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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서 반납 여행 - 전후 일본 사학사의 한 컷 ㅣ 오래된 책을 찾아 자박자박 1
아미노 요시히코 지음, 김시덕 옮김 / 글항아리 / 2018년 3월
평점 :
절판
저자 아미노 요시히코는 일본 중세시대의 역사를 농경민 혹은 지배층이 아니라 흔히 비주류로 여겨지는 어민을 위시한 비정주민의 어업경제를 중심으로 읽어내리는 '아미노 사학'을 주창한 역사가다. 이 책은 이런 그의 연구에 대한 본격적인 이야기는 아니지만 간접적이나마 그의 관점을 알 수 있을 뿐더러 어떻게 고문서 자료를 조사하고 보전하고 관리하는지, 여러가지로 충분히 재미있는 책이다.
책의 내용은 그가 연구에 의지한 변방 어촌마을의 고문서들을 전후무렵에 빌리고 우여곡절 끝에 길게는 40여년이 지난 시점까지 이르러 기어이 반납하는 모험담처럼 읽힌다. 그는 이를 사료 조사와 보존, 관리에 대한 실패사로 규정짓고 가차없이 반성하며 공유하고 있기도 하다. 그렇지만 관련 영역의 연구자가 아닌 독자로서는 반성과 교훈의 지점보다는 1차 사료의 조사와 관리가 어떻게 이루어지는지에 대한 생생함이 우선이다.
일본의 잘 알려진 도시와는 멀리 떨어진 변경, 오지처럼 여겨지는 바닷가 마을에서, 오래된 고택의 창고에서, 또 창호문에 덧대어진 폐지에서 발견하는 수백년 전의 기록들. 보물이라도 찾은 듯 환호하고 나서는 일일이 복구하고 해석하는 수십년간의 지난하고도 섬세한 작업을 옆에서 지켜보는 느낌이다. 그런 자료를 매개로 마주치는 그 후손들의 신실한 삶과 조상을 기리는 마음가짐이 귀하다.
아, 해양사를 중심으로 다시 쓰여지는 일본 중세 역사란 건 한반도 역사에도 꽤나 큰 반향이 될 것 같다. 그저 굶주린 도적떼로 여겨졌던 '왜구'가 의외로 바다의 영주라 불릴만큼의 조직과 세력을 형성하고 있었다거나, 제주도와 한반도 남부지역이 일본열도와 해상 무역권으로 크게 묶여 흥성했다거나 등. 게다가 삼면이 바다라느니 하면서도 늘 '농업적 근면성'을 내츄럴본 민족성인 양 내세웠던 한국사에도 그의 사관이 되짚을 부분이 적잖을 듯.