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자책] 1535 합본판 ㅣ 1535 3
신아인 / 아이웰콘텐츠 / 2012년 4월
평점 :
판매중지


 

작가도 말했듯이 한일합방 시기의 작품을 다룬다는 것은 어느 정도 포기해야 하는 부분이 있다. 독자들의 쾌감, 흥분의 기폭제가 될 주인공의 승리의 한계가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해방은 우리 광복군에 의한 것이 아니라 히로시마 원폭에 의한 것이었으니 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작가 신 아인이 선택한 시대적 배경은 바로 이 시기다.

제목 ‘1535’는 사전 정보가 없다면 년도라고 지레짐작하기 쉽다. 나 역시 일제치하시기라고 하지만 1535년에 뭔가 발단이 되는 것이 있으리라 생각했다. 그러나 나의 이런 어설픈 추측은 보기 좋게 빗나갔다. 사건의 중심 축이 되는 경성 대장간, 그 안에서 하는 무기 제조, 그리고 무기를 만드는 쇳덩이가 불에 녹는 온도 1,535도, 그리고 그것은 한일단의 신분 확인 암호다.

 

<1535>는 총 두 권으로 구성되어 있다. 요즘엔 외국소설이든 국내소설이든 분량을 억지로 나눈 책들이 적지 않게 서점에 진열되어 있지만 다행스럽게도 <1535>는 얇은 두께와는 달리 각각 400페이지를 훌쩍 뛰어넘는 분량으로 우릴 반긴다. 덕택에 책을 드는 손목이 호강 아닌 호강을 했다.

 

1권.

조선 귀족 정민석과 내연녀 서혜림.

정민석의 아내, 일본인 화족 미유키와 그녀의 심복 하야토.

정민석의 친구이자 서혜림을 흠모하는 이수찬과 그를 바라보는 기생 홍연.

아내를 잃고 복수를 꿈꾸는 독립군 이무영.

일곱 명이 서로 얽히고설킨 애정관계에서 오로지 정민석과 서혜림만이 마주보는 사랑을 한다. 미유키는 정민석을 향했다가 무영에게 잠시 눈을 팔고, 하야토는 일편단심 미유키를 바라보지만, 미유키에게 그는 남자가 아니다. 일곱 명의 복잡한 관계 속에서 독립군의 아지트 경성 대장간을 중심으로 종호(영수의 아버지), 영수에 이어 상해 한일단 길주, 승민, 무영이 합세하며 경성 한 복판에서 독립군 활동에 박차를 가한다. 무영은 개인적인 원한을 앞세워 조선 귀족 정 민석을 살해하려 침입했다가 미유키를 인질로 삼아 정민석을 구석으로 몰지만 오히려 그런 무영과 미유키를 향해 거침없이 총을 쏘는 민석을 바라보며 미유키에게 연민을 느낀다. 그런데 어찌된 일인지 민석은 무영을 가리키는 증거(탄피)를 숨긴다. 그러나 이런저런 생각할 겨를없이 무영은 결국 정민석을 향해 비수를 꽂는다.

 

2권(1권을 읽지 않으신 분은 내용이 밝혀지니 앞으로의 내용은 보지 마세용^^).

보통의 소설이 그렇듯이 주인공으로 드러난 정민석이 정말 매국노의 자손으로 만족하며 살지는 않을 것이요, 무영과 독립군을 향한 증거인멸과 은연 중에 도움이 되는 그의 행동은 결코 우연이 아닐 것이라 짐작은 했다. 그러나 한일단을 만들고 땅굴을 비롯해서 이 모든 것을 진두지휘한 수장이 바로 매국노 정규홍의 아들이자, 일본화족 미유키와 결혼한 정민석이라니 그걸 밝히고 2권으로 넘어가는 센스라니 작가 신아인의 이력이 발휘되는 지점이다. 드라마제작사 소속작가라니 확실히 시간과 분량, 절정에서 마지막 장면을 꾸미는 것까지 완벽하다.

각기 다른 세계의 인물일 것 같은 사람들이 결국 ‘한일단’으로 모인다. 그러나 그 안에서 의심과 증오를 가슴에 묻는 사람이 나오고, 혹여 증오가 아니었다고 해도, 배신이 아니라도 해도 결과적으로 한일단을 위해하는 일을 하게 되는 이가 발생하며, 지금까지 너무나 냉정했던 정민석 역시 어머니를 잃고, 서혜림까지 잃게 되는 순간이 되자 서두르는 기색을 보이고 그런 서혜림을 지키려던 수찬의 노고는 오히려 그녀를 위험에 빠뜨린다.

 

예견된 광복군에 의한 독립은 소설에서도 이루어지지 않는다. 그렇기에 사실적으로 다가온다. 그리고 그들이 결코 두 손 내리고 가만히 있지 않았다는 점에서 위안을 가질 수 있을 뿐 아쉬움이 남는다. 그러나 각종 가설로 꾸며 결말까지 광복군에 의한 독립으로 이야기를 끝냈다면 더욱 아쉬웠을 것이다. 작가는 독자들이 용납할 수 있는 범위까지의 가설과 상상을 가미하여 소설 <1535>을 썼고, 독자들이 만족할 만큼의 결론을 냄으로써 최선의 길을 선택했다. 헐리우드 영화에서 미국식 자부심을 불러일으키기 위해 미국 대통령이 모든 걸 다 해결한다거나(에어포스 원, 인디펜던스데이) 영화 후반부에 등장하는 미국 국기의 휘날리는 모습 같은 건 소설 <1535>에 존재하지 않는다. 오히려 일본에게 나라를 팔아먹은 아버지 밑에서 조선 귀족이라는 이름으로 높은 직책을 받고, 일본 여자와 애정 없는 결혼 생활을 하는 한 남자가 있을 뿐이다.

그러나 그 남자는 매력적이다. 까도남 같은 성격에 한 여인을 향한 사랑, 치밀한 리더의 모습을 갖췄다. 결국 자기 손으로 독립을 일궈내지도 못하고, 매국노의 이름으로 남았지만 그는 그 어떤 핑계나 변명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매국노의 이름으로 자신을 죽이는 사람이 어서 빨리 나타나기만을 바랄 뿐.

작가의 말을 마치고 그의 죽음의 비밀이 담긴 에필로그를 또다시 읽으며 주체할 수 없는 울음이 나는 것은 그에 대한 연민이다. 이 작품 안에는 많은 캐릭터들의 아픔이 존재하고 그 아픔의 원인은 언제나 정민석을 향하곤 했다. 그러나 마지막 장을 넘기며 나는 바로 그 정민석에 대한 연민으로 가슴이 먹먹할 뿐이다.


댓글(0) 먼댓글(0) 좋아요(1)
좋아요
l 공유하기 l 북마크하기찜하기 lthankstoThanksTo