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우재의 맹자 읽기
이우재 지음 / 21세기북스 / 2012년 1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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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자 왈 맹자 왈~"

예전에 식견이 있는 사람이라면 이런 문구를 입에 달기 마련이지만 지금은 그 말 자체가 드라마에 나오는, 나이 드신 분을 묘사하는 대사 정도로 느껴질 뿐이다. 더군다나 공자도 아니고 맹자라니~, <이우재의 맹자읽기>는 시대를 역행하는 책일지도 모른다. 그런데 난 왜 이 두꺼운 책 <이우재의 맹자읽기>를 선택한 것일까? 한자라고는 나의 아킬레스건이며 나와 친할래야 친할 수 없는 영역이기에 맹자를 읽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그러나 나는 맹자를 선택했다. 공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알려지지 않은 맹자이기에 더욱 관심이 가는 이 심리는 나로서는 청개구리 심보라고 해야 할 지 모르겠지만 저자의 서두를 읽으며 제대로 된 선택임을 간파하고 나는 서둘러 책장을 넘겼다.

 

21세기, 디지털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아날로그는 이제 퇴물이다. 그리고 '공자 왈 맹자 왈'은 지나간 역사로 끝난 듯 보인다. 그러나 사실 우리의 정신보다 빠르게 변하는 세상의 속도는 우리의 정신을 나날이 공허하게 만들고 있으며 잘못된 개인주의, 지나친 사생활 침해 또는 보호는 세상을 더욱 뻣뻣하게 만들어가고 있다. 이런 시기에 가장 큰 피해를 입은 우리의 가슴과 머리를 정리하기 위해 기원전 시대로 돌아가 인간의 삶, 사회, 철학을 뒤돌아보는 것은 어떨까?

 

국민이 뽑은 대통령이 존재하는 이 시대에 '임금과 백성의 도리를 논하고 인과 의를 논해 보는 것'도 좋지 않을까? 한 나라를 총괄하는 총리가 파티를 하고 난 후에 정무를 봐야한다고 말하고, 가난한 나라의 대통령이 하야한 후에 급히 떠난 그의 별궁에 남은 온갖 사치품과 그가 해외로 도피한 자산은 대통령으로 집무한 기간동안 해외에서 빌려온 차관의 3분의 1이라는 뉴스를 접하는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이천 년도 전에 "평천하의 근본은 치국에 있고, 치국의 근본은 제가에 있으며 제가의 근본은 수신에 있을 따름이다.(본문 370쪽)"라고 했거늘 21세기를 사는 몇몇 사람은 기원 전 시대부터 내려오는 이런 이치를 아직도 모르나보다.

위 두 사람이 인과 의를 제대로 아는 사람이었다면 다르지 않았을까? 인의를 의도적으로 실행하지 않고 인의에 따라 행동하는 순임금이 위 두 나라를 다스렸다면 이탈리아에서 시작된 작금의 유럽발 위기도 가난한 나라 필리핀의 지금의 모습도 지금은 달라졌으리라. 벼슬은 가난 때문에 하는 것이 아니고 장가는 봉양을 받기 위해 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도 다시금 이 책을 통해 되새겨본다.

나는 이 책을 읽는 내내 '옛날로 돌아가기'버전에 빠져 지냈다. 동방예의지국이라는 대한민국에서 지하철 폐륜아들이 넘쳐나고, 디지털 기기로 사람과 사람이 만나기보다 컴퓨터 모니터 앞에서 게임에 빠져, 게임을 못하게 하는 부모를 살해하는 지경이다. 어른을 공경하는 예의범절을 가르치기보다 영어 한 자, 수학 공식 하나라도 더 외우게 하는 현실을 우리는 이제 되돌려야 하지 않을까?

이우재의 맹자읽기는 재미있게 후다닥 넘긴 그간의 책들과 다르다. 그러나 나는 이 책을 21세기를 살아가는 청년들이 읽었으면 한다. 우리가 지극히 당연하다고 생각하는 철학과 관습이, 때로는 시대에 뒤쳐졌다고 버려지는 현실을 우린 이제 좀 살피고 그 무엇보다 우리의 정신을 가다듬기 위해서라도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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