끔찍한 전쟁을 겪고도 살아남은 자의 머릿속은 어떨까. 정신적으로도 살아남으려면 어떤 거짓말이나 위로가 필요했을까. 그는 분명 적극적으로 전쟁을 반대하거나 폭력을 혐오하는 류의 인간은 아니었다. 1945년 2월, 히로시마에 앞서 그보다 더 큰 민간인 희생자를 발생시킨 드레스덴 대공습. 그곳의 포로수용소에 갇혔던 미군 전쟁포로 중의 한명이었던 그는 살아남아 삶을 이어간다.글쎄, 이어간다란 표현은 잘못됐다. 그는 어느순간 시간과 공간을 랜덤하게 넘나들며 과거와 현재와 미래가 헝클어진 삶을 살고 있으니까. 트랄파마도어 행성의 외계인을 만나고 난 이후 가능해졌다는 그 초능력은 공교롭게도 그가 피하고 싶은 전쟁의 순간이나 기억들을 맞닥뜨릴 때 발휘된다. 우연이겠지만.왜인지 등장인물들도 약간씩 우스꽝스럽고 초현실적이다. 비행접시에 대해, 죽음과 시간의 흐름에 대해 천착하는 얼치기 SF소설가는 그의 생각을 그대로 베끼고 있는 듯 하고, 액자 바깥에서 소설을 써내리는 작가의 자전적 요소까지 반영하고 있으니 이 역시도 또다른 꼬임이다. 소설 주인공의 안과 밖과 작가의 삶이 뒤섞이는 혼몽스러움. 이 역시 천연덕스럽게도 우연이겠지만.그렇게 우연인 척 거짓말의 힘을 빌어 작가는 주인공의 삶을 위로하고, 전쟁을 겪은 이들과 본인의 삶을 위로한다. 아마도 이토록 가혹했던 역사를 블랙유머로 숙성시켜 그나마 견딜 만한 것으로 바꿔주는 건 소설이 가질 수 있는 덕목 중 하나일 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