않을까. 과거의 스타일이나 메시지를 성숙시키거나 조화롭게 완성하는 것이 아니라, 과거의 것들보다 더 밀고 나가는 것. 더 실험적이고 치열하게 불화하는 것. 그는 자신의 작품세계를 돌이켜보고, 가족과 인생을 작품에 녹여넣으며, 끝내는 '이런 글 조각 하나로 나는 나의 붕괴를 지탱해왔다' 고백한다. 그 붕괴는 마침내 오고야 말 것이나, 이 소설로 그 붕괴에 이르는 하나의 길은 환하게 밝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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