광해, 왕이 된 남자
이주호.황조윤 지음 / 걷는나무 / 2012년 9월
평점 :
품절


광해군은 중학생 시절 내 뇌리에 깊이 각인된 인물이다. 암기과목에는 별다른 흥미를 갖고 있지 않았던 내가 국사라는 과목을 좋아하게 만든 것은 중학교 국사 선생님의 남다른 교육관 때문이었다. 주입식 교육이 한참이던 그 시절에 텔레비전 방송으로 방영되던 조선왕조 500년 장희빈 편으로 이야기를 재밌게 엮어주시며 국사에 흥미를 유발해주셨다. 그런데 어느 수업 중에 갑자기 조선시대 왕 중에 유일하게 군으로 칭하는 임금이 누군지 아니? 하며 질문을 하시는 것이었다. 아직 국사 수업을 시작한지 얼마 되지 않아 조선시대 왕 이름을 외우는 학생이 없던 시절에 뜬금없는 질문이었다.

광해군과 연산군. 혼자 질문하시고 결국 혼자 답하시며 조선 시대 임금 이름을 하나씩 외워나가기 시작했다. 나는 그 한 번의 수업으로 조선 시대 임금의 이름을 모두 외우게 되었다. 그러시면서 연산군과 광해군에 대한 이야기를 여러 가지 해주셨다. 두 임금이 세자책봉과 임금으로 올라서기까지의 과정, 그리고 임금으로 재위시절의 능력, 정치, 신하들과의 관계, 그리고 폐위되는 이유를 마치 옛날이야기를 들려주듯이 풀어주셨다. 그런데 광해군의 폐위에 대해서는 시험에서는 이렇게 외우되, 열린 마음으로 갖고 있으라고 첨부하셨다. 왜냐하면 ‘역사는 승자의 기록’이기 때문이라고 하셨다. 뭔가 더 하고 싶은 말이 있는 얼굴이셨지만, 아직 정설로 받아들여지지 않는 여러 가지 학설이 있다는 말로 끝을 맺으셨다.

그리고 그 기억은 그렇게 잠시 잊혀졌다. 그런데 뉴스를 보다가 다시금 그 기억을 되새기게 되었다. 현재 학교에서 근무하시는 국사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했는데 역사적 재평가를 요하는 인물로 1위가 광해군이라는 것이었다. 그렇게 다시금 나의 호기심은 불을 지폈고 광해군에 대한 책을 하나씩 찾아내기 시작했다. 그러나 아직까지 섣부른 판단을 내놓지 못하는 역사적 문제와는 달리 드라마와 연극, 영화는 허구라는 점을 이용하여 다양한 모습을 먼저 내보이고 있다. 게다가 때마침 다가온 대선에 맞춰 백성이 바라는 임금의 모습으로 <광해-왕이 된 남자>는 특별한 상상력을 더해 책, 영화, 연극을 동시에 내놓았다. 그리고 가장 먼저 나는 책을 집어 들었다.

단순히 ‘왕과 거지’의 컨셉으로 치부하기에는 이 작품이 보여주는 뛰어난 상상력과 치밀한 구성, 멋진 캐릭터들의 힘이 대단하다. 기생집에서 임금을 흉내 내는 광대 하선은 단연 으뜸이다. 돈 몇 푼에 임금의 흉내를 내려 구중궁궐에 들어왔으나 점차 우리가 바라는 임금의 모습을 보여주는 하선의 변화는 치밀한 사건의 구성으로 작품의 몰입도를 높여준다. 하선의 곁에서 그를 지도하는 도승지 허균과 조 내관, 그리고 그를 지키는 꽉 막힌 도 진웅의 캐릭터 역시 작품 안에 스며들어 멋진 에피소드를 만들어낸다.

이야기의 힘은 멋진 에피소드들을 치밀하게 구성하면서 각 캐릭터들을 살리고 독자를 작품 안 깊숙이 안내한다. 보너스로 구중궁궐 안의 삶을 하선을 통해 경험하는 것은 아주 특별한 재미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0)
좋아요
공유하기 북마크하기찜하기 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